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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다름 코치 Mar 29. 2021

희생이 당연이 되지않게...

"집에서 아이 돌볼래? 회사 가서 일할래?"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남편과 나는 1초도 망설임 없이 회사 가서 일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첫째 아이를 낳고 심각한 산후우울증을 경험한 아내를 보며 남편은 항상 퇴근길이 무거웠다고 한다.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고 퇴근하면 육아는 물론이요 매일 울고 있는 아내를 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막막함을 느꼈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남편은 그때가 트라우마처럼 기억에 남아있다고 농담처럼 말한다.


 몇 년 전부터 '수퍼맨이 돌아왔다'라는 프로그램이 큰 주목을 받았다. 엄마 없이 아빠 혼자 아이들을 돌보며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리얼하게 보여주며 부모들에게 공감을 얻기 시작했다. 특히 일하느라 바쁘기만 했던 아빠가 엄마 없이 아이와 24시간을 지내며 일어나는 일들에 당황하고 어떻게 할지 몰라 쩔쩔매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아빠는 이렇게 '육아를 돕는 것'과 '육아를 직접 해보는 것'의 차이를 확실하게 경험해보는 것이다.


 남편도 첫째 아이를 낳고 3개월 만에 복직한 아내 덕분(?)에 주말마다 독박 육아를 경험했었다. 그 당시 나는 호텔에서 3교대 근무를 했기 때문에 주말뿐 아니라 밤늦게 퇴근해야 할 때도 많았다. 어쩔 수 없이 남편이 베이비시터와 시간 맞춰 교대하느라 회사에서 눈치 보며 정상 퇴근을 해야 했다. 평일과 주말 가리지 않고 백일 시기부터 남편 혼자 아이를 돌봤던 것이다. 남편이 직접 육아를 경험해보니 얼마나 힘든 일인지 공감한다며 회사 가는 게 낫다는 말을 한다.

 '번아웃(Burnout)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세계 보건기구(WHO)는 번아웃을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이라고 정의한다. 나는 이 말을 '엄마 번아웃'이라는 말로 적용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역할은 뱃속에 아이가 생기기 시작하는 임신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약 40주의 급격한 신체변화와 함께 뱃속의 아이를 위해 항상 조심하며 지내야 한다. 40주가 지나면 최강의 출산 고통까지 경험하게 된다. 이 과정만으로도 엄마는 정신적, 신체적으로 삶이 뒤바뀌는 힘든 시간을 맞이한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처음 경험하는 육아의 모든 과정들이 엄마는 당연히 해내고 있지만 낯설고 어렵기만 한다. 자꾸 남들과 비교하며 위축되기도 하고 처음 육아를 경험하며 불안감을 느낄 때도 많다. 물론 주변에서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늘 아이에게 가장 미안함을 느끼는 사람은 엄마이다. 일과 육아, 그리고 살림까지... '엄마 번아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신문기사에 따르면 번아웃 증상은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못해 계속 쌓이는 악순환을 낳고 결국 적극성, 주도성을 잃게 된다고 한다. 과도한 습관성 행동을 보이며 뭘 해도 집중이 잘 안 되고 의욕도 없어진다고 말한다. 이유 없이 불안감과 우울함을 느끼며 감정 기복도 심해지고 짜증을 내는 증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엄마는 온갖 정성을 다해 아이를 잘 키우다가도 번 아웃이 오면 아이에게 참을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하게 된다. 남편과 다른 가족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항상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들도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하지?'라는 억울함과 서운함이 들 때가 많아진다. 이렇게 아이와 남편, 가족들과의 관계도 힘들 수 있지만 모든 문제가 나에게서 일어난다는 자책 또한 엄마의 마음을 더 힘들게 한다.


 첫째 아이가 돌이 되었을 때 나는 강사를 시작했다. 대학 시절부터 강사를 꿈꾸며 그 날이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렸고 드디어 꿈을 이룰 수 있는 순간이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선을 다해 잘 해내고 싶었고, 점점 성장하며 커리어를 쌓고 싶었다. 내 일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제 막 태어나 엄마의 손길과 사랑이 필요한 아이가 있었다. 


 친정 엄마께서 딸의 꿈을 위해 손녀를 돌봐주시겠다고 나서 주셨다. 정말 감사했다. 하지만 나는 지방 출장이 잦아 아이를 보러 겨우 2주에 한 번 정도 갈 수 있었다. 이렇게 6개월을 지내보니 친정엄마가 아프기 시작하셨다. 무리해서 아이를 쉼 없이 돌보시며 2주에 한 번 남편과 내가 가면 손님맞이하듯 챙겨주시니 병이 날 수밖에 없으셨던 것이다. 나는 아픈 엄마를 보며 미안했고, 엄마가 곁에 없는 아이에게는 더 미안했다. 남편 역시 일하는 아내 때문에 아이를 돌보는 친정 엄마에게 늘 죄인처럼 미안해했다. 그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은 항상 무거워졌다.


 "나만 일하지 않으면 모든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겠구나..."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나로 인해 행복을 빼앗기고 있다고 생각하니 죄책감에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었다. 남편도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엄마가 키우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며 회사를 그만두길 바랐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이를 키우는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처음에는 나만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에 억울하기도 하고 점점 우울해졌다. 산후우울증을 극복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내 꿈은 날개 잃은 새처럼 접어야만 했다. 다시는 내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 커졌다. 


 직업이 PD인 남편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해외까지 출장을 다니는 모습을 보니 아내로서 응원해주기보다는 얄미운 마음이 더 가득했었다. 하루 종일 일하느라 고생한 남편이 옆에서 코를 골며 자는 모습도 미울 때가 많았다. 아이를 돌보는 일이 지금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엄마 번아웃' 증상을 느끼며 힘든 시간들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놀이터에서 가끔 만났던 늦둥이 엄마가 내게 건넨 진심 어린 충고가 나의 생각을 뒤바꿔놓았다. 


 "아이와 함께 지내는 이 시간은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야. 비록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해야 하는 속상한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육아하는 동안 아이와 충실히 시간을 보내고 나면 분명히 성장해있는 너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야. 희생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단단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질 거야."


 보통 육아서에서 흔히 말하는 내용이었지만 큰 아이를 먼저 키워본 엄마로서 진심 어린 공감과 충고는 우울했던 나의 마음에 평온함을 가져다주었다. 그 말을 듣고 난 뒤부터 아이를 키우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봤고, 조금씩 뭐든 배우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밉게만 보이던 남편도 나를 위해 응원하며 바쁘지만 육아와 살림을 함께 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니 가장 든든한 내 편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가족은 어느 한 사람의 희생으로 절대 행복할 수 없다. 희생이라는 단어보다 서로를 공감하고 배려하려고 노력할 때 모두가 행복한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친정엄마께서 '엄마가 너희들을 위해 젊은 시절 희생하며 살아왔다.'라고 말씀하실 때가 있다. 이 말을 듣는 자식 입장에서는 항상 미안함도 느끼지만 반감이 들기도 한다. 자식을 위해 희생을 한다는 생각은 엄마가 자식에게 원망하고 있다는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엄마 자신이 희생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훗날 자식에게 원망의 말을 하지 않도록 엄마는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한다. 때로는 엄마도 어린아이처럼 보살핌을 받기도 하고 오롯이 나만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럴 때만이 가족을 위한 희생이 아닌 공생을 하며 가족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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