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사람 되지 말고 반가운 사람 되십시오
[시편 8편] 자연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
(성가대 지휘자를 따라 '깃딧'이란 곡조에 맞춰 부른 다윗의 노래)
아직 쌀쌀한 봄날 길을 걷다가 문득 나뭇가지에서 연둣빛의 보드란 잎이 돋아날 때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끼곤 한다. 오늘 다윗도 천지를 창조하신 창세기의 하나님을 드높이고 있다. 다윗은 무언가 단단히 깨달음을 얻었는지도, 어쩌면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경험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내가 묵상하는 하나님은 지금껏 교회에서 받았던 신앙훈련 속 하나님과는 조금 다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과 미션 속에만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전인격에서도 함께 하시는 분임을 자각하고 있다고 할까
전에는 세상을 향해 무언가 기치를 내세우는 신앙관에 치우쳐 있었다면 지금은 나의 내면을 향해 나를 갈고닦는 신앙관으로 치우쳐 있다. 언젠가는 이 두 신앙관이 균형을 이루기를 바라면서 지금의 신앙관에 한참 빠져있는 중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 신앙관이 더 좋다.
이러한 신앙관으로 인해 바뀐 대표적인 모습은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이겠다. 전에는 크리스천으로서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응당 바른 모습이었다면 지금은 술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지 않게 하고 그들과 어울려주는 것이 크리스천의 모습에 더 가깝지 않나 생각한다.
물론 부어라 마셔라는 아니다. 가끔 집에서 맥주 한 캔 마실 때도 있지만 혼자서 술을 즐기지도 않는다. 단지 함께 열일한 동료들이 퇴근하며 저녁 겸 반주 한 잔 기울이고 싶어 할 때 반갑게 함께 가서 잔 부딪혀 주는 것, 함께 웃고 궁시렁대기도 하는 것이다.
제 작년까지는 아주 단호했다. 웬만하면 삼삼오오 술자리는 참석하지 않았고 회식이 있어도 사이다로 건배하며 술을 입에 가져가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런 내 신념을 존중한다며 봐주었지만,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모르겠다. 물론 그랬던 내 모습에도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술을 마시고 안마시고가 제일의 가치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무엇이 제일의 가치일까? 이 부분에서 이재철 목사님 말씀에 젖어들었다.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뒤를 돌았을 때, 그곳이 바로 땅끝입니다.", 박영선 목사님의 말씀에 반해버렸다. "훌륭한 사람 되지 말고 반가운 사람 되십시오.", 김기석 목사님의 말씀에도 감화되었다. "예수님은 자신을 경배하라고 하지 않으셨어. 따르라고 하셨지.".
신앙인으로서 내가 생각하는 제일의 가치는, 내가 있는 자리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 옆 사람에게 웃어주는 것,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는 것, 화내지 않는 것, 교회나 버스에서 안쪽 자리부터 앉는 것,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는 것, 해나에게 허리를 숙여 눈 맞춰주고 웃어주는 것, 이런 모습들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