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차] 혼타나스 > 프로미스타
[Day 13] Hontanas > Fromista
어제 함께 걸었던 두 동생과 길을 나선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진 탓에 부르고스에서 구매한 비니, 목토시, 장갑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차가운 입김이 떠오르는 햇빛에 서서히 그 모습을 감추려 할 때 어느새 카스트로헤리스(Castrojeriz)에 도착한다. 정식 루트대로면 오늘 여기서 쉬어가야 하지만, 시간을 보니 아직 9시도 채 되지 않았다.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여기서 25km 정도 떨어진 프로미스타(Fromista)까지 걷기로 한다.
험난한 코스를 시작하기 전 허기진 배를 채우고자 마을 곳곳을 돌아다녀보지만, 애매한 시간 탓에 모든 문이 굳게 닫혀있다. 우리 셋은 마을에 있는 어떤 벤치에 나란히 앉아 하늘에서 음식이 떨어지진 않을까 헛된 희망을 걸어본다. 앞으로 3시간은 더 걸어야 다음 마을이 나오기에, 방법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발걸음이 쉽사리 떼어지지 않는다.
배고픔이 지배한 침묵 사이로 한 봉고차가 지나간다. 우리가 앉아 있는 벤치 맞은편 집에 멈춰 서더니 경적을 울린다. 이내 운전자는 차에서 내려 뒷좌석에 있는 바게트빵을 꺼내 문을 열고 나오는 아주머니에게 건네준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거래가 성사 된 후, 운전자는 다시 차에 올라타 출발한다. 우리는 그제야 돌아온 정신으로 사태를 파악한 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벤치에서 동시에 일어나 차를 향해 소리치며 달려간다. "Ola!"
안쓰러운 방랑자 세 명을 사이드 미러로 목격한 운전자는 다행히 그 자리에 차를 세우고 방금 전과 같은 방식으로 다음 거래를 진행한다. 우리는 그렇게 기적적으로 세 개의 바게트빵을 챙긴다. 도파민이 활성화되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바게트를 뜯어먹는다. 이내 이성을 되찾고 다시 벤치에 앉아 대구 동생이 늘 챙겨 다니던 딸기잼과 함께 가까스로 아침 식사를 마무리한다. 소박했을지는 몰라도 순례길을 걸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아침이었다. 남은 바게트는 배낭의 옆주머니에 꽂아놓고 우리는 다음 마을로 출발한다. 가는 길에 마을 한복판에 공사판을 마주한다. 옆길로 돌아가려는 찰나에 인부들이 불을 피우는 모습을 목격한다. 터벅터벅 걸어가 그 앞에서 얼어붙은 몸을 녹인다. 우연을 가장한 하늘의 은총이었을까.
여행을 가장 여행답게 만드는 건 바로 이러한 순간들이 아닐까 싶다. 많은 사람들은 여행을 갈 때 철저한 계획하에 움직이곤 한다. 나도 그랬던 경험이 있다. 도시의 랜드마크에서 사진을 찍고, 긴 웨이팅 끝에 맛집에서 현지 음식을 먹는다. 다만 이러한 반복적인 경험은 내성이 생기게 되어 어느새 권태로움을 느끼게 한다. 그런 순간들을 경험한 뒤 나는 무계획으로 즉흥적인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남들을 따라 하는 정형화된 여행이 아닌, 나만의 여행을 하며 낯선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특별한 하루를 만들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순간들 사이 발생하는 예기치 못한 행복의 가치는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산티아고 순례길도 언제 어디서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경험을 할지 모르기에 매일이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차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이 거세진다. 다음 마을인 이테로 데 라 베가(Itero De La Vega)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언덕을 하나 넘어야 한다.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언덕을 오르자니 일주일 전에 마주했던 용서의 언덕이 생각난다. 언덕의 꼭대기에 올라 지나온 길을 감상하던 중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팜플로나에서부터 가끔 마주치며 인사를 건넸던 이냐시오라는 아르헨티나 출생의 덴마크 친구였다. 우리는 서로를 보자마자 각자의 배낭 옆에 꽂혀있는 바게트를 확인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묘한 동질감의 기운이 맴도는 순간이었다. 나란히 언덕을 내려오며 우리는 처음으로 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마치 어린 시절 엘리베이터에서 학교에 등교할 때마다 자주 마주치던 또래 친구를 학년이 올라간 뒤 같은 반이 되어 만났을 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대화를 나누던 그런 느낌과 비슷했다.
이냐시오는 나와 동갑이었다. 어린 시절 덴마크로 이민을 왔고, 원래는 목수 일을 하고 있었는데 본인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잠시 그 일을 내려놓고 순례길에 올랐다고 한다. 내가 IT 업계에서 일한 다고 하자 이냐시오가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어릴 적부터 파일럿을 해보고 싶어서 도전해 볼까도 고민 중인데, 이러한 직업도 결국엔 AI로 대체되지 않을까?"
"음.. 아무래도 목수보다는 파일럿이 대체될 확률이 더 높지."
