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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붓에서 물과 함께 흐르다

발리살이 (2)

by Zorba

이전에 이어령 씨의 폭포와 분수라는 수필을 읽어본 적이 있다.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자연적'과 '인위적'이라는 표현이 대조로 형상화된 모습이었다. 그간 도시살이에 익숙해진 탓인가. 폭포보다는 분수를 보는 날이 많았다. 우붓에 오니 구글 맵스 곳곳에 보이는 폭포가 그리 반가울 수가 없었다. 요세미티 공원 놀러 갔을 때 보았던 면사포 폭포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려서 일 수도. 자연 속의 폭포는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항상 아침에 봐왔던 것 같다. 싱그러운 햇살을 머금으며 높은 곳에서 하염없이 떨어지는 물이 그렇게 좋았다. 발리에서 어떤 폭포를 갈지 고르다가 선택한 곳은 뜨구눙안 폭포 (Tegenungan Waterfall).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전날 빌린 스쿠피를 타고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그곳으로 행했다.


우거진 수풀 사이에서 쏟아지는 물줄기. 이미 아래에 모여있는 물 분자 친구들을 향해 위에서 떨어지는 녀석들은 반가운 듯 자연 분무기를 만들어낸다. 그 주위에 있으면 괜히 온몸에 미스트를 뿌리는 것처럼 상쾌하다. 아침잠을 깨우는 데는 폭포만 한 게 없다. 괜히 또 수풀 사이에 떨어지는 물을 보자니 알게 모르게 신성한 느낌이 든다. 우붓이 주는 그 기묘함에 나도 모르게 세뇌된 것만 같다. 우붓이 막 엄청 매력적이진 않는데 자꾸만 끌린다. 왜 외국인들이 발리를 사랑하는지 알 것 같다. 동양 하면 흔히 떠오르는 오리엔탈리즘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곳이 바로 발리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특히 우붓은 더욱더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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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떨어지는 폭포를 밑에서 감상했다면, 이제는 진짜 물과 함께할 시간이다. 아융강 래프팅. 그간 잔잔한 호수 카약은 여러 번 해봤지만, 흐르는 강 래프팅은 처음이라 설렜다. '흐르는 강물처럼' 영화에서 플라잉 낚시와 래프팅을 즐겨하는 브래드 피트의 모습이 갑자기 생각난다. 그는 내가 본 자연인 중에서 가장 멋진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속이 굉장히 단단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래프팅을 시작하기 전 잠시나마 브래드 피트가 되는 상상을 했다. 아쉽게도 물살이 그렇게 세지는 않아서 영화의 연출을 현실에서 구현할 수는 없었다. 아융강 래프팅은 마치 자연판 신밧드의 모험 혹은 아마존 익스프레스 같았다. 인위적으로 월드를 만들지 않아도 자연이 알아서 관광 그 자체가 되어주는 발리. 괜히 신들의 섬이 아니다. 이쯤 되면 섬 자체가 제발 좀 놀러 오라고 손짓하는 것만 같다.


가이드와 함께 보트에 올라타고 노를 저으며 강의 흐름에 올라탄다. 이미 흐르는 강물에 내 몸을 맡기는 것이기 때문에 카약킹과 다르게 노를 주기적으로 저을 필요가 없었다. 물살이 세지는 구간에서 패들링을 하지 않은 채 강물을 따르기도 하고, 패들링을 더욱 거세게 하며 강물을 거스르기도 한다. 잔잔한 매력의 카약킹과는 다르게 굉장히 활력이 넘치는 스포츠였다. 중간에 잠깐 보트에서 내려서 수영을 해보았는데, 근처 나뭇가지 중 하나가 된 듯 물살에 자연스레 둥둥 떠내려 가졌다. 도중에 한번 물살을 거스르는 시도를 했다가 팔뚝에 영광 하나 없는 상처를 내고 말았다. 연어는 도대체 어떻게?


강 주변으로는 울창한 수풀이 끝없이 이어졌다. 중간중간 보이는 돌에는 발리 신들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가이드 말로는 현지인들이 직접 조각했다고 한다. 시간의 흐름은 잊은 채 강물의 흐름에만 온전히 나를 맡기고 둥둥 떠내려갔다. 물에 젖는다고 숙소에 모든 전자기기를 놓고 온 게 나름 좋은 선택이었다. 한 시간 반 동안 오로지 강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끝나고 돌아오니 벌써 해가 진다. 매일 다른 색으로 물드는 우붓의 하늘은 신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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