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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붓에서 요가를 스치다

발리살이 (1)

by Zorba

여행은 늘 좋았다. 어딜 가던 누구와 가던 여행은 실패할 수 없는, 나에게 기쁨이라는 감정을 절대적으로 보장해 주는 보증수표였다. 그런데 올해 들어 여행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매 여행 출발 전 나를 찾아오던 설렘이라는 감정도 요즘은 잘 보이지 않는다. 몇 년 전, 세계 곳곳을 여행 다니는 디지털 노마드가 꿈이었던 나는 보란 듯이 그 꿈을 현실로 이루었다. 그런데 현실이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다.


경제학 강의 시간에 들은 내용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자원은 희소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 여행이란 벽이 예전과 비교했을 때 많이 낮아졌기 때문에 그 가치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아마 그럴 수 있을 것 같지만 충분한 답변이 되지 못한다. 현재까지 가장 내 마음에 드는 답변은 아마 '내 안에 아직 여행으로 절대 채울 수 없는 무언가가 깊게 자리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현재 내 삶은 지나치게 안정적이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간다면 적어도 남들과 비슷한 삶을 살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들고 있다. 다만 문제는 이러한 삶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삶을 벗어나 어떠한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일을 때려치우는 것 금방 할 수 있겠지만, 그다음에 무엇을 할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 그런데 내가 모든 걸 다 바쳐서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것이 있나?


마음이 뒤숭숭한 와중에 발리에 도착했다. 그토록 오고 싶어 했던 발리이지만, 역시나 이번 여행에도 설렘은 없었다. 우붓에 도착하니 길 곳곳마다 힌두교 사원들이 보인다. 발리에서 한달살이 하는 동안 내 삶에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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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관심이 없던 요가 클래스도 수강했다. 혹시나 이런 시간 속에서 나에 대한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하여. 한 30분 동안 자세를 따라가기도 벅찼다. 몸은 땀으로 뒤범벅되었고 마치 근력운동을 한 것만 같았다. 마음은 요동치기 바빴다. 자세는 무너지기 일쑤였고, 나 혼자 균형을 잡지 못해 버벅거리고 있었다. 마치 불안정한 내 상태와 같았다. 요가 선생님이 내 몸의 에너지를 느끼라고 계속 말씀하셨는데, 처음에는 도대체 무슨 말인가 어리둥절하였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어떤 자세로 있을 때 몸 어디에 힘이 들어가는지 알 수 있었다. '아직 나는 내 육체조차도 잘 모르는구나.'


마지막 10분은 본인의 가장 편한 자세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을 반복했다. 옆에 어떤 분이 물구나무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자로 누웠다. 몸에 긴장이 풀리니까 스르르 졸음이 찾아왔다. 그 순간 산들바람이 휑하고 지나갔다. '일어나야지. 힘을 빼고 있으니까 그렇게 자는 거야.'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다 수업이 끝났다는 선생님 말씀에 하산하였다. 발리에 있는 동안 요가를 더 배워보고 싶다. 욕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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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고 허기져서 바로 점심 먹으러 갔다. 인도네시아 음식 하면 사실 나시고랭밖에 생각나지 않아서 그거 먹으려 했는데, 미고랭을 먹게 되었다. 찾아보니 '고랭 = 볶음', '나시 = 밥', '미 = 면'이었다. 볶음밥보다는 볶음면이 더 당겼기 때문에 메뉴 선택을 주저하지 않았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밀려왔다. 이제부터 인도네시아는 나시고랭보다 미고랭이다. 내가 확실하게 좋아하는 거 한 가지를 생각보다 쉽게 찾았다. '맛있는 음식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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