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88년생 팀장 실패기: 같이 욕하면 내편 돼줄 줄...

by 삼색고양이

이어지는 글

1. 88년생 팀장 실패기의 시작

2. 88년생 팀장 실패기: 책상 밑 내팽개쳐진 슬리퍼

3. 88년생 팀장 실패기: 내가 이간질했대


이 글은 팀장으로서 겪은 실패들을 바탕으로, 그 경험에서 얻은 배움을 회고하는 이야기다. 시간의 흐름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속에 떠오르는 기억들을 병렬적으로 풀어낼 예정이다.


주의:이 글은 88년생 팀장으로서 나의 실패 경험과 배움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일부 사건은 각색되었습니다.


팀장이라는 환상

팀장이 된 나는 팀장이라는 환상에 빠져, 쥐꼬리 같은 월급 차액을 '품위유지비'로 썼다. '오늘 커피는 내가 쏠게' 따위의 말을 하는 그 품위유지비 말이다.


나는 이런 팀장이 되고 싶었다. 사람 좋고, 너그럽고, 커피나 간식 정도는 잘 사주고, 같이 출장 갔을 때 대낮에도 가끔 퇴근시켜 주는 그런 쿨한 팀장...

여기서 간과한 것은 나는 아주 꼼꼼하고 내면적으로는 강박적인 면이 있어 그리 사람 좋은 인상이 아니고, 나 자신에게 굉장히 엄격하고 타인에게도 사실 엄격하지만 내가 너그러워 보이는 건 사실 그 사람에게 기대가 없을 때 너그럽게 대할 때가 많았고, 커피는 좋아하지만 간식은 쿠키 하나를 8등 분해 하루종일 먹다 나머지는 클립으로 보관해 내일 먹는 그런 사람... 즉 입이 짧은 사람이란 자기 분석이다.

즉, 내 캐릭터 분석도 제대로 못하고 팀장이란 페르소나를 덜컥 쓴 것이다.


같이 욕하면 내편 돼줄 줄 알았지

사실 위에 것들은 커피 10번 사주다 언젠가부터 안 사줘도 뒤로 욕 몇 번 들으면 끝날 문제이다. 그런데 더 큰 것은 누구의 편에 붙을까에 대한 생존고민이었다.


첫 출근날, 전 팀장이 내팽개치고 간 슬리퍼 이야기를 다들 기억하는가?

(88년생 팀장 실패기: 책상 밑 내팽개쳐진 슬리퍼)


그렇다. 이미 내가 간 조직에는 분단국가처럼 분열의 금이 심하게 가있는 상태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팀원들 간의 응집력은 높았고, 내 위에 대표만 분리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큰 고민 없이 다수의 편으로 갔고, 공공의 적에 대해 나도 한두 마디 얹으며 나이스하게 '아 진짜?', '아, 대박...', '헐...' 세 가지 리액션을 골고루 섞어가며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전개해 나갔다.


내가 이 회사를 다닐 때 몇 번의 인사변동 물결이 있었다. 친했던 팀원 몇몇이 동시에 그만두던 때도 있었고, 어떤 때는 팀원들의 구성이 모두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대표도 바뀌고, 그런 역사의 흐름 속에 나는 내가 통했던 방법이 계속 통할 것이라는 단순함, 순수함으로 회사를 다녔다.




그중 어떤 물결은 완전 물길의 흐름을 바꿔놓기도 했다.


대체적으로 대표가 소외되고, 팀원 간은 느슨한 응집력이 유지되어 있는 구조였고 나는 팀원에게 '나도 너희 편이야. 나도 대표 싫어.'와 같은 신호를 계속해서 보내며 지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나는 좋은 팀장 페르소나를 썼지 원래 나란 사람은,

소위 말하는 대문자 T에 일중심인 사람... 덧붙이면 내향적인 사람. 좀 더 설명하면 어릴 때부터 무리에 잘 끼지 못하고, 권력싸움이나 정치싸움에는 관심이 없는 나.

어쩌자고 팀장이 되어서 무리생활에 끼려고 했을까.

팀원들 간의 동질감에 비해 나의 기여는 점점 떨어져 가고, 가끔은 상처 주는 말도 했다. 나에게 인간적 호감을 가진 팀원에게 거리를 두며 사적인 친분으로는 넓히지 않으려 했다. 팀이 안정돼 갈 때는 대외적인 업무가 많아져 주로 협력기관이나 유관기관 사람들과 소통할 때가 더 많아졌다. 결국 이런 소원해짐과 반복되는 작은 갈등은 외부 영향력이 비집고 들어오는 틈을 허락했다.


섬에 고립됐던 대표는 당당하게 육지로 다시 들어와 내가 알지 못하는 관계를 구축했고, 이제 내가 그 섬으로 가는 배에 올라탄 것이다.



다짐과 회고
나는 왜 내 본연의 모습을 감추려 했던 걸까?

내향적이고 균형 잡힌 내 모습 그대로였다면, 때때로 소외되더라도 차분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을 텐데.

어쩌면, 팀원들이 응집력을 유지한 만큼 내가 모두와 두루 친밀할 자신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작은 섬’처럼 조용히 존재하거나, 섬과 섬을 잇는 다리 역할만 해도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만약 다시 팀장이 된다면, 내 본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상사와 팀원 모두와 투명하게 소통하겠다. 다가가기 힘든 상사라도 오픈된, 정식 소통의 창을 활용하여 정기적으로 소통하여 조직의 균열에 내가 활용되지 않도록 할 것이다. (88년생 팀장 실패기: 내가 이간질했대 참고)


나는 이제 친밀함보다는 신뢰를 바탕으로 일하는 관계를 원한다. 정치적 소동은 파악하되, 내분이나 감정싸움은 철저히 피하며,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구분하는 리더가 될 것이다. 되.. 되고 싶다.




그리고 다짐한다. 나 이제 같이 욕 안 할래...
keyword
작가의 이전글88년생 팀장 실패기: 내가 이간질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