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을까?
올해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말이 있다. DRX의 기적적인 롤드컵 우승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까지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었다. 롤에 문외한인 나로서 DRX가 보여주었던 대서사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다소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우리나라 선수들이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매경기 최선을 다해 이루어낸 9%의 기적은 한 명의 열성 축구팬에게 감동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황희찬의 결승골이 터진 순간부터 친구와 나는 펍에서 일어나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고,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길고 긴 10분을 지나 마침내 가나-우루과이 경기의 종료 휘슬이 울렸을 때 나도 모르게 두 손을 깍지 끼고 '정말 잘했다.'는 말을 수없이 속삭였다. 입 밖으로는 줄곧 대표팀을 응원하면서도 속으로는 내심 16강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한 나에게 그들은 보란 듯이 증명해냈다.
'매번 이번 월드컵 누가 우승할 거 같냐?'라는 질문에 '아르헨티나가 우승했으면 좋겠다.'는 말로 일관했다. 이번 대회 우승으로 메시가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라는 타이틀에 마침표를 찍기를 바랐으며, 마이클 조던처럼 그의 라스트 댄스가 성공하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아르헨티나가 사우디에게 발목을 잡힐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도전에 의구심을 표했지만, 그다음 경기부터 아르헨티나는 보란 듯이 증명해냈고, 결승전에서 프랑스를 꺾으며 메시는 본인 커리어의 마지막 조각을 완벽하게 끼워 맞췄다. 매 아르헨티나 경기를 볼 때마다, '메시의 월드컵 우승'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군단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들에게도 투지와 열정, 그리고 꺾이지 않는 마음이 있었다.
여운이 많이 남는 월드컵을 뒤로한 채, 아무 생각 없이 혼자 바다로 여행 왔다. 올해를 돌이켜보니 TV 속 스타들과는 다르게 나의 마음은 매 순간 꺾이고 부러졌으며, 계절이 분기마다 바뀌는 동안에도 나의 초라한 모습만은 변하지 않았다. 부단한 노력 끝에 원인을 찾는 데는 성공했으나, 아직 해답은 찾지 못했다.
나름의 가치관이 뚜렷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자.' 내 생각이 옳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현재 회사에 취직했다. 국내에서 가장 큰 IT 기업에서 일한다면 거인의 어깨에서 내딛는 한 발자국, 한 발자국으로 온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입사 후, 몇 개월간은 배움에 초점을 맞췄다. 누구보다 빨리 배워서 많은 일을 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가슴 뛰는 일을 하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싶었다. 대기업에서 갖기에는 너무 나이브한 생각이었을까. 나라는 사람이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은 터무니없이 작았다. 이미 올해의 일정은 작년에 미리 정해져 있었고, 2022년은 그렇게 마일스톤에 따라 기계적으로 흘러갔다. '나의 생각'이 자리할 공간은 없었다.
그러던 중, 올해 중순 입사 1년 만에 내가 광고주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플랫폼을 기획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누구보다 들뜬 마음에 1달간 열심히 기획서를 작성했다. 중간중간 팀장님께 보고도 하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다. 그러나 막상 최종적으로 과제를 컨펌받고 진행하려고 할 때 팀장님의 한마디가 마음에 비수를 꽃았다. "사실 내가 기획서를 다 읽어보지는 않았는데, 이번에 진행하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좀 다른 걸로 하면 어떨까요?" 무너져 내렸다. 회사 입사 후, 처음으로 '온전히 나 스스로' 기획했던 것이 시작도 전에 그 말 한마디로 엎어진 것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안타깝게도 그 이후로 일에 대한 열정을 잃었다.
