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나은 기획자가 되기 위한 발걸음
잘하는 기획자가 갖추어야 할 역량은 무엇일까? 본인은 소통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소통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상대방이 좋아하는, 잘하는 분야에 대해 전반적인 이해도를 갖고, 이를 바탕으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해외축구팀 중 아스날을 응원하는 사람에게 손흥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보다 부카요 사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그 사람과 대화하는 데 있어 티키타카를 가능하게 하듯이 말이다. 그래서 나도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알아가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기획자가 업무를 하면서 가장 많이 소통하는 사람은 개발자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기획한 기능들을 구현해줄 사람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보다 효율적인 업무처리를 위해, 개발자분들과의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원활한 소통을 하기 위해 기획자가 갖추어야 할 역량은 전반적인 개발 지식일지도 모른다.
물론, 본인도 이러한 거창한 이유 때문에 처음부터 개발 공부를 시작한 것이 아니다. 대학교 2학년 시절 창업을 시작했을 때, 최소한의 기능만을 포함한 웹사이트를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웹사이트가 어떻게 구현되는지도 모르는 나는 이걸 어떻게 만들까 고민하다가, 코드를 작성할 필요 없이 드래그 앤 드롭만으로 웹사이트를 만들 수 있는 워드프레스라는 좋은 빌드 툴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게 친구랑 같이 1달여 만에 서비스를 론칭할 수 있었다. 웹사이트를 만들면서 도메인, 호스팅, 서버, DB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든 서비스화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개발 도메인 지식을 꾸역꾸역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서비스가 점점 커지면서 사용자들의 요구사항이 많아졌다. 그리고 이를 충족하기 위해 여러 기능들을 기획했다. 그때 웹사이트를 친구가 관리했었는데, 내가 기획한 것마다 구현이 안된다고 했다. 고도화된 기능들은 워드프레스로 툴로 작업을 할 수 없었다고 얘기했다. 나는 그쪽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 아쉽게도 기획한 것들을 구현하지 못했다. 그때 내릴 수 있던 선택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개발자를 외주 하거나 고용해서 아예 새로 웹사이트를 만드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주먹구구식으로 워드프레스에서 부분 구현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방법을 선택하려고 여러 미팅을 해보니, 비용이 생각보다 너무 많이 들어갔다. 원하는 기능이 많아질수록 요구하는 비용은 더욱 늘어났다. 개발지식이 없다 보니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라는 판단도 서지 않았다. 그 사람에 대한 실력을 검증할 방법도 없었다. 핵심적으로 개발하는데 필요한 리소스와 시간이 너무 많이 들었고, 스타트업으로써 그것을 감당할만한 여유가 없었다. 여러 문제에 직면하고 두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시간이 흘러 창업한 회사에서 나오고 AI를 공부했다. 해당 분야의 기초지식을 갖고 개발 공부를 시작했다. 데이터 분석할 줄 아는 개발자가 그때는 멋있었나 보다. 어쩌다 좋은 기회로 한 스타트업에 개발자로 일을 하게 되었다. 거기서 친해진 개발자분이랑 이야기하다가 그분도 워드프레스를 사용해서 예전에 홈페이지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갑자기 예전에 창업할 때 기억이 생각나서 그때 기획했지만 반려된 기능들을 혹시 워드프레스에서 구현할 수 있냐고 물었다. 그분의 대답은 '아주 쉽게'였다. 워드프레스 내에 특정한 테마에다가 본인이 custom 한 css와 javascript를 이렇게~ 이렇게~ 입히면 된다고 하셨다. 이 때는 그분이 하는 이야기를 80% 이상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1년 전 내가 개발 지식을 갖추고 있었더라면 친구에게 내가 기획한 기능을 이렇게~ 이렇게~ 구현하면 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나는 개발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 그리고 친구들이랑 프로젝트로 앱을 만들게 되었다. 친구들은 컴퓨터공학과 학생들로 어느 정도의 개발을 할 줄 알았다. 처음 내가 머릿속으로 기획한 것들을 어떻게 구현해야 할지 서비스 아키텍처부터 DB 스키마까지 친구들과 같이 만들었다. 내가 프런트엔드를 전담했고, 나머지 두 명이 백엔드를 해주었다. 앱을 직접 만들면서 필요한 기능들이 있으면 친구들에게 요구사항을 상세하게 요청했다. 업무를 하는 데 있어서 소통의 문제점을 단 하나도 느끼지 못했다. 백엔드에서 구현이 힘들고 리소스가 많이 드는 기능은 유연하게 대처했고, 왜 안되냐고 투정 부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현재 회사에 플랫폼 기획자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막 1달이 지났지만, 내가 주먹구구식으로 공부했던 개발 지식이 기획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플랫폼 기획일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새로운 기능을 구현할 때 이게 가능한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우선 DB 구조와 ERD를 알아야 했다. 그리고 그것이 베이스가 되어야 개발자들과 회의에서 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었다.
개발자 : '아니 글쎄 이거 안된다니까요?'
기획자 : '이거 그냥 이렇게 하면 되는데, 뭐가 어려워요?'
이렇게 되면 소통이 이루어지기는 커녕 개발자와의 관계만 나빠진다.
기획자로써 어떤 지표를 보고 싶을 때 개발자에게 일일이 청하는 것보다, 본인이 직접 쿼리문을 작성해서 DB에서 데이터를 조회하고 엑셀로 뽑아보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리소스도 덜 낭비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개발 공부한 덕을 보고 있다.
보다 나은 기획자가 되기 위해서 갖춰야 할 역량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요즘이다. 그 고민의 결론은 개발자 출신의 기획자로 좁혀지고 있다. 개발자가 아닌 기획자로 첫걸음을 내딛는 내가 보다 기획일을 잘하기 위해서 개발 공부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