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강남에 살지는 못합니다만

경기북부에 산다는 건


"강남도 아니고, 겨우 서울 중급지에 살면서 그런거 써도 돼?"


부동산 관련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고 와이프에게 말했을 때 와이프가 내게 건넨 첫 마디였다.


그렇다.

난 자랑하듯 수많은 부동산 재테크들이 글 첫머리에 쓰는 것처럼 강남입성을 하지 못했다.


이게 내 블로그에서 부동산 포스팅보다 주식 포스팅이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이라는 말을 내 가슴 속 깊은 곳에 묻어두고 사는 것처럼 서울 입성을 가슴 속 깊은 곳에 묻어두고 사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내가 몇년전 그랬던 것처럼.


그런 생각에 글을 써보기로 했다.




나는 불과 몇년 전만 해도 경기북부의 한 도시에 살고 있었다.


그것도 20년을.


그러다보니 집에서 서울에 있는 회사까지 몇 시간을 걸려 다니는 삶,

눈이나 비만 많이 오면 지하철이라는 이름의 지상철이 툭하면 연착되는 삶,

회식이라도 할지면 기사 아저씨가 택시 미터기를 끄고 별도의 요금을 받는 삶,

동네에서 '서울 집값 떨어질거야'라는 노인분들의 질투어린 대화가 종종들리는 삶은 그냥 내게는 익숙한 광경 중 하나일 뿐이였다.


그나마 다행인건 그 와중에 나름 투자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내 이름으로 된 첫 부동산을 매수하다

반대편 동네이기는 하지만 같은 경기북부에 살던 공인중개사 이모의 권유로 나는 사회 초년생 때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된 부동산을 갖게 됐다.


"지금 세계적으로 경기가 좋지 않아 싸게 나온 급매야. 내 딸 연결해주고 싶었는데, 얘가 아직 취업을 못해서 너에게 소개시켜주는 거야"


이모의 그 말을 듣고도 나는 며칠을 고민했다.


이제까지 몇년 사회생활을 하면서 겨우 모은 돈을 다 날리면 어쩌지?

부동산은 처음 사보는데 실수하면 어쩌지?


그런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다.


그때 '가격이 떨어지면 그냥 네가 나중에 결혼해서 살면되지 않냐'라는 어머니의 권유로 매수를 결심했다.


그렇게 매수한 내 첫 부동산.

그건 경기북부에 자리잡고 있는 자그마한 오피스텔이였다.


그런데 그 오피스텔이 정말 내게는 효자같은 존재였다.

지금 국장의 반도체같은 존재라고 할까.


매월 50만원의 월세가 따박따박 나왔다.

더욱이, 내 이름으로 된 부동산을 갖게 됐다는 사실이 심적으로 내게는 큰 안정감을 주었다.


비록 오피스텔이지만, 나도 내 이름으로 된 집이 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마음 속 한쪽 구석에 자그마한 희망이 싹트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도 결혼이란 걸 하게 됐다.

그런데 나는 그때까지 몰랐다.

그게 내 부동산 흑역사의 서막이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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