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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yooe Dec 17. 2018

몸으로 말해요

<필름스타 인 리버풀>을 보고

무용수의 몸

정기적으로 내 시간의 일부를 사람의 몸을 보는 데 쓰고 있다. 그 일은 꽤 집요해서 망원경을 들고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며 몸이 내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애쓴다. 몸에 처음 매혹된 때는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연말 분위기를 낼 이벤트를 찾다가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인형’ 공연을 발견했다. 


나의 문화비용의 기준은 조조 영화 티켓 값 7000원이었기 때문에 그와 비슷한 5000원짜리 자리를 예매했다. 4층에 위치한 내 자리에서 춤추는 임들은 너무나 먼 곳에 있었다. 나는 3000원을 주고 오페라글라스를 빌렸다. 그리고 그 작고 가벼운 것은 내게 황홀경을 선물했다. 


사람의 정돈된 근육을 본다는 건 경이롭고 슬픈 일이었다. 무용수가 팔을 뻗고 구부릴 때마다 그들의 어깨와 등 근육이 미세하게 쪼개졌다. 한쪽 다리가 올라갈 때마다 무대를 딛는 다른 쪽 다리의 종아리 근육이 선명해졌다가 희미해졌다. 공연이란 결과물을 눈앞에 두고 나는 자꾸 과정에 골몰하는 무례를 범했다. 


물기 없이 단단하고 메마른 근육이 생질 때까지 배움과 연습을 반복했을 예술가의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타인의 노력과 재능을 이렇게 값싼 자리에 앉아 바라보는 것이 돌연 미안해졌다. 나는 커튼콜 때 양옆에 앉은 관객보다 두 배 빠르고 세게 손뼉를 치는 걸로 사과를 대신 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멋진 하루>
출처 = 네이버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
출처 = 네이버 영화 <우리의 20세기>

 

배우의 몸  

몸을 써 생의 이력을 쌓는 직업인 중에는 배우도 빼놓을 수 없다. 그중에서도 전도연과 에디 레드메인 그리고 이 글에 주인공인 아네트 베닝은 신체 활용도가 높은 스크린 속 예술가다. 먼저 전도연은 잔 근육이 발달한 테크니션이다. 특히 계절에 상관없이 찬바람을 맞은 듯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입가는 <밀양>의 신애, <멋진 하루>의 희수, <무뢰한>의 혜경이 삶을 어떻게 참아왔는지 설명한다. 


레드메인은 김혜리 영화평론가가 요약했듯 ‘가공할 동화력을 가진 부류의 연기자’다. 그 힘은 언제나 쭉쭉 늘리고 줄이는 묘기가 가능할 것 같은 그의 긴 팔과 다리에서 나온다. 레드메인은 과장된 몸짓으로 마리우스(<레미제라블>)와 뉴트 스캐맨더(<신비한 동물사전>)를 무리의 눈에 잘 띄는 리더로 만들었고 호킹 박사(<사랑에 대한 모든 것>)와 릴리(<대니쉬 걸>)를 연기할 때는 한층 축소되고 절제된 동작으로 실존 인물의 꺾을 수 없는 의지를 표현했다.  


전도연이 기술자, 레드메인이 마법사라면 아네트 베닝은 댄서에 가까운 배우다. 베닝은 음악이 흐르지 않아도 자신만의 리듬을 타는 것처럼 느껴진다. 까딱거리는 고개, 앙다문 입술, 박자를 맞추는 듯한 손끝과 발끝은 삶을 춤추듯 흘려보내는 그녀의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도로시아(<우리의 20세기>)는 사춘기 아들의 양육에 관해 고민하지만 ‘엄마 되기’에 자신을 전부 갈아 넣지 않는다. 젊은 여성들에게 연대를 청하고 때로는 적당히 아들의 문제를 모른척한다. 팔을 씩씩하게 흔들며 돌부리를 겅중겅중 뛰어넘는 것 같은 베닝의 당찬 움직임은 도로시아의 삶이 칙칙해 보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배우인 글로리아 그레이엄(<필름스타 인 리버풀>)은 일상에서 의도하지 않아도 감정이 몸 전체에서 흘러넘친다. 베닝은 남들보다 훨씬 기뻐 보이고 슬퍼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자유롭지만 뭔가 준비된 듯 팔과 다리를 써 상대방을 묘하게 긴장시키는 여성 배우의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몸의 영화

