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4집] 봉우리
김민기 님의 '아침이슬'
2018년 9월,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모 방송국 뉴스룸에 김민기 님이 나오셨다. 앵커의 말을 들으니 그동안 여러 차례 초대드렸었던 모양이다. 한결같이 고사하시던 김민기 님께서 이번에 출연하셨다. 아마도 10년 전에 막을 내린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100회 한정으로 다시 무대에 올리게 된 계기가 컸던 것 같다.
'지하철 1호선' 이야기로 인터뷰를 열었지만 손석희 앵커는 마음에 꽉 들어차있는 생각을 참고 있기 어려웠다. "제가 속에서 안달이었던 질문을 이제 드리겠습니다. '아침이슬'은 어떻게 해서 태어났습니까? 아마도 오늘 처음 말씀해 주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아침이슬 얘기를 꺼내실 것 같아서 그래서 이 말씀드리려고. 그런데 이 얘기는 어디서 별로 해 본 적이 없는 얘기라서." 드디어 이야기가 시작됐다.
한밤중에 그림 작업을 하다가 막히면 노래 작업을 했고, 그러다가 만들어진 노래가 바로 '아침이슬'이었단다. 가사 중에 '나의 시련일지라' 부분이 있는데 이게 처음에는 '그의 시련일지라' 였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화성이나 멜로디가 잘 진행되지 않아서 무심코 '나의 시련일지라'로 바꾸었더니 금세 끝까지 완성되었다고 했다.
"미술대학에 입학하고 집이 정릉에서 수유리 우이동 쪽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거기가 야산에 있었고 무덤도 몇 개 있긴 있었는데 반지하창고. 옛날에 연탄들도 갖다 놓고. 거기를 처음으로 제 개인 작업실로 쓸 수 있게 됐어요. 그래서 이제 밤에 늘 그림 작업 하다가 이 작업이 하다 보면 막히잖아요. 막히면 기타 잡고 노래 만들고 그러다가 또다시 그림 작업으로 돌아가고 그렇게 왔다 갔다 했었는데..." (JTBC 뉴스룸 인터뷰, 2018년 9월 13일)
양희은 님의 '아침이슬'
60년대 무교동의 한 음악감상실 '쎄시봉'에서는 윤형주 님, 송창식 님, 조영남 님 등 훗날 전설이 될 청춘들의 만남이 있었다. 영화 '쎄시봉'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뉴스룸에 김민기 님이 나오지 않으셨다면 나는 김민기 님과 양희은 님의 만남이 이루어진 서사를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양희은이 김민기를 처음 만난 건 70년 서울 YWCA의 청소년 찻집 '청개구리'에서였다. 김민기 님은 서울대(미대 회화과 69학번) '도비두' (도깨비 두 마리의 준말) 멤버로 그곳에서 노래를 부르곤 했다. 당시 재수생이던 양희은 님은 친구 손에 이끌려 무대로 올랐고 김민기의 반주에 맞춰 몇 차례 노래를 불렀다. (한겨레신문사, 1997년 11월 20일 제183호)
김민기 님이 학교 축제에서 '아침이슬'을 불렀을 때 그 자리에 양희은 님이 있었다. 양희은 님은 훗날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부분을 듣는 순간 노래와 사랑에 빠졌죠."라고 고백했다. 노래를 정식으로 발표하기 전이었기에 김민기 님에게 찾아가 자신이 그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했고, 김민기 님은 그러라고 하였다 한다.
"노래가 너무 좋아 배우고 싶었는데 김민기 씨가 공연을 위해 악보를 그렸다가 찢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선배들 모임이 파하고 청소부 아저씨가 모임 장소를 청소할 때를 기다렸다가 찢긴 조각을 찾아내 보면서 연습했죠.(웃음) 이후 '내가 부르고 싶다'하니 김민기 씨가 그러라 하셨어요. 당시는 저작권 개념이 그렇게 뚜렷하지 않았어요. 누가 '그 노래 좋다'해서 '너 가져'하면 끝이었죠." (연합뉴스, 2014년 8월 25일)
모두의 '아침이슬'
80년대를 살아본 사람들에게 매캐한 최루탄 냄새는 떼어낼 수 없는 추억이다. 그때 나는 그저 눈물 나고 콧물 나는 게 싫어서 뉴스에 나오는 대학생 형 누나들을 향해 마냥 눈살을 찌푸리던 시절이었다. 그 싫었던 경험이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역사를, 곧 자국민들의 힘으로 민주주의 일구어 낸 우리나라를 만들어 간 여정이었을 줄은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다.
