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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영 Oct 26. 2021

예쁘다, 내 삶의 민낯

임용 구비서류에 필요한 증명사진을 촬영하러 사진관을 찾았다. 서랍속에 몇 장의 사진이 남아 있었지만 30대 초반에 찍은 것들이다. 마흔을 앞둔 내 모습을 기념으로 남기고 싶었고 후에 신분증으로도 활용할 요량으로 최대한 공을 들이기로 했다. 공무원 오픈카톡방에서 입소문이 자자한 몇 곳을 검색해보았는데 사진보정이 과하지 않다는 후기에 이곳을 선택했다. '여백'이란 사진관 이름도 마음에 끌렸다. 그림이나 글씨 등 묘사된 대상 이외의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는 빈 공간. 요즘은 그 자연스러운 모자람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무엇이든지 하나라도 더 채우려고 급급하고 그것을 남에게 보여주려고 애를 쓰던 어린 시절이 안쓰럽다. 나를 속박하던 틀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진 지금이 좋다. 이런 여유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꼭 서글픈 일은 아니다.


스튜디오는 작고 아담했다. 오전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도 없었다. 일찍부터 서두르기를 잘했다. 머리를 드라이하고 입술에 가벼운 립글로우를 발랐다. 오랜만의 촬영에 긴장을 한걸까. 거울앞에서 몇번이나 옷 매무새를 정돈한 뒤 카메라 앞에 앉았다.

"자, 고개 당기고 왼쪽 어깨를 조금만 내리시구요. 상체는 옆으로 살짝 비스듬히. 그 상태에서 웃어볼께요! 눈에 힘은 빼주세요!"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사진 작가의 디렉션에 얼이 빠졌다. 어색한 웃음을 쥐어짜는 나에게 작가 선생님이 던진 한마디. "설마, 지금 웃고 있는거 아니죠?"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진짜 웃음이 피식. 작가님은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찰칵!찰칵!

"그렇지, 바로 그거예요! 그렇게 웃어야죠!"

그제서야 나는 한결 편안하게 카메라를 응시했다.


'그래, 나답게 웃자.'


촬영을 마치자마자 기다릴 것도 없이 컴퓨터 모니터에 내 모습이 나왔다. 어딜가나 빠른 것이 미덕인 세상이다. 필름을 맡기고 어떻게 인화되어 나올까 궁금해하며 며칠을 설레는 소박한 행복이 사라진지 오래다. 화면속에 나를 보니 세월에 맞은건 필름 카메라만이 아니었다. 더 이상 애리애리한 아가씨는 찾아볼 수 없는 나의 얼굴.  필름 카메라가 디지털로 변화된 시간을 나도 지나왔던 것이다. 작가님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빠르게 사진 보정을 하는 동안 옆에서 내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여러모로 아쉬운 이목구비지만 나이가 들수록 어쩐지 애틋하다. 이제는 아가씨보다 아주머니 소리를 듣는 것이 어울리겠지만 나는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이렇게 내 외모에 관대해지게 된 지는 고작 몇 년되지 않았다.


30대 초반만 하더라도 큰 모니터에 내 얼굴이 확대되어 나오는 것을 질색했다. 제 3자가 내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수정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괴로워 화면속에 나에게서 눈을 돌리곤 했었다. 그중에 가장 마주하기 싫었던 것은 나의 피부였다. 사춘기의 상징인 여드름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말썽이었다. 피부가 예민해서 화장을 조금만 해도 염증이 올라오고 호르몬 불균형으로 주기적으로 뒤집어졌다. 10대에는 20대가 되면 없어지겠지 했고 20대에는 30대가 되면 말끔히 나아질꺼야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는데 서른 아홉까지도 때때로 나를 곤란하게 한다.


