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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를 하지 않으면 불행한 세대

기러기 아빠의 이민 고민 

지난주 회사 후배 한명과 밥을 먹었다.

이 친구는 서울 상위권 대학을 나와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다.

더욱이, 집이 강남이라고 하길래 역시 로스쿨 졸업생들은 부유한 집안의 아이가 많구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 도중 서울에 자가 아파트가 있는 내가 부럽다고 하더라.


내가 부럽다고?

처음에는 이 무슨 이야기인가했다. 

나는 서울에 집이 있기는 하지만 흔히 이야기하는 강남3구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OOO씨, 제가 부럽다고요? 강남에 사시는 분이 무슨 말씀을..."


"사실, 저 자가가 아니에요. 장기 임대주택입니다"


나는 그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사법고시준비를 했던 나로서는 로스쿨생들은 모두 부유하다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더욱이, 내가 만난 많은 로스쿨 졸업생들은 부유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도 강남이신데, 마음 먹으면 집 금방 사시는 거 아니에요?"


"아니요. 제 월급의 상당부분이 월세와 대출이자로 나갑니다. 집 사는거 포기해야 할 거 같아요"


로스쿨 생들은 부유한 집안의 자제분들 아니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으나 차마 할 수 없었다.

때마침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이 친구는 이와 관련된 말을 내게 했다.


"사람들이 로스쿨 졸업생들 부자라고 생각하는데, 장학금 제도가 잘되어 있어 부유하지 않아도 다녀요"


그러면서 변호사가 되면 모든게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며,

용돈 만원에 행복해하던 어린시절이 그립다고 하더라.

그런말을 하는 그 친구에게서 행복한 표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삶에 지친 표정이 더 역력했다. 


"이런 엘리트가 왜 이토록 불행한 표정을 지을까"


내가 이런 스펙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나는 매일 행복해서 웃고 다녔을 것 같다.

그러기에 난 한편으로 고스펙자나 저스펙자나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은지에 의문이 들었다. 

 



나 역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가난하다는 죄로 전문직의 꿈도 사랑도 포기한 적이 있었다. 

그러기에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홈쇼핑에서 산 양복바지가 헤져서 구멍이 날때까지 입었다.

그렇게 모은 시드머니로 부동산을 사서 돈을 불렸고, 주식을 해서 돈을 모았다.


더욱이, 내가 신입사원일 때도 회사 선배들이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집 한채 해줄 수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느냐, 없느냐가 인생을 결정한다.

그만큼 당시에도 괜찮은 집을 사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월급은 변하지 않았는데, 집은 2배 이상이 올랐다.

내가 느꼈던 막막함이 지금의 세대에는 절망으로 다가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유독 우리나라만의 문제일까?


캐나다는 우리나라보다 더 크게 집값이 올랐고, 임대료는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 캐나다, 유럽 등등 우리나라보다 선진국인 나라들의 수도권 집값 역시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기에 프랑스에서는 파리에 살 수 있는 사람들을 파리지엥이라고 부른다는 유튜브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캐나다의 젊은 사람들 표정은 밝다.

그 백인들 특유의 여유로움과 익살이 넘쳐난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엘리트 젊은이들에게서는 유독 삶에 지친 표정이 자주 보이는 걸까.




재테크를 하지 않으면 망하는 세대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내가 젊었을 때보다 주식, 부동산 등 재테크에 더 열을 올린다.

나때는 일부의 사람들이 재테크에 관심을 가졌다면 지금은 더 많은 사람들이 이에 관심을 가진다.

그런 세태가 올바른지는 차치하더라도 그것을 하지 않으면 인간다운 삶을 살기 어렵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여기서 인간다운 삶의 정의가 문제된다.

우리나라는 서양보다 비교하는 삶을 더 중요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내가 행복한가 보다 남들보다 더 행복한지가 중요하다.

매일 인스타그램에 비싼 호텔 뷔페에서 먹은 음식, 해외여행에서 찍은 영상이 올라온다.

그걸보며 스트레스를 받고, 지금의 내 삶이 불행하다고 느낀다.

이는 곧 과소비로 이어지고, 만약 현 상황상 내가 그걸 하지 못하면 분노로 이어진다.


이러니 최고위층 부자들이 아니라면 누구나 불행하고 분노를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온갖 어려움을 뚫고 드디어 서울에 자가를 마련했지만,

강남의 신축이 50억이니, 부자들 아파트는 신용카드도 따로 나온다느니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이룬 목표가 하찮다고 느껴질 때가 더러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남과 비교하는 삶을 살지않기란 어렵다.

벌써 그런 삶이 뿌리깊게 자리잡았다.

사람들은 인스타그램, 블로그를 통해 부자들 또는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주 본다.

언론에서는 매일 그런 류의 기사를 뿌린다.

그래야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개선이 가능하겠는가.


우리 아이들이 이런 힘든 사회에서 사는게 맞을까라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나는 가끔 메트릭스의 한장면을 생각한다.

메트릭스 밖 세상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새로운 고민이 시작된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닌걸 알았기에

  

<메트릭스 밖 세상이 존재를 아는 건 고민의 시작이다>

나 역시 조금은 더 행복하게 세상을 살 수 있는 곳에서 아이들이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부모로서 맞는게 아닐까 하는 고민을 매일 한다.


그런 곳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새로운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정답은 없다. 아이들에게 어떤 삶이 행복한지

그러나 적어도 우리 아이들이 어떤 삶을 살지를 선택할 수 있게 선택권을 부여해주고는 싶다.

그러기에 내 고민은 더더욱 깊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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