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연대생 이한열 열사의 죽음, 그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학생과 일반시민들로 뒤섞인 100만 인파가 시청 광장에 모였다. 당시 연세대 학생회장이었던 우상호 의원의 말에 따르면 가두 행진 중 학생들이 운동가를 부르면 시민들이 따라 부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아침이슬을 부르기 시작했고 모두가 아침이슬을 연달아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김민기 님 역시 그 자리에 있었다. 그는 100만 인파가 함께 '아침이슬'을 부르는 모습을 보았을 때 '이제 내 노래가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숙였고 결국 대열을 이탈했다고 고백했다. '아침이슬'은 1973년 정부가 선정한 건전가요상까지 받았던 노려였으나, 이듬해인 1974년에 이미 금지곡으로 낙인찍혔던 노래다.
"그러다가 87년인가 한 17년 만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부르는 걸 처음 봤죠. 처음 봤는데 그전에는 소문으로만 들었습니다. 봤는데 워낙 많은 사람이 부르다 보니까 저도 군중 속의 한 사람이었지만 아무도 저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지만 고개를 못 들겠더라고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다 절절하게 이렇게 부르니까 그럼 저 사람들 노래지. 그리고서는 또 다 잊어버렸습니다. (JTBC 뉴스룸 인터뷰, 2018년 9월 13일)
영원한 '아침이슬'
비록 그 방식은 몹시 폭력적이었지만 '아침이슬'은 김민기라는 인물을 이 세상에 끄집어 놓는 노래가 되었다. 한쪽에서는 모든 이들이 볼 수 있는 깃대처럼 그를 높이려 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를 다시는 빛을 쐬지 못하는 낮은 곳으로 처참히 끌어내리려 했다. 자신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거친 인생길로 휩쓸리며 씁쓸하다 못해 쓰디쓴 삶을 살아가야 했다.
우리가 오래도록 '아침이슬'에 관심과 애정을 갖는 이유는 어쩌면 이 노래에 갖는 서사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가 겪어낸 모진 시절을 이 노래가 함께 했고 듣는 이 부르는 이 역시 그 시절을 살아갔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김민기 님께서 '아침이슬'로 인해 얽히고설킨 비화들을 속시원히 밝혀주시기를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울분을 토하지 않았다. 끝내 담담함을 선택했다. 왜일까?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를 수식하는 수많은 높음들을 거부하고 유일하게 '뒷것'이라는 낮음을 품은 삶은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결국 그는 그 비밀을 꼭꼭 숨긴 채 사진 속 웃음으로 남았지만, 그 힌트를 나는 '봉우리'라는 노래에서 찾으려 한다. 1985년 양희은의 "찔레꽃 피면" 앨범에 숨겨놓은 노래다.
[앵커] 그렇군요.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아침이슬을 빼놓은 김민기라는 인물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십니까?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 : 그냥 함께 같이 살아가는 늙은이죠, 뭐. 그걸로 족하지 않겠습니까?]
[앵커]더 여쭙지 않겠습니다. 정답이신 것 같습니다. 감히 제가 정답이다 아니다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마는. 오늘 특별한 걸음에 깊이 감사드리겠습니다.
https://news.jtbc.co.kr/article/NB11696123
[양희은 '찔레꽃 피면']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1985년, 작사 양희은, 작곡 양희은)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기 해줄까
봉우리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때 난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생각지를 않았어
나한테는 그게 전부였거든
혼자였지
난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 오르고 있었던 거야
너무 높이 올라온 것일까,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
얼마 남지는 않았는데
잊어버려
일단 무조건 올라보는 거야
봉우리에 올라서서 손을 흔드는 거야, 고함도 치면서
지금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냐
저 위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늘어지게 한숨 잘 텐데 뭐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저기 부러진 나무등걸에 걸터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작은 배들이 연기 뿜으며 가고
이봐
고갯마루에 먼저 오르더라도
뒤돌아서서 고함치거나 손을 흔들어 댈 필요는 없어
난 바람에 나부끼는 자네 옷자락을 이 아래에서도
똑똑히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말야
또 그렇다고 괜히 허전해하면서
주저앉아 땀이나 닦고 그러지는 마
땀이야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주겠지 뭐
혹시라도
어쩌다가 아픔 같은 것이 저며올 때는
그럴 땐 바다를 생각해
바다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구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 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 속의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 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