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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생 팀장 실패기: 내가 이간질했대

나는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했지만, 당신은 왜 곡해했나요?

by 삼색고양이

이어지는 글

1. 88년생 팀장 실패기의 시작

2. 88년생 팀장 실패기: 책상 밑 내팽개쳐진 슬리퍼


이 글은 팀장으로서 겪은 실패들을 바탕으로, 그 경험에서 얻은 배움을 회고하는 이야기다. 시간의 흐름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속에 떠오르는 기억들을 병렬적으로 풀어낼 예정이다.


주의:이 글은 88년생 팀장으로서 나의 실패 경험과 배움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일부 사건은 각색되었습니다.




나는 심리상담사로서, 마치 태권도에서 ‘품띠’를 따듯, 오랜 연마와 배움을 통해 그 자격을 얻었다고 자신해왔다. 하지만 팀장이 되고 나니, 1:1 상담과 달리 여러 직위와 다양한 상황 속에서 내 '나이스한' 모습에도 한계가 보이고, 어떤 기준으로 소통해야 할지 매번 갈피를 잡지 못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팀장의 한마디는 위에서는 다른 의미로, 팀원들에게는 또 다른 해석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모니터에 ‘말조심’ 포스트잇을 붙여놓아도, 대표실에서 결재를 받거나 식당에서 팀원과 단둘이 있을 때마저도 의도와 다르게 메시지가 왜곡되는 경우가 빈번했다.


여러 일들을 겪고, (이 일은 비단 한 조직에서 만의 경험이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결국, 직장 내에서 안전한 의사소통이란 '점심 메뉴로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고르는 순간' 말고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직원 험담을 유도하는 공격에, 칭찬일색으로 맞섰다만...'


어느 날 결재를 받는데, 대표가 '요즘 직장생활 어때요? 이제 적응은 된 것 같은데, 직원들의 성향은 파악했나요?'라며 물었다.

초짜였던 나는 '질문은 대답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급히 하나하나 미담을 꺼내며 말문을 열었고, 잠깐의 안도 속에서 '갈등의 불씨는 초반부터 잡아야 한다'는 자신만의 논리를 되뇌었다."


'아, 이때 말 잘 못하면 큰일 나겠지? 역시 난 센스 있는 팀장이야. 잘했어! (잘했겠냐?)'


'팀장님, 이런 말씀 좀 그런데... '


평소 과묵해 보였던 팀원 A가 나를 따로 보자고 한다. 그는 내가 대표에게 했던 말이 어떻게 각색되어 아래로 누설되었는지를 설명해 줬다. 사실 그 직원 말로는 이 일은 전부터 반복 되었고, 본인들도 알고 있단다. 팀장의 말이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 말로써 '이간질 주의보'를 발령해 주는 고마운 직원도 있지만 어떤 직원은 '이간질 주의보'를 건너뛰고 '이간질로 진단함'으로 종결한 뒤 발 빠르게 조직을 개편하는 경우도 있었다. (왕따도 당했단 말을 우아하게 표현하고 있는 중임)




이간질 주의보든, 이간질로 진단 받든 지 실컷 재료가 되어준 나를 돌아볼 시간이다.


정말 솔직하게 조직에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이 있다면, 부족하다고 평가하는 직원이 있다면 가슴에 손을 얹고 인정해야 한다. 내 말에 암시적인 표현애매모호한 뉘앙스간접적인 피드백을 전달했을 여지가 있음을.


그리고 비겁했던 나는 내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았던 직원에 대한 서운함을 내 일을 잘 도와줬던 직원을 칭찬함으로 표현한 적이 있다. 이렇게 나만 아는 비교와 대조불필요한 분열을 가져올 수 있다.




시간을 거슬러 내 소통방식을 복구할 수 있다면, 이랬을 것이다. 비공개 또는 선택적 소통은 이간질이 아주 좋아하는 소통구조이니 우선 음지의 소통을 양지로 옮겨갔을 것이다.


- 대표가 은밀하게 직원 평가를 요청하면: '생각해 보겠습니다'로 답을 하지 않는 선택을 하거나, 연말이나 분기가 끝날 때 공적으로 오픈된 직원평가를 하는 자리를 만들어보시라고 제안했어야 했다.

- 팀원 A의 지적에는: 회식이나 티타임 자리를 통해 함께 대화하며 오해의 소지를 해소하는 시간을 마련했어야 했다.


그때 내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이유는, 사실 인정받기를 갈망하면서 동시에 평가받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 공개된 평가의 장을 피했고, 불만이 있는 팀원들과의 진솔한 대화가 두려워서였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깨닫고 나니 이런 고민을 나눌 동료도 없던 내가 안쓰러웠단 연민이 들기도 했다. 내가 보다 더 성숙한 상사를 만났다면 하는 원망과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실패담이 없었다면, 내 의사소통의 어두운 면을 볼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상담심리사라는 품띠를 두르고 살았을 태니까)


@Pixabay




그래도 이렇게 글을 마치면 억울하니까, 말을 곡해해 전달하는 사람들의 심리도 한번 조명해본다.


그들은 내재된 불안과 불신이 있었을게다. 스스로 리더십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 여기면 다른 사람의 중립적이고 모호한 표현을 '저 사람은 신중해서 말을 아끼는구나'로 보지 않고, '저 사람도 나처럼 저런 표현 밑에 어떤 의도가 있을 거야'라고 해석할 것이다.


또 조직에서 자신이 문제해결의 키를 쥔 유일한 사람이 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갈등을 부각해 자신이 문제 해결을 중심에 있다는 입지를 더 굳건하게 하고 싶은 것이다.

'저 사람이 너희와 나 사이를 이간질하는데, 내가 그걸 알고 이렇게 너희에게 알려주잖아? 어때? 나 멋있지? 이제 누구 편에 서야겠어?'

(만일 이런 순간에 내가 다시 걸려든다면 '아, 그랬군요. 제가 그 사람과 한번 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라고 선택적 소통의 막을 찢어버릴 것이다.)




아, 이렇게 제단 해보니 속은 시원한데, 뭔가 좀 찝찝하다.

지금 나, 긁힌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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