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4. 소라게 삼 형제

그토록 소중한 존재 - 아이가 보는 세상

by Luna Sea

4. 소라게 삼 형제



우리 집엔 소라게 한 마리가 산다.

삼 년 전 여름, 대형마트에서 앞다퉈 행사하던 애완용 소라게가 그것이다. 아들은 마트를 갈 때마다 반려동물 코너를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없다. 토끼면 토끼 풍뎅이면 풍뎅이, 카멜레온, 햄스터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고 짧은 대화(?)를 끝내면 마지막으로 관상용 물고기가 그득한 수조 앞에 붙박이가 된다. 우선 물고기 이름을 하나하나 다 읊고, 젤 맘에 드는 물고기는 특별히 한참을 쳐다본다. 누구 하나 묻지도 않았는데 물고기 종류며 색상과 생김새를 달달 외워서 지나가던 형, 동생들한테 설명까지 해준다.


아들의 물고기 사랑은 예사롭지 않았다. 제대로 된 말을 트기 전부터 유독 해양사 박물관 가는걸 너무나도 좋아했다. 의사표현을 하면서부터는 주말이 멀다 하고 지겹지도 않은지 할머니한테도 수시로 가자고 조르곤 했다. 특히 근처 해양사 박물관에는 엘리게이터, 거북이, 작은 파충류와 뱀류가 살고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딱이었다. 물고기 종류부터 화석까지 아우르는 전시품은 지금까지도 아이의 호기심을 깊이 충족시켜 주고 있다.


아이가 말문이 트면서부터 어항에 물고기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겨우 어르고 달래서 아직은 키울 수 없다고 하니, 물고기에서 곤충으로 넘어가버렸다. 풍뎅이를 사달라고 했다. 당연히 안된다고 했다. 성격상 집에 생물을 키우게 되면 진심이 되다 보니, (당연하지만) 살아있는 걸 집에 들이는 일은 되도록 신중해졌다. 동생을 낳아주지 못하는 것도 미안한데 반려동물도 거절하는 것 또한 마음이 아팠다. 그렇다고 동생 대신 장난감처럼 생물을 키우게 하기도 싫었다. 무엇이 되었든 책임감 있게 키우는 경험을 하길 바랐다. 게다가 내가 팍팍하게 사는 것에 지쳐 누군가 돌보는 게 너무 힘든 시기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내 마음의 사정을 모르시는 시어머니는 덜컥 대형마트에서 행사용 소라게를 두 마리 사 오셨다. "얘야, 그거 얼마 안 하기도 하고 애가 너무 좋아해서 사줘봤다. 일주일이면 죽을 텐데 괜찮지 않겠니?"라며, 생물을 떠넘기는 미안함과 금방 죽으니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위로 아닌 위로와 함께. 그렇게 소라게는 우리 집 식구가 되었다. 아이는 당연히 기뻐했다.

어릴 때 오빠가 문방구 뽑기로 십 수 마리 소라게를 가져온 적이 있어서 안다. 이 것이 얼마나 오래 사는지.

아니나 다를까, 가정에서 키우는 소라게 수명은 적어도 4~6년, 최대 16년까지도 산다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님은 미안하다며 사과하셨고, 작은 이모님은 예쁜 수조 사는데 보태라며 오만 원을 주셨다. 그 덕에 소라게는 곤충채집용 통에서 그보다 넓은 수족관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게다가 이뻐한다는 말에 막내 이모님은 다른 마트에서 두 마리를 더 사 오셨다. 이로써 소라게가 네 마리가 되었다.


결국 나는 이 아이들을 진지하게 키우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한 마리는 데려오고부터 움직임이 둔하던 것이 며칠 안되어 죽은 걸로 봐서, 이미 살기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한 마리를 황망히 보내버린 아이는 이름을 지어주지 않아서 죽어버렸다고 생각했는지 세 마리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초록추, 방고라이, 댕고꽃무늬.

초록추, 방고라이, 댕고꽃무늬


아이들이 쓰고 있는 소라색에서 떠올려 지은 이름이다. 너무 그럴듯해서 나도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초록색 쉘을 쓴 붉은 소라게와 밤색 쉘을 쓴 보라색 소라게와 하얀 바탕에 조악한 꽃이 그려진 쉘을 입고 있는 갈색 소라게가 한 집을 썼다. 냄새와 벌레 꼬임을 방지하기 위해 은사시나무 톱밥을 대량으로 구매하기 시작했고, 한 달에 한 번은 소라게용 젤리 먹이를 사야 했다. 젤리만 주는 건 좀 그래서 크러스트라는 크랩용 마른 먹이도 구매했다. 칼슘 공급과 위생에도 좋다기에 칼시 샌드도 깔아주었다. 바닷물을 먹기도 하는 게 좋다 그래서 해수염 한봉과 등반용 조화도 샀다. 한 달에 한 번 온 가족이 수조 청소로 반나절을 보내게 되었다.

