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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orba Oct 10. 2023

좋은 기획자, 좋은 시니어, 좋은 리더

좋은 팀에서 일한다는 것은 축복이다

나도 이제 어느덧 3년 차 기획자이다. 기획자로써 일한 시간은 쌓여만 가는데, 과연 나는 좋은 기획자가 되어가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표를 지울 수는 없다. 주위에서 일하는 다른 직군인 개발자나 디자이너는 좋음의 기준이 나름 명확해 보인다. 개발을 잘해서 어떤 것이든 뚝딱 만들어 내는 것. 디자인을 잘해서 어떤 것이든 아름답게 만들어 내는 것. 기획을 잘해서 이후에 나오는 빈칸은 아직 내 기준에 상당히 모호하다. 매출을 잘 내는 것? 프로젝트를 잘 이끌어 가는 것? 사용자에게 편리하게 상품을 설계하는 것? 소통을 잘하는 것? 데이터 분석을 잘해서 니즈를 잘 파악하는 것? 저마다의 다른 의견이 있을 뿐이고 정량적으로 평가하기 힘들다. 그래서 매번 리더님과의 면담 시간마다 '좋은 기획자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반복한다. 그러나 리더님이 말씀해 주신 좋은 기획자의 기준도 사실은 칼로 물 베기처럼 명확하게 그어지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주관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조금만 생각을 전환해서 생각을 해보면, 사람들이 저마다 다르게 주장하는 좋은 기획자의 조건을 모두 다 갖추고 있으면 그것이야말로 모두가 인정하는 좋은 기획자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개발 지식이 뛰어난 기획자. 데이터 분석을 맛깔나게 하는 기획자. 어떤 프로젝트를 설계하건 거대한 매출을 이끌어내는 기획자. 소통이 뛰어나서 아무 트러블 없이 일을 빠르게 진행시키는 기획자. 그 밖에 알아내지 못한 다른 것들도 포함될 것이다.


오늘 정오 즈음에 회의가 있었는데, 오랜만에 부담이 가득한 회의였다. 시니어들이 대거 참석한 규모가 큰 회의였고, 내가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프로젝트여서 내가 스펙을 정리하여 기획서를 쓰고도 100%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여 다시 한번 스펙을 정리하고 있던 찰나, 리더님과 시니어 사수님이 회의 전에 우리끼리 먼저 회의를 하자고 하셨다. 나에 대한 배려였는지 회의에 대한 준비였는지 알 수는 없겠지만, 그 회의로 죽어있던 자신감이 좀 올라올 수 있었다. 내가 명확하지 않았던 부분을 리더님이 캐치해 주셨고, 기획서를 제안하는 방식을 사수님이 교정해 주셨다. 전혀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인사이트였기 때문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두 분 모두 나보다 몇 수 앞은 내다보고 계신 것 같았다.


올라온 자신감으로 회의를 진행했지만 10분 만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회의에 참석한 다른 분이 기획서에 대해서 질문을 주었는데 내가 그분이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래도 스펙에 대해서 많이 알았다고 생각을 했는데 허점이 있었던 것이다. 순간 몇 초간 정적이 흘렀고 입을 떼려는 찰나 리더님이 '이 부분은 이런 뜻에서 말씀하신 것 같은데, 제가 이해하고 있는 게 맞을까요?'라고 그 질문을 본인이 이해한 대로 풀어서 설명하며 상대방의 의견을 구했다. 리더님의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스펙이 정리가 되었다. 이어서 질문자와 리더님이 핑퐁을 하며 점점 스펙이 구체화되던 찰나에 애매한 포인트가 나왔다. 그 순간 시니어 사수님이 구원투수처럼 등장하여 핵심을 짚어주었다. 나는 초반에 기획서를 공유만 하고 나머지 시간을 마이크 끄고 두 분이 말씀하신 것을 받아 적었다. 자칫 내가 망칠 수도 있던 회의를 두 분이 잘 마무리해 주셨다. 회의가 끝난 후, 다시 리더님과 사수님이 나에게 회의를 요청 주셨다. 방금 전 회의에서 나온 스펙에 대해서 리더님이 다시 정리해 주셨고 기획서를 어떤 새로운 방향으로 수정하면 될지에 대해서 가이드를 주셨다. 사수님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들어가면 더 이해가 쉬울지에 대해 코멘트를 주셨다. 그 누구도 나에게 잘못했다고 나무라지 않으셨다. 항상 이런 식으로 나에게 말씀 주신다. '이렇게 기획서를 쓴 부분은 좋은데, 이런 식으로 바꾸면 더 좋을 거 같은데요?' 


오늘도 두 분을 보면서 좋은 기획자가 되기 위한 수많은 조건 중 하나를 배웠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재빠르게 핵심을 캐치해서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명확하게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것. 사수님을 보면 본인이 담당하는 영역에 회사 그 누구보다 전문가이다. 어떠한 문제가 발생해도, 어떠한 질문이 들어와도 한치의 망설임 없이 해답을 주신다. 오늘 내가 정의한 좋은 기획자에 완벽히 부합하신다. 도메인에 대한 지식이 누구보다 풍부하시고 끊임없이 트렌드에 맞춰서 공부하시기 때문에 그런 역량을 매 회의 때마다 보여주시는 것 같다. 좋은 시니어로써 나에게 기획을 할 때는 해답을 먼저 제시해 주시는 게 아니라 내 생각을 먼저 여쭤보신다. 그 후에 본인이 생각하는 것을 말씀해 주신다. 정확한 의중은 모르겠지만 항상 본인의 생각이 100%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는 것 같다. 리더님 역시 누구보다 우리 팀이 맡은 업무에 대해서는 확실한 전문가이시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팀원들이 어려워하고 이해 못 하는 부분들이 생길 때마다 누구보다 먼저 다가와서 도움을 주신다. 말하지 않아도 미리 알고 계신다. 그리고 항상 잘했다고 칭찬해 주시며, 각 팀원이 본인이 가진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각자의 스타일에 맞춰서 일할 수 있게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신다. 그리고 어려움을 겪을 때는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해결해 주신다. 이런 리더와 함께 라면 팀원으로써는 스트레스 없이 본인의 업무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좋은 기획자, 좋은 시니어, 좋은 리더. 그것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나의 시니어 기획자, 리더 기획자를 보며 수많은 조건 중의 많은 부분을 매일같이 배운다. 좋은 팀에서 일한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분들에게서 좋은 기획자, 시니어, 리더로써의 면모를 보고 배우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된다. 너무 힘들었던 회의였지만 다시금 두 분에게서 많은 역량을 배운다. 아직까지 나는 갈 길이 먼 쪼꼬미 기획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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