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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생 팀장 실패기: 식물하고 대화해 본 적 있나요

by 삼색고양이

이어지는 글

1. 88년생 팀장 실패기의 시작

2. 88년생 팀장 실패기: 책상 밑 내팽개쳐진 슬리퍼

3. 88년생 팀장 실패기: 내가 이간질했대

4. 88년생 팀장 실패기: 같이 욕하면 내편 돼줄 줄...


이 글은 팀장으로서 겪은 실패들을 바탕으로, 그 경험에서 얻은 배움을 회고하는 이야기다. 시간의 흐름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속에 떠오르는 기억들을 병렬적으로 풀어낼 예정이다.


주의:이 글은 88년생 팀장으로서 나의 실패 경험과 배움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일부 사건은 각색되었습니다.


관계 권력자


어떤 조직이든 응집력을 유지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힘, 즉 관계 권력이 작용한다. 한 사람의 탁월한 기여와 리더십이 팀을 하나로 모으기도 하지만,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이는 소외되기 쉽다.

처음에는 회사 내 관계 권력자와의 우호적인 관계 덕분에 나름 괜찮은 팀장으로 인정받았다. 수평적 조직 문화의 상징처럼, 우리는 점심을 함께하며 생일마다 기프티콘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내가 직원의 힘든 상황에 공감보다 해결책을 먼저 제시할 때마다(예: 아픈 직원에게 ‘반차를 쓰세요’라며 해결책을 제시), 그리고 아무리 싫은 대표여도 조직의 얼굴이라며 그의 대외적인 이미지를 챙기는 모습을 보일 때면, 팀원들의 실망 섞인 야유가 느껴졌다.


내 행동은 때때로 같은 편인 듯 보였다가, 어쩔 땐 근태를 들먹이는 재수 없는 팀장 같은 이중적인 모습으로 보였을 것이다. 대표에게 봉변당할 때 팀원들이 내 편을 들어주면 뭐 하나, '대표가 곧 기관의 얼굴' 같은 소리를 했으니 말이다.


결국, 나는 '모두와 잘 지내고, 모두에게 인정받는' 팀장의 페르소나를 벗었다. 하지만 이미 곪을 대로 곪아 있는 회사는 어느 편에 서지 않는 사람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잠깐이나마 느꼈던 달콤한 소속감은 사라지고 원래의 나로 돌아왔을 뿐인데도, 조직에서 배제됐단 사실에 생각보다 힘겨워했다.




아, 내가 어린 시절부터 무심한 듯 사람들과 거리를 둔 건, 가까워졌다가 상처받거나 소외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을까?

10대 시절, 나는 차분하고 크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학생이었다. 그러다 사이가 좀 친해지면 공부나 공통 관심사에 대해서는 수다쟁이가 되는 모습을 보였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줬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는 주체적, 독립적이지만, 개인주의적인 성향도 있는 사람으로 자랐다. 사회성도 눈에 띄는 정도는 아니었다. 이러한 나의 모습은 사회생활에서 때로 한계로 다가올 때가 있었다. 그리고 직장에서 겪었던 대인관계 어려움들은 그때 당시 몰랐던 나의 내면적 결핍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겉으로 사람들에게 무심한 듯한 나의 태도는 깊이 뿌리내린 관계 불안의 산물이었고, 친밀해질 때 느낄 상실감과 소외의 두려움을 미리 방어하기 위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 30대 직장인이 된 나는 어린 시절 겪었던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변화하려고 애썼다. 사무실이라는 작은 교실에서 진정한 소속감을 갈망하며, 오랜 시간 쌓인 공허함을 채우려 애썼다. 그러나 외부의 인정에만 의존했던 나는 대인관계를 깊이 체험해 본 적이 없었기에 소속감을 유지하는 법을 잘 몰라 관계의 와해를 경험했던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내가 왜 어린 시절부터 타인과 진실한 관계를 시도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왜 지금 와서 그 결핍을 메우려는 노력을 하는지를 여실히 증명해 준다.



식물하고 대화해 본 적 있나요?


회사에서 배제된 나는 외로움이나 비참함을 직면하기보다 외부 기관과 협력하는 일들에 몰두하며 조직에서 받지 못하는 소속감을 채우려고 했다.

그러던 와중, 아무도 돌보지 않은 채 방치된 회사 식물들이 눈에 띄었다. 물 주기, 분갈이, 흙 갈아주기, 가지치기까지 하며 정성스럽게 식물들을 가꿨다. 회자 내 자리 주변에도 화분이 늘어갔다. 회사에서 내가 시들어갈수록 내 자리와 회사의 식물들만큼은 점점 더 생기가 생겼다.


업무용 전화를 제외하고, 회사의 유일한 말동무는 식물들이었다.


'어머나, 새 순이 올라왔네!'

'스킨답서스도 이파리 색이 다채롭구나. 연두색인 너는 참 이쁘다!'

'이 작은 화분에 뿌리가 꽉 차서 답답했겠다.'


그렇게 나는 내면의 상처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렇게 다른 일에 몰두하며 부정적인 감정을 승화시켰다. 또 팀원, 대표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막막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 대신 일이나 식물 키우기처럼 그나마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서 성취감을 느끼며 견뎠다.



다짐과 회고


어린 시절 대인관계에 소극적이고 무심했던 나의 태도가 직장 내 관계 권력과 마주치면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다시 돌아간다면, 팀원들과 정기적인 회의를 하는 기회를 활용해 소통의 기회를 삼으려 했을 것이다. 나의 미숙함을 반성하며 관계 개선을 시도했을 것이다. 대신 친구 같은 사이가 아니라 직장 동료, 상사와 부하직원 간의 원만한 관계, 업무 하기에 불편함이 없는 관계로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삼을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했을 것이다. 직장에서 팀원들과의 관계에 신경을 쓰며, 관계 권력자에게 휘둘릴 때,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거슬러가 나의 결핍과 만나려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결핍을 채우려는 노력을 회사 안에서 하지 않는 결심과 용기를 스스로 내었을 것이다.




회사에서 어린 시절 친구관계를 재경험 하며 그때와 다른 모습으로 살고 싶은 욕구가 드는가?

그 욕구는 회사 밖에서 채우는 것이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까딱하면... 나처럼, 식물하고 대화하게 될 수 있다는 것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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