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소중한 존재-아이가 보는 세상
Episode 9. 현실과 상상과 꿈
코로나가 대유행하기 1년 전, 아쿠아리움 연간 회원권을 끊었다. 내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가까웠고 매주 놀러 다닌 박물관도 싫증 나기 시작해 이 위기를 타계하기 위해서였다. 친한 언니네 딸들과 종종 주말에 만나서 놀았는데, 언니는 이미 회원이라 연장만 하면 된다길래 함께 자주 보러 오면 되겠다며 시원하게 결재했다.
아쿠아리움에는 정해진 타임마다 이벤트가 있다. 펭귄 먹이주기, 수달 먹이주기, 가오리 먹기 주기, 영상 상영, 인어공주 이야기 공연 등등. 매번 찾을 때마다 조금씩 다른 시간 때에 들러서 다른 이벤트를 관람하곤 했다.
하루는 겨울 바다를 보러 나간 김에 또 아쿠아리움에 들렀다. 그날따라 인파가 몰렸고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옹기종기 앉아 인어공주 이야기 공연을 봤다. 공연은 1층에서 2층 높이까지 연결되는 통 수조에서 진행됐다. 이야기 몰입을 위해서 진행자가 간단 줄거리를 보여주고 이야기 중간 즈음부터 배우들이 물속에서 나타났다. 커다란 수조 속에서 배우들이 물고기들과 수영하는 장면을 보는 아이는 눈을 떼지 못했다. 공연이 이뤄지는 수조를 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어릴 적부터 상상하던 그림이 눈앞에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인어공주 이야기를 넋을 놓고 보던 아이는 갑자기 숨을 참았다 내쉬었다를 반복했다.
“인어공주는 왜 계속 위로 올라가요?”
인어공주 역의 배우는 산소마스크가 없이(당연하다 인어공주가 산소마스크라니) 대형 수조에서 수영하다 보니 숨을 쉬기 위해 쉴 새 없이 수면 위로 올라갔다 내려와야 했다. 상대편 남자 배우는 당당히 산소통을 등에 지고 고글을 끼고 연기를 하지만 여배우는 그러지 못했다. 그걸 보고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했나 보다.
“혹시 인어공주가 숨 쉬러 올라가는 거예요? 인어공주는 물속에서 숨 쉴 수 있는데, 왜?”
허를 찔린 나는 묻는 말에 대답은커녕 잔소리를 해버렸다. 이야기에 집중하라고. 아이는 합리적 의심을 하는데, 나는 그보다 이야기 속에 빠져들기를 바랐다. 현실도 좋지만 상상력의 세계에 좀 더 머물길 바랐다. 다행히 아이의 의심은 인어공주가 허구 속 인물이라는 사실까진 닿지 못한 듯했다. 동화를 각색한 아쿠아리움 인어이야기는 원작과 다르게 인어공주와 왕자의 행복한 결말로 끝났고, 옹기종기 대형 수조 앞에 모여 앉아있는 인파는 모일 때처럼 어지럽게 흩어졌다.
조금 더 어리던 여섯 살 때였다. 어느 날 아이는 한밤중에 울면서 깨어났다. 통곡을 하며 눈물을 뚝뚝 흘리며 목놓아 울었다. 눈도 겨우 반쯤 뜨고 꿈을 꾸는지 깼는지 모르는 상태를 간신히 진정시켜 다시 재웠다. 다음 날 저녁에 그 이유를 알았다. 아이가 잠들기 싫어했다. 꿈에서 상어가 자기를 잡아먹으려고 쫒아 온단다. 도망을 가도 가도 계속 따라와서 너무 무서웠다며 아직도 생생한 듯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그래서 잠을 자면 안 된다고 안간힘을 썼다. 꿈을 꾼 거라고, 너는 바다에 가지도 않았고 밤새 집에서 잠을 잔다고 설명해줬다. 그러다 며칠 전 아쿠아리움을 다녀온 기억이 났다. 그때 상어를 가까이서 처음 본 아이는 넋을 놓고 봤다. 귀여운 상괭이와 거북이, 펭귄도 봤는데 하필이면 상어가 기억에 남았던 걸까.
