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겨울비처럼 두 눈을 적시고'

[임현정 4집, 2003]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

by back배경ground

사랑이 전부였던 시절

내가 어릴 적, 어른들은 이상하리만치 트로트를 좋아했다. 신승훈 님이 '너는 장미보다 아름답지 않지만'을 아무리 애절하게 불러도, '차표 한 장 손에 들고 떠나야 하네' 하는 송대관 님의 구수한 억양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 당시 어머니께서 하셨던 말씀이 기억난다. "요즘 노래는 뭔가 마음이 와닿지 않는 것 같아."

그때 그 어머니의 감상평을 이제야 이해한다. 아이돌 가수들이 부르는 사랑 노래는 내게 너무 쉽고 가볍게만 들린다. 내가 학창 시절에 푹 빠져 듣던 노래들은 참으로 애절했다. 풋사랑이든 짝사랑이든 첫사랑이든 사랑의 감정을 겪는 모든 청춘은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말해주는 노래를 만날 수 있었다.

사랑 노래가 애절했던 만큼 이별 노래는 정말이지 절절했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앞에서는 결코 쿨하지 않았다. 헤어짐을 받아들일 수 없어 자존심도, 체면도, 심지어 자기라는 존재도 무가치하게 여겼다. 이런 노래를 듣고 부르던 청춘들은 현실의 장벽을 뛰어넘는 사랑이야 말로 진정한 사랑이라는 생각을 갖기에 충분했다.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애걸하기 위해, 쟁취하기 위해 학업을 뒤로했고, 우정도 젖혀두었고, 심지어 가족보다 앞세우기까지 했다. 그런 경험이 하나씩은 있었다. 사랑이 전부였기에, 그 하나를 놓치면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아무렇게나 대할 수 없었다. 마침내 그 사랑을 얻었을 때는 그 이상 다른 어떤 것도 의미 있지 않았다.


사랑이 전부가 아님을 알았던 시절

'당신을 위해 내 모든 것 드리겠다'던 약속은 서서히 희미해졌다. 당신에게만 쓰이던 시간에서 내 시간을 조금씩 떼어내기 시작했다. 학업은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있었지만, 그동안 뒤로 남겨두었던 것들을 뒤돌아보기 시작했다. 별일이 아닐 것 같았지만, 뒤돌아보았던 순간은 우주의 뒤틀림이 발생한 순간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울리는 전화벨은 슬며시 부담이었다. 선의의 거짓말이라며 친구들과 함께 있는 상황이 잠들기 직전 상황으로 둔갑하기도 했다. 둔갑술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은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지 않게 들려오던 말줄임표를 느끼며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무서운 생각이 쉽게 들곤 했다.

사랑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지만 사랑을 이어가는 과정은 하나하나 돈이 들었다. 천체의 별자리가 한 바퀴 돌고 나니, 일 년이라는 시간을 만나고 나니, 모든 기념일들을 한 번씩 거치 고나니 주머니 사정이 염려되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또 한 해가 걱정되었다. 어쩌면 연애는 사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드라마에서는 연애를 시작하면 가족에게 연인을 소개했다. 사회적 통념이 그러했는지 아니면 너무 순진했던 건지 드라마를 따라 해 보지만, 드라마에서 보던 일들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연인의 부모님은 연인 편이었고 연인의 형제자매는 부족한 점들만 들먹였다. 어설플 수밖에 없는 이십 대에게 그들은 너무 많은 것을 바랐다.


사랑보다 중요한 게 있음을 인정한 시절

캠퍼스 낭만이 무엇인지 채 깨닫지 못했는데 시간에 떠밀려 캠퍼스를 벗어나야 했다. 캠퍼스를 벗어나면 종족이 바뀐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우리는 야외 생활하던 종족에서 실내 생활하는 종족으로 바뀌었다. 이른 새벽에 들어간 빌딩에서 저녁 별이 뜨고서야 간신히 탈출할 수 있었다.

한가하게 공원을 거닐기에는, 여유롭게 벤치에 앉아 있기에는 죽일 수 있는 시간이 너무도 부족했다. 시간 여유가 없는 이들끼리의 만남은 가히 전투적이었다. 버스와 지하철로는 재빠르게 벌어지는 관계의 틈새를 따라 메우기 쉽지 않았다. 짧은 시간에 만남을 이어가려니 자가용이 필요해졌다.