흑백영화 시대에 전성기를 누린 배우 글로리아 그레이엄(아네트 베닝)과 그녀의 연인 피터 터너(제이미 벨)의 실화를 담은 영화 <필름스타 인 리버풀>의 마지막에는 그녀에 관한 자료 화면이 부록처럼 딸려있다. 그레이엄은 195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악당과 미녀》로 여우조연상 수상자로 호명된다.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그녀에게 집중된 순간 무대에 오른 그레이엄은 상기된 목소리로 말한다. Thank you! 그리고 그녀는 환승 열차를 타러 가듯 바로 무대를 걸어 나간다. 꿈처럼 짧은 시간을 다룬다는 점에서 <필름스타 인 리버풀>은 어쩐지 이 영광의 순간과 닮았다. 


 <필름스타 인 리버풀>은 몸에 관한 영화다. 중년에서 노인으로 접어드는 그레이엄은 여전히 가죽 재킷과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몸매를 유지하고 있지만 맨살의 주름만은 어쩔 수 없다. 카메라는 얇고 건조한 배우의 얼굴과 손등에 가까이 다가가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반면 청년인 터너의 몸은 어디서 어떻게 보아도 탄력이 넘치고 생기가 돈다. 여자가 남자보다 29살이 많다는 사실은 늙은 여자가 어리숙한 남자의 젊음을 탐하는 스캔들로 포장되기 쉽지만 이 영화에서 ‘나이 차이’는 무력하다. 이 영화가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하는 보통의 징글맞은 연애담처럼 느껴지는 데는 두 주연 배우의 공이 크다. 아네트 베닝과 제이미 벨은 호들갑 떨지 않고 서로의 몸에 사랑을 봉인하는 데 집중하며 1979년부터 1981년까지 듬성듬성 이어지는 시간까지 촘촘히 바느질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필름스타 인 리버풀>


영화에는 세 번의 중요한 몸 신(scene)이 등장한다. 섹스 신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레이엄과 피터의 사랑은 오히려 두 사람의 신체적 접촉이 적은 순간 증명된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이뤄진다. 터너는 아파트 복도에 서서 문이 열린 집 안에서 괴상한 소리를 내며 목과 몸을 푸는 한 여자의 뒷모습을 발견한다. 터너가 처음 본 그레이엄은 여배우의 모습이 아니다. 어떠한 정보도 주지 않고 터너에게 발견된 새로운 이웃사촌 그레이엄은 그가 그녀에게 편견 없이 다가가는 계기가 된다.   


첫 만남 이후 그레이엄은 터너에게 자신의 댄스 파트너가 되어 주면 맥주를 공짜로 제공하겠다고 제안하고 그는 흔쾌히 예스를 외친다. A Taste Honey가 부른 Boogie Oogie Oogie가 울려 퍼지는 그레이엄의 집 안에서 두 사람은 황홀한 댄스 타임을 가진다. 그 시간 동안 두 사람은 어떤 신체적 접촉도 하지 않으며 대화를 나누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이후 함께 극장 데이트에 나서는 사이로 발전한다. 춤은 나이와 지위가 중요치 않으며 경계를 허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연인에 가까워지는 건 몸과 몸이 함께 하는 시간을 의식처럼 가진 결과로 보인다. 