지난 1년간 회사를 다니면서 돈도 벌고,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 무엇보다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 다만 언제나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계속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불행 중 다행이게도, 나는 이 사건 이후로 자신을 괴롭히는 것에 대한 무형의 것에 형태를 잡아갈 수 있었다. 그것은 그릿(GRIT), 열정적 끈기의 부족이었다. 나는 매일 출근이 기다려지지 않았다. 내 일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열정의 원천이 되는 흥미가 없는 상태에서 나는 일에 몰두할 수가 없었다. 회사에서의 인정과 이전엔 볼 수 없었던 계좌의 숫자는 나에게 그 어떤 의미도 될 수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줄곧 사람들에게 '가슴 뛰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되는데..'를 반복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렇게 나의 마음은 꺾였고 다른 회사, 다른 일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근본적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도피성으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거기서 일하는 것이 지금보다는 좋아할 수 있는 일이겠지. 그럴 거야. 그렇고 말고.' 준비가 되지 않는 나를 원하는 곳은 없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좌절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기는커녕, 사실 뭐 그리 원하지도 않았어라는 말로 자기 위안만 일삼게 만들었다. 그때 내가 그곳에 가지 못한 이유는, 오롯이 내가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아니, 내가 그것에도 열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그곳에 가도 나는 그 일을 사랑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만약 그것이 내 천직이었다면, 나는 지원하기도 전에 열정이 가득했을 것이고, 수월히 면접을 합격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마주하는 현실이 괴로워서 또다시 내가 좋아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나섰다. 이래저래 큰 재주가 없는 나는 그래도 내 삶에 가장 익숙한 '투자'를 제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전과는 다르게 마음이 조급했다. 스스로 증명해내야겠다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이것마저 실패한다면 나의 쓸모를 내가 정의하기 힘들어질 것만 같았다. 이미 거기서부터 승패는 갈렸다고 생각한다. 변동성이 급격한 시장은 자리잡지 못한 나의 마음을 부러뜨리기에 제격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나의 약한 마음을 계속 꺾었다. 나는 내가 세운 원칙을 고수하지 못했고, 조급하게 매수하여 공포에 매도하였다. 지금까지 주식으로 3년간 번 수익 전부를 시장에 반납했다. 아마 수익보다 더 많이 반납했을지도 모른다. '장이 안 좋아서..'라는 핑계는 사치다. 그 와중에도 벌 사람은 벌기 때문에.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고 보니 어느덧 겨울이 찾아왔다. 여전히 나는 갈 곳은 잃은 어린양이 되어 '가슴 뛰는 일!'을 외치지만, 정작 달라지지 않은 현실에서 살고 있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여전히 나는 '어떻게 하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세상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까?'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을 지속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때도, 대학교 때도 나는 끊임없이 같은 질문에 해답을 갈구했다. 다만 그때는 대학 진학과 취업이라는 단기적인 목표가 우선이었기 때문에 뒤로 미루어도 되었었다. 그렇기에 현재 장기적인 목표만이 남은 지금 나의 삶에 중요한 변곡점에서 나라는 사람의 존재 가치를 명명하는 원초적인 질문은 여전히 대답하기가 어렵고, 그것이 나를 더욱 초라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유난히 더 추운 겨울이고, 유난히 힘든 한 해다.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좋아할 만한, 가슴 뛰는 일을 찾는 나에게 최근 누군가 어깨를 두드렸다. 내 삶의 은인 중 한 분이신 게임회사 CEO님이셨다. 스티브 잡스의 말을 인용하며 말을 건네셨다.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To make a dent in the universe. 우주를 놀라게 하기 위해서. 근데 어떻게 우주를 놀라게 할 수 있을까요?" 내가 대답했다. "제가 하는 일에 열정을 갖고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진 채 정진하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말씀을 계속하셨다. "근데 그게 참 쉽지 않아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는다는 게. 물론 그렇게 되면 베스트이지만. 아마 몇 년, 몇십 년이 걸려도 못 찾을 수 있어요. 그러면 그때까지 손가락 빨고 있을 거예요?" 또다시 스티브 잡스의 말을 인용하셨다. "Connecting the dots. 지금까지 살면서 있었던 여러 순간들이 지금은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면 이것들이 연결이 된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공자의 말을 덧붙이셨다. "지천명. 공자는 자신이 50살이 되었을 때 비로소 하늘의 명을 알았다고 하네요. 제가 지금 딱 그 나이쯤 되는 거 같은데, 저도 이제 뭔가 우주를 놀라게 할 무언가를 찾은 거 같아요. 이제야 제가 하는 일이 너무 즐겁고 재밌어요. 저도 사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제가 좋아하는 것은 한 적은 없던 것 같아요. 다만, 저는 모든 일에 대해 '이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라는 자기 최면을 아주 잘 걸었어요. 그러다 보니 좋아하지 않는 것도 좋아하는 것처럼 최선을 다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매사에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죽을 둥 노력하다 보니 어느새 그 순간순간이 점이 되어서 지금에 이르게 되더라고요. 지금 돌이켜보니 쓸모없는 경험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자기 최면을 끊임없이 걸어 온갖 일들에 최선을 다해보니, 이제 지천명의 나이가 되어서 진짜 일이 좋아졌어요. 이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겠고요. 당신도 한번 내가 여기의 임원이 되겠다는 마인드로 진짜 자기 최면을 걸어서 해봐요. 그러면 출근이 기다려질걸요? 그러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찾아오더라고."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거 같았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사고의 발상이었다. 지금껏 나는 좋아하는 일을 찾을 생각만 했지,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할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 길이 나은지는 아직 올바른 판단을 하지는 못하겠다. (이건 그 누구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에게 이제 보다 쉬운 선택지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이후로,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가 지금 하는 일에 있어서 매 순간 최선을 다했나? 답은 간단했다. No. 나는 단 한순간도 이 일에 진심인 적이 없었다. 노력하면 될 수 있는 일들도 그냥 시스템, 사회 탓으로 돌리며 모른 체했다. 지금의 무기력한 나를 만든 것은 오로지 '나의 탓'이었다. 부디 이 순간 나의 자책이 하나의 중요한 점이 되어 미래에 우주를 놀라게 할 원동력이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