하지만 구직난, 직업난이 당연하던 시대였다. 누구나 직장을 구할 수 없었고, 누구나 자가용을 가질 수도 없었다. 직장을 구했더라도 '안정적'이냐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안정적인 직장을 갖지 못한 청춘들은 결혼도, 자녀도 차라리 연애도 포기해 버렸다. 경제적 안정감은 사랑을 피우기 위한 전제조건이 되어버렸다.

여차여차해서 만남이라는 진도를 나가다 보면 결혼이라는 중대한 단원평가 앞에 이르렀다. 고차원적 존재인 우리는 결혼 앞에서 또 다른 안정감을 필요로 했다. 나를 이루는 가장 근원적인 부분에 대한 안정감, 이를테면 가족, 종교, 가치관과 같은 것들이었다. 좋아하지만 사랑이라 부르기 위해서 넘어야 하는 마지막 관문과 같았다.


사랑이 무엇인지 배우는 시절

이러한 관문을 모두 거쳐 사랑의 결실이라 부를 수 있는 결혼을 한다. 누구나 할 수는 있지만 누구나 하지는 못하는 가정을 이룬다. 그 자체만으로 뿌듯하고 감격에 겨워하기에 충분하다. 나를 하루 종일 가두는 빌딩도 쉴만한 보금자리가 있으니 견딜 수 있다. 어머니 손맛처럼 익숙하지 않지만 알콩달콩한 식탁이 기다린다.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안에 찾아온다. 알콩달콩한 식탁이 얼룩덜룩해지고, 기념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고, 설거지와 재활용쓰레기가 고스란히 쌓이게 되고, 이 모든 상황들에서 서로가 팔을 뻗고 검지 손가락을 내밀어 상대방을 지목하게 되면서, 서로 '당신'이라는 말을 남발하게 되면서...

그런 크고 작은 고비 사이에 새 식구가 찾아온다. 너무 붉고 쭈글 해서 괴이하기까지 하던 생명체는 세상 누구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로 자란다. 고비마다 서로의 사이에 생긴 골짜기를 이 아이 하나가 모두 메우는 것 같다. 아이를 바라보며 이 아이를 함께 세상에 이끌어 낸 배우자가 감사하고 의지가 되는 느낌이다.

부러질 듯한 나뭇가지 하나 물어오던 까치가 어느새 튼튼한 둥지를 만들어 놓는 것처럼, 그렇게 시간은 어느 사이에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만들어 놓는다. 그 가정을 지키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과업임을 깨닫게 되면서, 자기라는 존재는 우리라는 공동체를 위한 양분으로 쓰이면 족하다는 생각을 문득문득 하게 된다.

서로에게 내민 손가락이 아이로 인해 금세 내려가지는 않는다. 설령 아이가 없는 가족이라고 해서 튼튼한 둥지가 되어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단지 우리를 위해서 상대방이 반드시 필요한 존재임을 인정하게 될 때, 내가 조금 낡아지는 것은 괜찮다. 어차피 삭아가는 인생이니, 내 삶이 우리를 위해 쓰였다 말할 수 있다면, 조심스레 '사랑했다' 말할 수 있 것 같다.


[임현정 4집, 2003]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

묻지 않을게 니가 떠나는 이유
이제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야윈 너의 맘 어디에도
내 사랑 머물 수 없음을 알기에

이해해 볼게 혼자 남겨진 이유
이젠 나의 눈물 닦아줄 너는 없기에
지금 나의 곁에 있는 건
그림자뿐임을 난 알기에

사랑은 봄비처럼 내 마음 적시고
지울 수 없는 추억을 내게 남기고
이제 잊으라는 그 한마디로
나와 상관없는 다른 꿈을 꾸고

이별은 겨울비처럼 두 눈을 적시고
지울 수 없는 상처만 내게 남기고
이젠 떠난다는 그 한마디로
나와 상관없는 행복을 꿈꾸는 너

기도해 볼게 니가 잊혀지기를
슬픈 사랑이 다신 내게 오지 않기를
세월 가는 데로 그대로
무뎌진 가슴만 남아있기를

왜 행복한 순간도 사랑의 고백도
날 설레게 한 그 향기도
왜 머물 순 없는지 떠나야 하는지
무너져야만 하는지

사랑은 봄비처럼 내 마음 적시고
지울 수 없는 추억을 내게 남기고
잊으라는 그 한마디로
나와 상관없는 다른 꿈을 꾸고

이별은 겨울비처럼 두 눈을 적시고
지울 수 없는 상처만 내게 남기고
떠난다는 그 한마디로
나와 상관없는 행복을 꿈꾸는 너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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