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6. 느긋한 아이

그토록 소중한 존재 - 아이가 보는 세상

by Luna Sea

6. 느긋한 아이


학교에서 아이들이 자신의 성격에 대해 탐구하는 시간을 가졌었던 모양이다. 우리 집 아이는 자신의 성격이 ‘낙천적이다’라고 했다.


날 때부터 느긋한 우리 아이는, 출산일도 한참 지나서 나왔고 이유식도 늦게 시작했고 이도 늦게 나오고 걸음도 느리고 말도 느린 데다 평소 행동도 느긋하기 그지없다. 그런 그는 뭘 해도 느릿느릿, 위킹 맘인 나는 매일 속에 천불이 났었다. 하루에도 몇 번을 참고 참았는지 모른다. 가끔 너무 화가 나 소리 지를 때도 있었지만, 아이 천성인걸 화를 내 무엇하나 싶어 다시 마음을 고쳐먹기를 수백 번은 더했었다. 그때마다 미간에 주름지는 느낌이 참을 수 없었다. 이런 표정으로 아이를 보면 우리 아이 머릿속 엄마는 ‘화난 얼굴’로 기억될 것 같아서.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어버이날 주제로 엄마를 그리는 수업이 있었다. 한 아이가 묘사한 엄마 모습이 인상에 남았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엄마를 뿔난 악마로 그렸다. 도끼눈을 뜨고 잔뜩 주름진 미간에 눈썹을 치켜뜬 엄마는 입에서 불을 뿜듯 잔소리를 내뱉는 모습이었다. 그때 그 아이가 그랬다.


“우리 엄마는 만날 화내고 잔소리해요.”


이러다 내가 그런 엄마가 되지 않을까 덜컥 겁이 났다. 물론 그 친구 엄마도 늘 화만 내진 않았겠지. 아이가 잘되길 바라서 하는 말이 아이에겐 잔소리에 화난 엄마로 돌변했을 수 있다. 그 마음 십분 이해한다. 나도 어떻게 하는 게 정말 아이에게 교육상 좋은 태도 인지 갈피를 못 잡을 때가 많다. 내 행동이 아이에게 잘못된 영향을 주는건 아닐까 하고.


아이를 낳고 일 년이 지날 때쯤, 이미 우리 아이는 다른 아이에 비해 ‘느리다’는 걸 알았다. 소아과 의사 선생님은 걱정하는 나에게 아이는 그 아이마다 자라는 속도가 다 다르기에 눈에 보이는 속도가 느려도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라고 하셨다. 그 말을 믿고 그때부터 욕심이 나더라도 내려놓기로 했다. 사실 처음엔 다른 애들 하는 만큼 해야지 싶어서 문화센터도 다녀봤더랬다. 석 달 남짓(그것도 몇 번은 수업을 도중에 나오기도 했다) 다니고 포기했다.


주변에서 아이가 이 정도 개월 수면 학습지를 해야 한다, 학원을 다녀야 한다하고 그것도 아니면 주말마다 특강이라도 들어보는 게 어떠냐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남들보다 아이를 믿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낙천적이다’라는 말을 듣고 나는 처음으로 보람을 느꼈다. 우리 아이가 처음(?)으로 내 마음을 알아준 것 같아서(웃음).


내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우리 아들은 느긋해서 그래요.”

날 때부터 느긋했단 말처럼, 천천히 하기로는 우리 아이를 따라올 자가 없었다. 항상 마지막까지 그 날 수업 진도를 못 채우고 놀이 시간에 남아서 해야 하거나, 절반은 선생님이 해주거나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항상 학기 초에 선생님의 걱정스러운 전화를 받았다.

“어머님~ 아이가 좀 느린 것 같아요.” 혹은 “집중을 못하고 느려서 진도가 안 나가요.”

나는 그럴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저도 잘 알아요. 속이 터지시죠?! 저도 그래요.”

하지만 아이에게 강요하긴 싫었다. 그래서 늘 나는 “못해도 좋으니 자기가 하는 만큼만 하게 해 주세요. 완성 못해도 상관없어요. 저는 잘하길 기대하지 않아요.”라고 했다. 정말 괜찮다고 아이가 즐기다 오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들은 걱정스러운 말씀을 덧붙였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진학하면 적응하기 힘들까 봐 걱정돼서 하는 말이라고. 학교에서 못 따라가면 학교 생활이 힘들 텐데, 그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 맞춰서 시켜야 한다 했다. 아이를 위해서라고. 그러면 나는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느리고 못해도 괜찮다고. 나는 아이가 수업을 못 따라가도 하루를 즐겁게 지내는 게 좋다고.


그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속상하고 아이가 불쌍했다. 지금 조금 못하는 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느리다고 아이를 차별하고 놀이를 못하게 해서 울리는지 이해도 안 되고 화도 났다. 그렇게 여러 번 반복적으로 선생님이 바뀔 때마다 똑같은 말을 계속 들었고, 나는 좀 느려도 괜찮다고 제발 그냥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게 내버려 두시길 부탁했다. 그 덕에 학기 말마다 파일에 한가득한 수업 결과물은 미완성이 수두룩 하고, 알 수 없는 종이 쪼가리만 가득했다. 그래도 나는 그것들이 너무 좋았다. 아이의 시간을 존중해 줄 수 있어서.


초등학교 1학년 1학기가 끝나고 가정통신문을 받았다. 종합의견에서 아이가 정리정돈이 힘들고 행동이 느긋해 다른 아이들과 속도를 맞추도록 지도편달을 부탁하셨다. 그래도 밝고 인사성이 좋아 친구들과 두루 잘 지낸다는 말에 힘을 얻었다. 그거면 됐다.


그나마 2학기엔 코로나 때문에 학교를 가는 둥 마는 둥 했다. 그 사이 아이는 몸도 마음도 자랐고 나도 다시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엄마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1학기 때와 비교될 정도로 의젓해졌다. 같이 있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 한편에는 걱정보단 기쁨이 컸다. 나는 아이가 잘 적응할 것을 믿었다. 가정통신문 말미에 적힌 종합평가 덕분이었다.


느긋하고 너그러운 성격으로
매사에 여유가 있습니다



긍정적이다. 해맑다. 낙천적이다. 느긋하다.

지금은 그거면 됐다. 실패하고 잘 못해도 다시 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만 있다면 삶이 고통스럽지만은 않겠지. 물론 그의 느긋함에 가끔 너무 화가 날 때도 있다. 날 닮아 미련한가 싶어서(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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