한때는 여드름이 얼굴 전체를 뒤덮어서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감추어지지도 않는 여드름을 어떻게든 감추어보겠다고 화장은 날로 두텁게 하고 그 화장독에 트러블은 더 심각해졌다.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민낯으로 사람을 만나기가 두려워서 화장을 포기할 수가 없었더랬다. 그 당시 나에게 화장은 가면이었다. 가면 뒤에 철저히 나를 숨겼다. 어쩌다 데이트를 하게 되도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주기가 마뜩하지 않아 만남을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당연히 친구들과 함께 밤을 보내야 하는 여행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요리조리 피했다. 나는 그 시절에 누렸어야 할 많은 것들을 지나쳤다. 어리석게도 그것들이 얼마나 값진 시간들이었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콤플렉스 덩어리를 안고 살면서도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더욱 발랄한 척 하던 나였다. 속으로는 백옥같이 하얀 도자기 피부를 가진 친구들이 몹시 부러우면서 그런 내색을 남에게 비치는 것조차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만든 가면을 지켜내느라고 나는 그보다 소중한 것들을 잃어가고 있었다.


어느날 가장 가까운 친구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고 싶다며 집 근처에 찾아왔는데 나는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한사코 그녀를 돌려보냈다. 사실은 퇴근 후에 이미 화장을 지웠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가장 가까운 친구 한 명과도 마음 놓고 만날 수 없는 내 삶이 너무 불행하게 여겨졌다. 내 인생이 뭔가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날 밤 이불을 뒤집어쓰고 참 많이도 울었다. 그 일이 내게 큰 전환점이 되어 몇주일 후 나는 용기를 내었다. 화장독이 퍼질대로 퍼져서 더는 화장을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된것도 한 몫했다. 친구에게 사전에 전화로 내 속마음을 털어놓기는 했으나 막상 민낯으로 마주하려고 하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몇번이나 집으로 돌아갈까 망설였는지 모른다. 친구를 만난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벌거벗은 심정이었다. 주위에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나를 향해 있는 것 같았다. 나를 둘러싼 시공간이 조여와 숨쉬기가 답답했다.

"오히려 보기 좋아. 두터운 화장을 했을 때보다 훨씬 더 자연스러워 보이는걸. 앞으로도 화장하고 다니지 말아라. 소영아, 마음을 편히 가져."

친구의 따뜻한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더욱이 친구는 나를 위해 본인도 민낯으로 나와 주기까지 했다. 그녀의 세심한 배려가 잔뜩 움추려있던 내 어깨를 펴게 했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 이렇게나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내 안의 어두운 면을 들킬세라 꼭꼭 숨겨둘때는 그 어둠이 눈덩이처럼 커지기만 했는데 그것을 양지바른 곳에 널어두니 어둠은 맥을 못추고 꼼짝을 못했다. 빛을 이긴 어둠은 없는 법이다. 콤플렉스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말로 뱉어냈을 때 나의 상처에 새 살이 돋기 시작했다. 남이 아닌 나부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무렵부터 나는 화장을 하지 않았다. 화장을 하지 않으니 확실히 트러블이 나는 횟수가 줄어 들었다. 낯선 사람들을 처음 만나게 되는 자리에 민낯으로 나설때마다 여전히 심리적 위축이 되기는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눈을 맞추고 말과 행동에 온기를 불어넣으려 노력한다. 화장을 할 수 없어 외적 호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나만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매력을 발산하는데 더 집중하련다. 매혹적인 장미꽃은 못되더라도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고 볼수록 정감있는 들꽃이 되고 싶다.


누구에게나 저마다 마음 깊숙이 묻어둔 숙제들이 있다. 해결되지 않은 콤플렉스와 트라우마들이 삶의 곳곳에 또아리를 튼채로 잠복해있다가 조금씩 영혼을 갉아먹는다. 그러다 방심하는 순간 우리의 목덜미를 잽싸게 낚아채버린다. 나는 가능하면 중년이 되기 전에 스스로와 화해할 시간을 갖기를 권한다. 주기적으로 찾아와 내 영혼을 뿌리째 흔드는 원인 모를 그 슬픔을 외면하지 말고 한번쯤 대적해보았으면 좋겠다. 꺼이꺼이 울어버리고 곪을대로 곪은 농을 터트려보자. 내 안의 자라나지 못한 어린 아이를 발견하고 보듬어 주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어른이 된다. 진짜 내 인생을 살게 된다.


이제 나는 내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한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안달하기 보다는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한다. 나의 가치를 억지스럽게 증명하는데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 대신 매일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떠난다. 건강한 습관들로 일상을 채우며 아기 키우듯이 정성껏 나를 돌보기로 한다. 그렇게 어제보다 오늘 더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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