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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영 Oct 16. 2021

오늘은 내가 DJ!

낙원FM 일일 DJ 체험기 

오전 8시 50분. 가벼운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냉장고에서 차가운 물통을 하나 꺼내서 집을 나선다. 몸은 양재천 산책길을 향하는데 마음은 딴 데 있다. 서둘러 이어폰을 귀에 넣으며 시계를 보니 다행히 아직 늦지 않았다. 오전 9시에 맞추어 MBC라디오 앱을 켜는 순간, 익숙한 시그널 음악이 시작된다. 이윽고 지디(정지영 DJ)의 달달한 목소리가 오늘도 나를 반겨준다. 어쩜 목소리에 꿀을 발라놓은 것 같다. 매일 들으면서도 매일 감탄한다. 깔끔한 진행과 센스있는 선곡에 두시간이 후딱. 역시 수십년의 DJ경력이 있는 베테랑이다. 


공무원 시험을 끝내고 평범한 일상을 즐기는 요즘의 나의 모습이다. 오전에 양재천을 걸으면서 MBC라디오 <오늘 아침 정지영입니다>를 듣는 시간을 가장 애정한다. 다양한 미디어 매체가 우리를 유혹하지만 나는 아직도 라디오를 즐겨 듣고 있다. 뭐라고 딱히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라디오만이 가지고 있는 감성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지 빠르게 변화하고 소멸하는 세상에서 '안심하렴, 아직 이곳은 시간이 느릿하게 흘러간단다' 라고 속삭여준다. 


학창시절,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척 앉아 몰래 라디오를 훔쳐 듣다가 DJ가 우스개소리를 하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와 모두의 눈총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혹시라도 오늘은 나의 사연이 소개될까 기대하며 글을 몇번이나 썼다 지우고를 반복했었는지. 그러다가 가을이 깊어가는 어느날, DJ가 마침내 내 이름을 불러주며 신청곡을 들려주었을 때의 그 감동과 환희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불속에서 듣다가 박차고 일어나서 까르르 온갖 오두방정을 떨었뜨랬다. 사춘기 시절에 누구나 한번쯤 그랬듯이 나도 한때는 라디오 작가가 되는 것을 꿈꾸기도 했고 어떻게 하면 DJ가 될 수 있는지 인터넷을 검색해보기도 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실컷 들으면서 청취자들과 함께 호흡하며 그들을 웃고 울리는 DJ란 직업이 내게는 로망이었다. 


그리하여 우연히 서울시 뉴스에서 '낙원 FM 일일 DJ체험'이라는 기사를 처음 보았을 때 첫사랑을 마주한 소녀처럼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낙원FM 일일 DJ체험은 서울생활문화센터 낙원에서 일주일에 한번 금요일 오후 3시에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유투브에서 라이브로 송출이 되고 이후 언제든지 다시듣기를 할 수 있다. 서울생활문화센터 낙원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생활음악을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음악과 문화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라 소개하였다. 악기 기증/나눔 외에 생활문화 동아리들의 창작과 연습 그리고 공연을 위한 대관도 하고 있었다. 이것저것 둘러보면서 DJ체험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이 열망으로 바뀌어 갔다.  


'나도 해보고 싶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라는 정서는 매우 소중하다. 왠만한 것은 이미 다 해본 까닭이다. 어쩌다 안 해본 것들은 대개 현실적으로 계산해보았을 때 무모하거나 이해타산이 맞지 않는 것들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고 그런 심심한 어른이 되기는 싫다. '그래서, 그걸 해서 뭐하게?'라고 심드렁하게 말하지 않는 내 자신이 자랑스럽고 대견했다. 기회가 될 때 마다 나는 자주 내 안에 열정을 꺼내보겠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를 계속해서 확인해 나가고 싶다. 누군가 핀잔을 준다면, "내 나이가 어때서?"라고 당당하게 말하련다. 나는 아직 별걸 다 해보고 싶은 나이다. 


참여를 희망하는 메일을 보내고 며칠이 지나자 반가운 연락이 왔다. 담당 PD로부터 예시가 될 만한 대본을 받으니 더욱 설레었다. 예시는 예시일 뿐 DJ스타일대로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다. 유투브에서 나보다 앞서 참여한 DJ들의 방송을 다시보기를 하면서 대충의 감을 잡았다. 나는 어떤 주제로 풀어나갈까 고심을 하다가 공무원 수험생활을 한 것을 바탕으로 꿈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이제 갓 수험생활을 마친 현재의 내가 가장 진솔하게 말할 수 있는 영역이니 말이다. 또 자신만의 목표를 향해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많은 분들을 응원한다면 의미가 있지 않은가. 주제가 정해지니 대본을 쓰고 그에 맞는 곡들을 선정하는 작업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나만의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음악들을 하나씩 들어보면서 다섯곡을 추려내는 과정이 재밌었다.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 나만 알고 싶은 맛집을 일러주는 느낌이랄까. DJ는 이런 맛에 하나보다. 


10월 15일 금요일. 리허설을 하기 위해 방송 시간보다 30분 일찍 낙원N스페이스에 도착했다. 입구에 들어서니 듣도 보도 못한 방송장비들이 눈에 들어와 긴장이 되었다. 이것은 내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낯선 풍경이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 듯 담당 PD는 나를 편안하게 해주기위해 살뜰히 챙겨주셨다. PD의 안내에 따라 실제 상황처럼 연습을 해보았다. 현장감이 느껴져서 그런지 집에서 혼자 연습할 때와는 사뭇 달랐다. 그래도 옆에서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주니 힘이 되었다. 생방송을 몇 분 앞두고 심장은 한껏 쫄깃쫄깃해졌는데 마치 물고기 한 마리가 내 안에서 파닥파닥 뛰노는 기분이었다. 



드디어 오후 3시 정각. 시그널 음악 소리와 함께 내 목소리가 전파를 탔다. 아, 오프닝을 간신히 마치고 첫 곡이 흘러나왔을 때의 짜림함이란! 왠지 모를 쾌감이 나를 전율케 하는 것이다. 감사하게도 청취하고 있는 분들이 채팅창에 댓글을 여럿 남겨주셨다. 그분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다보니 30분은 그야말로 순삭이다. 동경하는 정지영 DJ의 솜씨에 비하면 백만분의 일도 안되더라도 오늘만큼은 내 멋에 한껏 취해본다. 


평일 오후 3시대라 많은 청취자들을 불러들이지는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쉽다. 하하. 생초짜 아마추어 DJ가 의욕만 앞서는 꼴이라니. 물론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경험 그 자체를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시간이라 행복했다. 서툴고 미숙한 부분도 자연스러웠다. 돌이켜보니 그와중에 애드립으로 대본에 없는 멘트를 한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전혀 새로운 상황에 내던져졌을 때 즉흥적으로 내 안의 끼가 발산할 때가 있다. 그럴때마다 나에게 이런 면이 있구나 하며 스스로 놀라곤 한다. 나는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흥미롭다. 내가 누구인가를 열심히 탐색할 수록 인생은 그럴 듯해진다고 믿는다. 무미건조한 일상에 유쾌한 자극을 원한다면 지금 당장 '낙원FM 일일 DJ체험'을 신청해보시기를. 여러분의 삶이 한층 더 다채로워질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zMrOPp0eo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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