(물론 로봇의 성능이 좋아진다면 목수도 장담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하드웨어의 발전은 소프트웨어의 발전보다 느리기에 아직은 괜찮다.)
AI의 발전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수 함수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그 발전 속도의 기울기가 기하급수적으로 가팔라지고 있다. 이미 사람이 하는 일의 많은 부분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은 구현이 되어있지만, 결국 법과 정책의 방호벽 아래 우리는 간신히 노동의 패권을 지켜내고 있다. 예전에는 기술의 지나친 발전을 비관적으로만 생각했다. 법과 정책이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술만 과도하게 발전한다면 사회에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끝없이 성장하는 미국을 보면서 어쩌면 내가 틀렸을 가능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기술의 발전으로 혁신을 이루면서 그에 맞추어 법과 정책을 재정비하는 듯한 모습이다. 트럼프의 집권 아래 테슬라의 자율주행 로보택시는 생각보다 빠른 시일 내에 상용화가 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면 기존에 운송수단 관련 일을 하고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직업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은 안타깝지만 당연한 일이다. 기존에 마차를 몰던 사람들의 실업을 걱정했다면 우리는 지금 자동차를 타고 다니지 못했다. 그때 당시에도 사회적으로 혼란이 있었겠지만, 사람은 언제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 늘 그렇듯이 답을 찾아냈다.
보다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의 흐름에서 조금이라도 뒤쳐지는 순간 경쟁에서 밀리는 세상이 되었다. 브레이크가 없는 미국은 현재 그 정점에 올랐고, 다른 나라와의 격차를 매일 갱신하고 있다. 기술의 발전이 야기할 수 있는 문제점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것을 과도하게 신경 쓰느라 그 발전을 막아버린다면 앞으로 영원히 미국을 따라잡을 수 없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우리는 아직도 서류로 일하는 일본을 보면서 답답해하지만, 2030년 즈음 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방문했을 때 사람이 운전하는 택시를 보면 비슷한 의미로 놀라워하지 않을까.
길가의 한 벽화에 '이민자 추방'이라는 글씨가 크게 적힌 것을 보았다. 나는 이냐시오에게 요즘 유럽에 불법 이민자 이슈가 심각하냐고 물어봤다. 그는 한숨을 푹 쉬며 인터넷에서 한 장의 사진을 검색해서 보여주었다.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많은 보트에 사람이 꽉 차서 유럽에 들어오는 모습이었다. 유럽 곳곳에서 시위가 일어나는 사진들도 보여주었다. 아프리카와 중동 쪽 내전이 계속 발생함에 따라 이민자의 수가 점점 많아진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정치 성향이 왼쪽에 가까운 나라에서는 이들을 수용하는 정책을 내세운다는 것이었다. 이민자들 때문에 기존에 살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는 경우도 생겨나고, 늘어나는 이민자에 높아진 세금 문제도 발생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이민자들이 각종 범죄를 일으키면서 사회적으로 엄청난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냐시오는 이런 이민자들을 더 이상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이 이민을 올 수밖에 없던 이유도 이해한다고 말해주었다. 이렇게라도 유럽에 오지 못한다면 본국에 있는 가족이 먹고살 길이 없기 때문에 인생을 걸고 넘어오는 것이라 했다.
서로의 입장 차이로 인해 벌어지는 문제점이다. 이미 여기에 절대적인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결국은 좋은 정책을 통해 현재 상황을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개선해나가야 한다. 앞서 이야기한 AI가 이를 해결할 수 있을까? 아니다. AI는 객관적인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지 주관적인 판단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다행히도.) 그렇다면 이러한 결정이야말로 사람의 몫이다. 만약 내가 정책담당자라면 어떠한 선택을 했을까. 이냐시오와의 대화 끝에도 나는 적절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혼자 걸으면서 사색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걸을 때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된다.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다음 마을에 도착했고, 이냐시오와 함께 점심을 먹고 같이 프로미스타로 출발했다. 날씨가 점점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날씨도 제법 쌀쌀한 상태에서 비까지 오니 프로미스타까지 가겠다는 아침의 선택이 잘못되지는 않았나 스스로를 자책해 본다. 그렇다고 별다른 해결책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걸어가는 수밖에.
꾸역꾸역 프로미스타에 도착했다. 알베르게에서 젖은 옷들을 널어두고 1층에 내려가 난로에 몸을 기댄다. 어제 반바지를 입고 순례를 하며 지나간 영국인 아저씨를 만난다. 나는 그에게 축구 얘기를 꺼내며 대화를 시작했고,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떠들었다. 사람은 누구나가 공통된 관심사를 가진 이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관심의 깊이가 깊을수록 호감도가 급격히 상승한다. 그렇기에 누군가와 대화할 때는 그 사람의 관심사 얘기를 먼저 꺼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오늘도 깨닫는다. 프랑스 사람을 만나면 와인 이야기를 하고. 아일랜드 사람을 만나면 위스키 얘기를 하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사람들과의 대화법도 익혀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