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차] 부르고스 > 혼타나스
[Day 12] Burgos > Hontanas
부르고스는 앞으로 레온까지 끝없이 펼쳐질 메세타 평원을 걷기 전 마지막 도시이다. 외관은 순례자의 행태를 하고 있지만 내면 깊이 도시의 안락함을 익히 알고 있는 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이곳이 줄 수 있는 문명의 산물들을 누리기로 한다. 다만 나처럼 편안함이 주는 기쁨에 무던한 사람들은 굳이 멈추지 않고 묵묵히 다음 길을 걷는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걷는 것을 '오늘 해야 하는 일'과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걷지 않으면 이 순례길에서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 같기에, 노을 아래 찬란히 빛나던 부르고스 대성당의 유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짐을 싸고 알베르게를 나선다.
부르고스는 만남과 헤어짐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오늘 쉬지 않고 걷는 사람들은 어제 쉬었던 사람들과 마주하게 되어있고, 오늘 쉬는 사람들은 내일 쉬지 않고 걷는 사람들과 마주하게 되어있다.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인연을 찾기도 하고, 오래된 인연을 떠나보내기도 한다. 북적한 도시 안에서 이러한 순간들은 생각보다 급박하게 이루어져, 작별인사를 제대로 건네지도 못한 채 소중한 사람들을 놓쳐버리기도 한다.
알베르게를 나서기 전 1층에서 팜플로나에서부터 함께 걸었던 스페인 부부와 브라질 아저씨를 만났다. 평소와는 다르게 그들 곁엔 배낭이 없었고, 식탁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항상 나보다 먼저 출발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다소 의아했지만, '오늘은 조금 늦게 출발하시나 보다' 하는 안일한 생각과 함께 배낭을 메고 출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 걷고 있는 대구 동생을 만났다.
"형님, 오늘 아침에 스페인 부부와 브라질 아저씨랑 인사 나눴어요?"
"아니. 나갈 즈음에 다들 안보이셔서 인사 제대로 못했네."
"그분들 오늘 부르고스에서 머무르신데요."
인연은 그렇게 쉽게 왔다가 쉽게 떠나가는 것이었다. 미처 건네지 못한 작별인사에 남은 아쉬움은 점차 미련으로 변해갔다. 미련은 부르고스에서 멀어지는 발걸음을 먹고 자라 그 크기가 점점 커져갔고, 무릎이 다쳐서 이곳에 머물 수밖에 없던 부산친구를 홀로 두고 온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까지 번졌다. '병원에라도 같이 갈걸.' 혼자 절뚝거리며 병원에 갈 친구의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 한편이 불편함으로 가득 찼다. 나는 빠른 발걸음으로 부르고스를 도망쳐 나오듯 했다. 같이 걷던 대구 동생은 시야에서 멀어진 지 오래였다.
그렇게 도망쳐 나온 길 위에는 무지개가 기다리고 있었다. 푸른 하늘 흩뿌려진 구름 사이 나타난 선명한 무지개였다. 이틀 전 쏟아졌던 비에 대한 하늘의 다소 늦은 대답이었다. 조금 전 홀로 괴로워하던 마음을 달래주는 선물이었다. 사진을 찍어 부산 친구에게 보내주었다. 무릎이 어제보다 많이 나아져서 조금 더 쉬면 괜찮아질 것 같다고 답장이 왔다.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야.' 속으로 되뇌었다.
멀뚱히 무지개를 감상하던 중 대구 동생과 새로운 한국 여성분을 만나게 되었다. 어제 점심에 일본 가락국수 집에서 잠시 스쳤던 얼굴이었다. 신기하게도 그분은 대구 동생과 동명이인이었다. 이름을 부르기가 애매해지자 나는 그 둘의 중간에 서서 좌 00 우 00으로 개명해 주었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지루할 법한 길 위에서 사소한 재미를 찾아갔다. 양평에서 태어난 동생은 간호사 일을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한국을 떠나온 지 4개월 정도 되었고 산티아고에 오기 전에는 다합에서 살면서 프리다이빙 자격증을 땄다고 했다. 나의 넓지만 얕은 취미 목록에 다이빙도 있었기에 우리는 공통 관심사로 대화의 폭을 넓혀갔다.
걷다 보니 저 멀리 무지개가 하나 더 나타난다. 조금 전에 보았던 무지개처럼 완벽한 아치형은 아니지만, 중간에 끊겨있는 모습이 마치 하늘로 향하는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 표현이 무색하게도 무지개에 다다르자 광활한 평원이 펼쳐진다. 하늘이 너무도 푸르른 나머지 구름 한 조각조각이 두 눈에 박힐 정도로 선명하다. 눈이 부시게 강렬한 햇살과 다소 거센 바람은 우리의 옷을 누가먼저 벗기나 시합이라도 하는 듯하다. 다만 이번에는 바람이 이긴다. 우리는 잠시 벤치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할 겸 각자 싸 온 음식들을 나누어 먹는다. 너무도 완벽한 하늘에 이 길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는다. 문득 이곳을 부산 친구와 함께 즐기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부디 무릎이 빨리 나아 함께 걸을 또 다른 날을 기대해 본다.
평소대로라면 저 앞에 보이는 호르닐로스 델 카미노(Hornillos Del Camino)에 묵었겠지만,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에 취해 조금 더 걷기로 한다. 걷던 중 부르고스의 알베르게에서 잠깐 마주쳤던 서울 형님도 합류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 네 명은 불어오는 바람에 서로의 이야기를 전하며 혼타나스(Hontanas)에 도착했다. 씻고 정비를 하니 서울 형님이 부엌에서 짜파게티를 끓여주셨다. 누군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짜파게티를 입에 가득 넣은 채 젓가락으로 텅 빈 냄비를 가리킬 것이다.
우리 넷은 짜파게티를 3분 만에 해치운 후, 알베르게에 올라가 각자 침대에 앉아 산티아고 다음 일정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대구 동생은 유럽을 여행한다고 했고, 서울 형님과 양평 동생은 모로코에 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들은 모두 세계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으며, 괜찮으면 같이 가자고 말했다. 나는 서른 전에 한번쯤 세계를 여행하고 싶었다. 어린 날의 로망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왔음을 느꼈을 때, 내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빈 껍데기가 되었다. 지난날의 나는 세계 여행을 통해 보다 고차원적인 자유를 실현시키고 싶었지만,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세계 여행은 현실에 대한 도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단기간의 자유가 주는 행복만으로는 내가 겪고 있는 내면의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나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저는 산티아고 끝나고 포르투에 들렀다가 귀국하려고요."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알베르게로 올라가려는 찰나에 어떤 프랑스 할아버지를 마주쳤다. 동네 주민분이셨는데 한국어로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한국어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으신 분이었다. 동쪽에 조그만 나라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을 쉽게 지나칠 수는 없어, 알베르게 카운터에 서서 꽤나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나라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에 대한 답례의 의미로 나 역시 프랑스의 와인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스페인의 조그마한 마을에서 프랑스와 한국의 문화교류라니. 산티아고에서 밖에 할 수 없는 경험이지 않겠는가. 그러던 중, 프랑스 할아버지가 한국 노래를 추천해 달라고 하셨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 핸드폰에는 이 마을을 지나간 수많은 한국인들이 남기고 간 플레이리스트가 담겨 있었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를 추천했다. 나 역시도 알베르게에 올라가 오랜만에 노래를 듣는다. 가사를 보니 오늘 나도 모르게 메세타 공원을 걸으면서 바람의 노래를 들은 듯한 착각이 든다.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