분명히 소라게 키우기 설명서에는 아이들이 탈피를 하다가 죽는 경우가 많고 온습도 조절이 굉장히 중요하며 예민하여 키우기 어렵다고 했는데. 어쩐지 우리 집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토실토실해져서 수시로 탈피를 해 뽀얀 모습을 자주 보았다. 나날이 색도 진해지고 몸집이 커져 쉘도 중형을 건너뛰고 대형을 사야 했다. 쉘을 수시로 바꾸는 걸 좋아한다기에 대형 쉘을 여러 개 사서 초록추는 초록 쉘을 안 쓰고 방고라이는 꽃무늬 쉘에 있다 없다 했다.


친구네 딸이 놀러 와서 댕고꽃무늬를 분양해 가면서 옛날 집과 먹이와 베딩 톱밥을 잔뜩 들려 보내줬지만 머지않아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우리 집 소라게는 두 마리가 되었다.

빨간 소라게 초록추

빨간 초록추와 보라색 방고라이는 비교적 넓어진 수조 안에서 2년 가까이 평화롭게 지냈다. 어느덧 아들은 초등 1학년이 되었고, 나도 아들도 초록추와 방고라이에게 소원해졌다. 매일 분무기로 물도 뿌려주고 밥도 톱밥도 제때제때 갈아주었는데. 바쁨을 핑계로 물과 사료만 간신히 갈아주며 어련히 살아있겠지 했다.

어느 날 초록추 행동이 이상함을 느꼈다. 쉘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나왔다 들어갔다가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이 수상했다. 그런데 더 수상한 건 방고라이였다. 초록추가 쉘에 들어가려고 하면 미친 듯이 쫒아와 훼방을 놓았다. 심상치 않아 둘을 격리시켰다. 그렇게 이틀 잘 넘어가는 듯싶어 잠깐 격리를 풀고 외출한 사이 사달이 났다. 초록추 큰 집게다리가 떨어져 나간 거다. 보진 못했지만 방고라이가 공격했을 거라는 의심이 들어 다시 급하게 격리하고 초록추가 몸을 추스르도록 보살폈다. 다행히 열심히 사료를 먹고 의욕적인 모습이 살겠구나 했다. 하지만 그 날 저녁 초록추는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소라게가 죽으면 특유의 쿰쿰한 비린내가 난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초록추는 잠을 자는 것도 탈피하는 것도 아니었다. 치우는 게 마음이 아팠다. 혹시나 움직일까 봐. 그중에서도 가장 이뻐라 했던 초록추였는데. 그렇게 외면하다가 하루가 지나자 남편은 내가 없을 때 아들과 초록추를 묻어주었다. 그렇게 우리 집 소라게는 한 마리가 되었다.

우리 집엔 방고라이라는 소라게 한 마리가 살고 있다.

초록추를 못살게 굴어서 죽은 것 같아 미워하는 맘에 한동안 못 본 체했다. 하지만 살아있는 아이를 못 본 체하는 일도 마찬가지로 힘들었다. 미루고 미루던 톱밥 주문을 하고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소라게 전용 특식까지 샀다. 그래 이왕 살아남은 거 오래오래 살렴. 오랜만에 아이와 함께 수조 청소를 하고, 양지바른 따듯한 곳에서 방고라이 일광욕도 시켜주었다. 아이는 화단에 묻어준 초록추 얘길 하며 잘 있을까 걱정을 했다. 나는 괜스레, 아마도 흙으로 분해되어 빨간 초록추는 초록 쉘만 남았을 거라고, 퉁명하게 대답했다.


아들은 방고라이까지 죽으면 비로소 자기가 처음부터 키우고 싶었던 열대어를 키우겠다고 한다. 악의는 없다고 본다. 다만, 반려 생물 하나를 키우면 그 아이가 죽을 때 까진 다른 생물은 키우지 않는 룰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그럼 그때까지 정성스럽게 키우라고 당부한다. 어쩌면 나 스스로에게 하는 당부일지도 모른다. 미워하지 말자고. 어쨌든 우리 집엔 소라게 한 마리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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