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5. 달아나고 있어

그토록 소중한 존재 - 아이가 보는 세상

by Luna Sea

5. 달아나고 있어


오랜 친구의 두 딸과 함께 나들이를 갔다. 그 당시 둘 다 뚜벅이라 멀리는 못 가고 집 근처 박물관이 있는 산성길을 따라 산책을 했다. 오랜만이라고 같이 나오신 친구네 어머님도 함께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옆집으로 이사 온 친구는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인연이 계속 닿아 내 인생 가장 오래된 친구다. 가족들도 서로 아는 집안 사정 속속들이 털어놓는 그런 친구. 결혼하고부터는 서로 사는 게 바빠 생각만큼 자주 못 보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둘 다 애 엄마 되고 보니 껌딱지들 달고 만나야 해서 보기 힘들어도 이해할 수 있다는 정도였다.


내가 사는 도시는 산도 많고 바다도 많다. 우리 동네 산성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산허리에 오래된 작은 케이블카가 있다. 어릴 때부터 있던 케이블카를 내 아이와 함께 타다니 세월이 이렇게 빠를 줄이야. 케이블카는 생각보다 쾌적했다. 꼬꼬마들은 올라가는 산등성 반대편으로 큰 유리창 앞에 모여 앉았다. 창밖으로 산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게 신기했나 보다. 저 멀리 우리 동네도 내려다 보였다. 평소 겁 많은 아이가 웬일로 바깥이 보이는 쪽에 바짝 붙어 서서 꼼짝을 안 했다. “무섭지 않니?” 하고 물어도 들은 척 없이 안전봉만 꼭 잡은 채 가만히 서있었다.

한참을 쳐다보던 아이는 “엄마, 작아지고 있어.” 라며 중얼거렸다.

“뭐가?” 하고 물으니, “저기 저 기다란 집이 점점 멀리 달아나고 있어.”라고 놀라워했다.


아파트가 멀어지는 걸 보며 집이 달아난다고. ‘아아, 자기가 움직이는 걸 모르는구나’하고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작아지는 건물을 보니 멀어지는 건 알겠는데, 본인은 케이블카 안에 가만히 서있으니 건물이 도망가는 수밖에. 나름 논리적인 고민이었다. 관찰력이 돋보였다. 도망가는 집들을 보며 간 생각에 잠긴 아이는 올라가는 내내 꼼짝을 안 했다. 옆에서 멀어지는 건 우리가 탄 케이블 카라고 설명해 주었지만 알아 들었는지 모르겠다. ‘으응?’ 하는 표정을 보니 곧 이해하는 날이 오겠지 싶었다.


케이블카가 목적지에 도착했고 등산객들과 데이트하는 커플, 나들이 객들이 붐비는 쉼터에서 한여름 산 바람을 즐겼다. 친구네 딸들은 어미 닭을 쫓는 병아리처럼 친구를 쫓아다니며 놀았고, 우리 아들은 혼자 멀찍이 떨어져 나뭇가지를 주워 흙을 파고, 커다란 소나무 껍질을 관찰했다.

산바람에 땀도 어느 정도 식고 아이들도 적당히 콧바람 쐐었으니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갔다. 올라올 때와 다르 게 내려가는 길엔 케이블카가 만석이었다. 우리 아들은 산 아래가 보이는 쪽으로 파고들어 꼼짝을 안 했다. 하필 커플 사이에 서서 그러고 있어서 엄마 옆으로 오라고 했지만 이미 아무것도 안 들리는 것 같았다. 커플이 아이를 보며 괜찮다고 귀여워해서 고맙다며 인사를 했다. 아무 말 없이 내려오는 내내 바깥을 보던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집이 달아나고 있어!

도망가는 집들을 바라보던 아이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내가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본다면 그런 표정일까. 그때 우리가 탄 케이블카가 움직이는 사실을 알려주지 말고 좀 더 물어볼 걸 후회했다.

“그래서 달아나는 게 누구라고? 왜 그런 거야?”

대답이 너무 궁금하다. 과연 뭐라고 했을까. 아이에게 하는 말을 좀 줄여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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