그 무렵 아이는 바다탐험대 옥터넛에 빠져있었다. 하루에 두 세편씩, 봤던 것 또 보고 맘에 드는 에피소드는 찾아볼 정도였다. 어린이날 선물도 삼촌에게 옥터넛 탐험선과 피겨세트를 사달라고 했다. 조립 로봇 말고는 관심 없던 아이가 웬일인가 싶었다. 정말 맘에 들었는지 탐험선을 욕조에 들고 들어가겠다고 했다. 전지가 들어가는 곳이 물에 녹슬어 금방 망가지고 말겠지만, 알게 뭔가. 바다 탐험선이 물속에 들어가는 게 당연하지. 어째서 이걸 물속에서 가지고 놀게 만들지 않았는지 의아했지만 그건 어른들의 사정이니까. 가지고 들어가지 말라고도 했지만,
“당연히 잠수함인데 물에 들어가야지! 옥터넛이 해저 탐험할 때 타는 거니까 물속에 잠수해야 해!”
아이의 항변에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장난감이 망가졌지만 내가 미안한 맘이 들었다. 한동안은 건전지 없이 물속에 담갔지만 녹이 슬어버리자 어쩔 수 없이 버려졌다. 그래서 약국에서 옥터넛 집게 장난감이 붙어있는 캔디를 고르는 손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래 그건 녹슬지 않겠지.
밤에 통곡을 하고 울어댄지 며칠이 지났을까, 아이가 사부작 거리며 욕실을 들락거렸다. 나는 또 물장난을 치는 줄 알고 ‘이놈~!’ 하고 욕실 문을 열었다. 거기엔 뜻밖의 광경이 있었다.
“옥터넛이 날 위해 상어를 잡고 있어. 이젠 따라오지 않을 거야”
겁쟁이 아들은 공포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옥토넛이 상어를 잡는 모습을 제 눈으로 보고야 안심이 된 모양이었다. 그날 밤 아이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잠을 청했다. 나는 그를 보며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공포에 스스로 맞서는 모습이라니. 그 존재의 단단함이 경이로웠다. 새근새근 잠이 든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너에게 배울게 참 많다.
우리 집 욕조에서 옥터넛이 상어를 잡은 이후론 상어가 쫒아오지 않는 듯했다. 이젠 아쿠아리움에 상어가 머리 위로 지나다니는 동굴 수조를 지나면서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물을 좋아하면서 무서워하는 아이의 이중적인 감정은 해양 생물에 대한 동경을 낳았다. BBC해양생물 다큐멘터리를 결재해서 볼 정도로 탐닉했다. 처음엔 단지 특이한 취향이라고만 생각했다. 소위 공룡기를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접하는 수중 공룡에서부터 파생된 생물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공포가 내 짐작보다 크다는 것을 알고 생각이 달라졌다. 아이의 근원적인 공포인지 경험적인 공포인지 감이 오질 않았다. 상어보다 센 그들을 보며 대리만족을 했던 걸까. 나는 그가 원하는 다큐멘터리를 죄다 결제해주는 수밖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허무하게도 아이는 만화영화 속 캐릭터의 도움으로 공포를 이겨냈다. 바다의 포식자 상어를 꿈에 소환한 아이는 현실에서 자신을 도와줄 인물로 바다 탐험대 옥터넛을 불러냈다. 부모의 위로도 소용없던 공포를 스스로 극복했다. 힘을 가진 존재(꿈속 상어)를 향한 공포를 가상의 존재(옥터넛)를 빌어 현실에서 재현함으로써 극복했다(고 본다). 아이의 상상력은 현실과 꿈의 경계를 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