치료 때문에 미국으로 돌아가는 그레이엄을 위해 터너가 마련한 <로미오와 줄리엣> 무대는 두 사람의 언약식처럼 보이며 주고받는 대사는 성혼선언문처럼 들린다. 극장 안에는 서로의 무릎을 맞닿은 채 마주 보고 앉은 두 사람을 제외한 누구도 존재하지 않으며 두 사람의 마음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우열을 가릴 수 없다. 지문대로 서로의 손등에 입을 맞추는 행위는 아직 서로의 육체가 앞에 있음을 확인하는 절차처럼 보인다. 연극은 배우의 몸이 없으면 불가능한 예술이다. 영원한 이별에 앞선 행위로 연극이 선택된 건 이 영화에서의 몸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필름스타 인 리버풀>은 두 사람의 신체적 차이가 분명함에도 특별히 늙어버린 몸을 한탄하거나 젊은 몸을 예찬하지 않는다. 연인은 현재의 몸을 바라보고 춤을 추고 손등에 입을 맞춘다. 서로의 몸을 향해 서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들의 사랑은 진실성을 획득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필름스타 인 리버풀>

 

그들의 사랑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몸 이외에도 그레이엄과 피터의 사랑에 관해 좀 더 말하고 싶다. 영화는 연인이 사랑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걸리적거리는 모든 낙엽과 돌을 쓸어버린다. 위계가 생기기 쉬운 조건임에도 평등해 보이는 이들의 관계가 그렇다. 두 사람은 나이의 많고 적음으로 상대방을 지배하려 들지 않는다. 누가 더 많이 사랑하느냐를 놓고 강자와 약자로 갈리지 않으며 주도권 경쟁도 벌이지 않는다. 후반부에 그레이엄이 병에 걸린 자신으로부터 터너를 떼어내기 위해 싸움을 걸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사랑싸움이 아니라 의도가 분명한 연극이다. 


두 사람은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라고 외칠 만한 사건도 겪지 않는다. 세상의 뾰족한 시선으로부터 상처를 입거나 가족의 반대로 사랑의 결속이 약해지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그레이엄의 전남편이나 터너의 전 애인이 등장해 둘 사이를 훼방 놓지도 않는다. 그레이엄의 엄마가 터너에게 결혼은 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이는 가족끼리의 흔한 밥상머리 당부 정도로 지나간다. 심지어 터너의 가족은 대체로 그레이엄에게 호의적이다. 


그레이엄이 네 번 결혼하고 네 명의 아이를 둔 엄마라는 사실은 그녀에게 약점이 될 수도 있지만 이 사실은 끝까지 그녀만의 문제로 한정된다. 사랑의 장애물은 터너의 개입 자체가 불가한 그레이엄의 병뿐이며 그것은 오로지 환자 개인의 싸움이다.


처음에 터너는 왕년에 잘 나갔다던 그레이엄의 과거를 알지 못한다. 이후 터너는 집주인과 펍의 남자 직원과 아버지로부터 그녀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경력이 있으며 섹시 스타였다는 사실을 듣는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과거에 딱히 반응하지 않는다.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를 함께 관람하는 극장 안에서 그의 시선은 스크린 속 젊은 여배우가 아니라 옆에 앉아 웃는 나이 든 연인에게 머문다. 사람들에게 그레이엄은 흑백의 과거이지만 터너에게만큼은 생생한 현재다.     


다시 몸으로 돌아오고자 한다. <필름스타 인 리버풀>에서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방식은 연극의 세트를 연상시킨다. 1981년 자신의 집 안에 있던 피터가 방문을 열고 나가면 1979년 배우지망생 시절 그레이엄을 처음 만났던 그 아파트 복도로 연결되는 식이다. 이런 연극적인 구성은 문을 여닫아줄 배우가 존재해야만 가능하다. 이 영화가 몸의 영화인 또 다른 이유다.       


(아네트 베닝과 제이미 벨 각자의 연기에 대해 충분히 쓰지 못한 점이 아쉽다. 이미 찬사를 받는 베닝 만큼 벨 또한 좀 더 큰 박수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두 배우의 몸을 오래도록 보고 싶다.)       




[chaeyooe_cimema] 

필름스타 인 리버풀 Film Stars Don't Die in Liverpool  

감독 폴 맥기건 Paul McGuigan



간만에 만나는 손 내밀면 목숨을 내줄 것 같은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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