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상황에 치이면서도 사람에게 의지했던 지난달
거창하게 계획을 세우는 것을 좋아한다. '내일 죽을 수도 있잖아' 하는 모순적인 생각을 반복하면서도, 매일같이 10년 뒤 모습을 상상하며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는 것을 즐겨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삶은 내가 수없이 그렸던 것처럼 흘러간 법이 없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반복될 때마다 스스로 '이곳에 다른 길이 있겠지'를 되뇌며 자신을 위로하며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던 나이지만, 지난 10월은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삶이 역류했다. 지극히 이성적인 나에게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들의 연속과 의미를 찾을 수 없었던 시간은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었고, 그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없었기에 스스로가 약해지는 것을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보통 힘든 상황이 찾아오면 사람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내고, 의지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나는 그게 어려운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심리학과를 전공해서 전문 상담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을 정도로 감성에 진심인 사람이었지만, 성인이 되고나서부터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마음속에 이성이 단단히 자리잡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은 선택을 하면서, 감성이 이성을 지배하면 제대로 된 판단을 못 내린다 생각하여 무의식적으로 이성만 추구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혹은, 세상에 대해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 이것저것 찾아보며 공부하다 보니 이성이 주는 가르침에 계몽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 과정은 알 수 없지만 현재 나는 지극히 이성적인 사람이 되었고, 내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아니면 생각을 쉽게 바꾸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만하는 순간도 있었고, 거친 말이 튀어나올 때도 있었으며, 주위 사람들의 말에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누군가는 나에게 가치관이 뚜렷하다고 얘기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고집이 세다고 얘기했다. 이런 내 모습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은 지금도 곁에 남아있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떠나보냈다. 그런 내 모습에 만족했고, 누구와 감정을 나누는 일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에 이성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련의 거대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내면의 단단함이 무너져 내렸다. 그 속에서 난 어찌할 바를 모르며 헤매고 있었고 화가 가득해졌다. 그런 내가 다시 회복할 수 있었던 건 그간 내가 외면하고 있었던 감성 덕분이었다. 나는 자연스레 주위 사람들을 찾게 되었고, 그들이 나에게 무언가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내 옆에서 나를 즐겁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었다. 쓸데없는 얘기들도 하나하나 큰 의미가 되어 다가왔다. 이성적으로만 생각하던 나에게 감성이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는 여러 사건들도 있었다. 사람은 언제나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무 조건 없이 이타적으로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렇게 서서히 이성만이 자리 잡던 마음에 감성이 들어갈 자리 한편을 내줄 수 있게 되었다.
항상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경험적으로 성인이 되어 가치관과 자아가 생성된 상태에서 완전히 변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많은 이들이 '인생을 바꿀 큰 사건이 있으면 사람은 바뀐다'라고 말하는데, 그건 이성적인 사고를 고집하는 나로서는 별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직은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껴야 그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미성숙한가 보다. 근데 지금 나에게 닥친 이 상황은 사람이 변해야만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인 것 같다. 만약 이 생각의 틀을 바뀌게 될 사건이 일어나 현재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면, 그때는 나도 잠시 이성을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