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터팬 Aug 14. 2023

아내도 모르는 첫사랑

앞니 빠진 첫사랑의 추억

앞니 빠진 첫사랑(?)이 있었습니다.  


손자 녀석이 이빨을 갈고 있습니다. 앞니 빠진 금강새가 되었습니다.


벌써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으니 이빨 갈 때도 되었습니다. 나도 손자 녀석만 할 때 이빨을 갈았습니다.


앞니가 빠지자 엄마도 이모들도 이런 노래를 부르며 놀렸습니다. “앞니 빠진 금강새야. 우물 앞에 가지 마라. 붕어들이 놀린다.”


내가 새 이빨이 다 날 때쯤 되어 숙경이란 아이의 이빨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숙경이는 우리 옆집 사는 동갑내기 여자아이였습니다.  


인형처럼 예쁘게 생긴 아이였습니다. 예쁘게 생긴 여자아이도 때가 되니까 앞니가 빠졌습니다.     


숙경이만 만나면 이 노래를 부르며 놀렸습니다. “앞니 빠진 금강새야. 우물 앞에 가지 마라. 붕어들이 놀린다.”     


숙경이는 내가 이 노래 부르며 놀릴 때마다 울었습니다. 숙경이가 울면 재미있어서 더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숙경이는 내가 처음 사귄(?) 여자 친구였습니다. 숙경이 아빠와 우리 아버지는 친한 이웃이었습니다.  


우리가 살던 종로구 혜화동은 참 좋은 동네였습니다. 집들도 모두 그림처럼 예뻤습니다.


숙경이 아빠는 의사였고 우리 아버지는 고위 공직에 계셨습니다. 두 분은 대화가 잘 통했습니다.


두 집이 형제처럼 가깝게 지냈습니다. 나도 매일 숙경이와 놀았습니다.  


사내 녀석이라고 병원 놀이하면서 야한(?) 장난도 많이 했습니다. 내 볼기를 먼저 까고 숙경이에게 주사 놓아 달라고 한 다음엔 숙경이 볼기도 강제로 까고 손가락 주사를 깊이 찔렀습니다.  


짓궂은 장난도 많이 했지만 공주님을 지키는 백기사 노릇도 했습니다. 숙경이를 괴롭히는 악당(?)들은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숙경이가 고무줄놀이를 하고 노는데 웬 녀석이 칼로 고무줄을 싹둑 잘라버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쫓아가서 두들겨 팼습니다.


그 녀석도 지지 않고 주먹질을 하며 덤볐습니다. 두 녀석이 땅강아지처럼 뒹굴면서 코피 터지도록 싸웠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숙경이가 첫사랑(?)이었습니다. 첫사랑은 정말 이루어지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아버지가 공직에서 옷 벗고 나오면서 우리 집은 급속히 어려워졌습니다. 아버지는 손대는 사업마다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결국 예쁜 혜화동 집을 팔고 산동네로 이사 가야 했습니다. 숙경이와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산동네 생활에 적응하기 너무너무 힘들었습니다. 혜화동 집이 그리웠습니다.  


어느 날 아무도 모르게 혜화동 집을 찾아갔습니다. 먼발치에서 숙경이 집을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이렇게 산동네 아이가 되어 있는데 숙경이는 여전히 예쁜 2층집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구나. 숙경이와 뛰어놀던 골목길에서 우두커니 혼자 서 있다가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혜화동 집을 찾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이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어느새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너무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는 신문 배달을 하며 학교에 다녔습니다. 어느 날 신문 대금 수금을 하러 이 집 저 집 돌아다닐 때였습니다.


길에서 정말 우연히 숙경이 엄마를 만났습니다. 나도 모르게 꾸벅 인사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던 숙경이 엄마가 뒤늦게 나를 알아보고는 기절초풍했습니다.  

    

“어머나. 세상에. 네가 찬민이니? 어머나. 세상에. 어쩌면 이렇게 키가 컸니? 너무 멋있다.”  


그때 벌써 내 키는 180을 훌쩍 넘어 있었습니다. 까마득히 나를 올려다보며 숙경이 엄마가 감탄하고 또 감탄했습니다.   


“어머나. 찬민아. 너 정말 너무 잘생겼다. 꼭 영화배우 같다.” 그리고 옆을 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애. 숙경아. 얘가 찬민이래. 찬민이 몰라? 너 찬민이랑 친했잖아?”  


알고 보니 숙경이 엄마 옆에 서 있던 여학생이 숙경이었던 것입니다. 그 여학생이 숙경이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변한 것처럼 숙경이도 너무나 많이 변해있었습니다. 낯설게 숙경이를 내려다보았습니다.


키가 작았습니다. 썽둥 자른 단발머리에 도수 높은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얘가 정말 숙경이 맞나? 내 기억 속에 남아있던 인형같이 예쁜 얼굴은 환영처럼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어느새 숙경이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도망치듯 골목길로 뛰어갔습니다.  


“얘! 너 어디 가? 숙경아!" 숙경이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숙경이는 다시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한 번의 우연한 만남을 끝으로 더 이상 숙경이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까마득한 세월이 흘렀습니다.  

         

     



앞니 빠진 손자 녀석을 바라보니 앞니 빠진 숙경이 얼굴이 아른아른 떠오릅니다. 벌써 60여 년 전 일입니다.   


숙경아. 너도 이제는 할머니가 되었겠구나. 손주는 몇이니? 어디서 사니? 어떻게 살았니? 혹시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연락 좀 해주렴.


아빠처럼 커서 의사가 되겠다더니 혹시 너 정말 의사가 되었니? 그렇다면 우리 병도 좀 고쳐주렴.   


내 아내가 지금 아프단다. 네가 의사가 되었다면 틀림없이 착한 의사일 테니 어서 구원의 베아트리체처럼 짠! 하고 나타나서 아내의 병도 좀 고쳐주려무나.    


어릴 때 앞니 빠진 금강새라고 너무 놀려 미안하다. 그러나 이제 더 많이 늙으면 우리 이빨도 다 빠지겠지?  


그때 다시 이런 노래를 부르게 될까? 더 늙어서 이빨 다 빠져 틀니하고 이 노래 부르면 눈물 나겠지?    


“앞니 빠진 금강새야. 우물 앞에 가지 마라. 붕어들이 놀린다.”


옛날옛날 먼 옛날 앞니 빠진 첫사랑이 있었답니다.

작가의 이전글 싸우니까 부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