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소중한 존재-아이가 보는 세상
8. 자기 객관화
우리 아이는 본인 스스로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이다.
아무리 꼬셔도 집에서 노는 게 좋다며 거부하던 아이는 코로나로 친구가 그리웠는지 학원을 다녀 보겠다고 했다. 맘껏 돌아다니질 못하니 기초체력이 너무 떨어져 태권도를 제일 먼저 끊었다. 피아노는 자기가 다닐 거라고 해서 몇 군대 돌아보고 제일 밝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학원으로 정했다. 두어 달 다니다 보니 친구가 미술학원을 다니고 있다며 궁금했는지 슬쩍 말을 꺼내길래 여름방학 특강을 들어보기로 했다.
나도 딱 우리 아이 또래 친구들의 미술 선생님이었던 적이 있다. 그래서 남들은 색연필로 작대기 하나만 그려도 우리 아이가 천재가 아닌가 놀라워하지만 난 오히려 얘가 좀 느리구나 걱정하곤 했다. 소근육 발달도 또래에 비해 늦었고 말도 늦게 트여서 기대치가 워낙 낮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보내봐야 못 따라갈 걸 뻔히 알았다. 그래서 선생님께 미리 말씀도 드렸다. 결과물이 적거나 늦어도 좋으니 하나를 끝까지 완성만 하게 해 달라고.
“미술학원은 어땠니?”
물어봐도 대답은 예상대로 시큰둥했다.
“그냥 그래요.”
1학년 2학기가 가는 둥 마는 둥 끝나고 겨울방학이 되어서야 다시 미술을 가겠다고 했다. 방학특강은 만들기 중심으로 수업을 많이 한단다. 그래서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스케치부터 만들기까지 긴 과정을 선생님과 소통하면서 완성해가는 수업이었다. 하루는 저녁을 먹고 식탁에 앉아 종이에 낙서를 끄적이며 말했다.
“엄마, 나는 미술엔 재능이 없나 봐요.”
뜬금없는 단어의 나열을 들은 나는, 내 귀를 의심하며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물어봤다.
“미술학원에서 목걸이를 만들고 있거든요. 목걸이 스케치를 하는데 제가 보기엔 완성됐는데 선생님은 아니라고 더해야 한대요.”
“네 생각엔 충분히 열심히 했어?”
“네, 저는 충분히 잘 그렸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이 보기엔 아닌가 봐요.”
의기소침해하는 아이 말에 나는 아이의 말도 이해가 되고 선생님 말도 이해가 되어 누구의 편도 들 수 없었다.
“선생님은 네가 못한다고 그런 게 아니라 널 도와주려고 하는 거야. 자신감 가지고 해 봐.” 다행히 아이는 맘을 추슬렀는지 다음날부터 목걸이 액자가 곧 완성된다며 잔뜩 기대했다. 가져올 때가 됐는데 싶어 슬쩍 물어봐도,
“아직 조금 남았어요.” 하길래 얼마나 열심히 하나 궁금했다. 결국 그다음 주가 되어서야 가지고 왔다.
잘했다고 칭찬을 퍼부어주었더니 만족해하며 꼭 잘 보이는 곳에 달아달라고 주문했다. 못해도 좋으니 완성만 해다오. 나의 바람대로 완성을 했다. 참 잘했다. 애썼다.
그 날 이후로 미술학원도 곧잘 재미있다는 말을 했다. 저번 달부터는 집 만들기를 한다며 엄청 열심히 만들고 있다고 했다. 이번엔 선생님이 수업이 너무 잘됐다며 아이가 예술가형인 것 같다고 하셨다. 창의력이 좋은 거 같다며. 미술학원에 다니고 반년만에 들은 칭찬이지만 기대조차 없었기 때문에 기분이 복잡 미묘했다. 좋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결과물을 보니 뿌듯했다. 마치 내 작품처럼. 오히려 그 보다 더.
3층-고산지대 지붕
2층-초원
1층-개미집
마무리나 표현은 서툴렀지만 스스로 생각한 바를 나타내려고 노력한 모습이 눈에 보였다. 결과물이야 어떻든 즐기기만 하면 좋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완성을 해야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거다. 이번엔 시작도 과정도 결과도 만족스러워했다. 평소 아끼는 고슴도치 장난감 ‘꼬슴이’와 미니 거북이 ‘꼬북이’도 드디어 제 집을 찾았다. 아이는 생각 못한 활용법에 신나서 한 시간을 동물애호가의 집에서 꼬슴이와 꼬북이와 놀았다.
우리 아이가 자신의 실력에 객관적(?)이었던 이유는 내가 아이의 행동과 결과물에 요란법석을 떨지 않아서일까. 그저 몇 마디 말일뿐인데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다. 기대치가 낮은 만큼 실망도 없지만 그렇다고 사소한 성공에 기뻐해주지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적극적으로 잘한다고 칭찬해주지 않아서 '미술'엔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소위 미대나온 엄마는 아들의 재능엔 너무 박했나 보다. 남의 애들은 그렇게 잘한다고 칭찬해주고 감탄했으면서. 이래서 본인 아이는 가르치면 안 된다는 건가. 오늘 또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