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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yooe Dec 17. 2018

그렇게 영원히 나를 불러줘

<스타 이즈 본>을 보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스타 이즈 본>을 보고 시인 김춘수의 유명한 시 「꽃」이 떠올랐다. 여기서 ‘나’는 잭슨이고 ‘그’는 앨리다. 여기서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는 잭슨이 앨리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말하는 것이다. 잭슨의 호명 덕에 비로소 자신과 마주 보게 된 앨리는 꽃(스타 이즈 본)이 된다.  


출처 = 씨네21 <스타 이즈 본>


나를 모르는 사람, 내 세계의 외부인

앨리(레이디 가가)의 이야기는 구조된다. 폭력적인 언어에 갇혀있던 그것을 구한 건 잭슨(브래들리 쿠퍼)이다. 잭슨이 구원자가 될 수 있었던 건 그가 앨리가 사는 세계의 외부인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투어를 돌만큼 유명한 싱어송라이터이고 될성부른 떡잎 한 명쯤은 가수로 만들 수 있는 재력과 스킬을 갖췄다 할지라도 그가 앨리의 ‘아는 사람’이었다면 모든 건 무용해진다. 살피기 위해서는 대상과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이승우,「소돔의 하룻밤」) 외부인인 잭슨의 부름에 의해서야 앨리의 이야기는 비로소 노랫말이 된다. 

  

잭슨을 만나기 전까지 앨리 자신은 가수가 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녀 스스로 재능 없음을 깨닫고 포기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녀가 관계 맺고 있는 남자들로부터 ‘당신이 가수가 될 수 없는 101가지 이유’를 들어왔기 때문이다. 앨리의 아버지와 음악 업계 종사자들은 앨리의 외모와 환경이 스타가 되는 기준점에 못 미친다는 말을 돌려하지 않는다. 이미 끝난 사이임에도 전화로 결혼을 구걸하는 전 남자친구와 퇴근하는 앨리에 등에 대고 쓰레기를 버리라고 욕을 섞어 명령하는 식당 매니저는 앨리의 자신감을 흙탕물에 가라앉힌다. 


앨리에게 잭슨은 폭력적인 언어를 쓰지 않는 유일한 남자다. (함께 식당에서 일하고 앨리에게 드랙바 공연을 제안한 친구 누들스 또한 해당하지만 게이인 그는 앨리의 다감한 동성 친구 역할에 그친다. 따라서 앨리가 영향받는 남성의 언어에 그의 언어는 포함되지 않는다.) 다른 남자들과 다르게 잭슨은 앨리의 겉모습을 오래 보고 제대로 살핀 후 그것의 아름다움을 상찬한다. 잭슨의 말은 그동안 자신의 몸과 불화하던 앨리가 그 모습 그대로 무대에 올라가는 용기를 준다.  


출처 = 씨네21 <스타 이즈 본>


진짜를 말하는 입  

잭슨의 존중하는 언어와 따듯한 손길이 닿는 앨리의 신체 부위는 세 곳이다. 진짜 눈썹 행세를 하는 가짜 눈썹과 가수가 될 수 없게 만드는 저주받은 코 그리고 피아노를 치는 손이다. 영화는 초반에 이 세 부분을 두고 교감하는 두 사람의 시간을 밀도 높게 채움으로써 ‘신데렐라 스토리’ 딱지 먼저 떼버린다. 


시작은 눈썹이다. 드랙바에서 앨리의 ‘라비앙로즈’ 공연을 본 잭슨은 그녀가 있는 분장실에 찾아간다. 잭슨은 앨리에게 동의를 구하고 얇은 펜으로 그은 것 같은 그녀의 가짜 눈썹을 천천히 떼어낸다. 앨리가 텅 빈 눈썹 자리를 손으로 막으며 어쩔 줄 몰라 하자 잭슨은 당신 얼굴을 제대로 보기 위해 뗀 거라며 앨리의 손목을 잡아 내린다. 


다음 스텝은 코다. 앨리는 잭슨과 처음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음악 업계 사람들에게 너는 코가 커서 가수가 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고백한다. 그러자 잭슨은 당신의 코는 아름답다며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는다. 밤새도록 볼 수도 있다고 덧붙인 그는 눈썹을 떼어내던 그 속도로 앨리의 코를 손가락으로 쓸어본다. 이후 앨리는 자신의 코가 콤플렉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앨리는 자신의 코를 쓸어내리는 행동을 잭슨을 향한 애정의 제스처로 사용한다. 


마지막은 손이다. 잭슨에게 같잖은 이유로 사진을 요구하는 남자를 해결하려던 앨리는 남자로부터 욕설을 듣자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다. 그러자 잭슨은 그대로 앨리는 들어 올려 바를 빠져나온다. 앨리와 함께 편의점을 찾은 잭슨은 앨리에게 손가락을 움직여 보라고 요청하며 피아노를 치느냐고 묻는다. 미소를 지으며 앨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잭슨은 그럼 치료해야 한다며 방금 고른 얼음 팩과 거즈 두 개를 붉어진 앨리의 오른 손가락 뼈마디 위에 올려놓는다. 자기 몸채만 한 쓰레기봉투를 수거장에 집어던지고 가족이 먹다 남은 음식이 담긴 접시를 치우던 생활 노동자의 손은 잭슨에 의해 비로소 가수의 손으로 존중받는다.     


그러나 끝내 잭슨 역시 앨리에게 폭력의 언어를 쓴다. 더는 잭슨이 앨리가 사는 세상의 외부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앨리의 남편이 된 잭슨은 그녀와 가장 가까운 관계가 되었다. 엄연한 팝스타가 된 앨리는 잭슨이 살던 세계에 편입되었다. 두 사람은 이제 같은 세계의 거주민이다. 


극 후반부에 잭슨은 앨리의 노래 가사(왜 청바지를 입고/왜 그런 엉덩이로 알짱거려)를 비난하며 앨리가 부끄럽다 말한다. 앨리의 반격으로 싸움이 커지고 잭슨은 결국 절대 하지 말았어야 하는 그 말, ‘당신 못생겼어’라는 말을 앨리에게 해버린다. 욕조 안에 앉아있던 앨리는 더는 참지 못하고 일어나 잭슨에게 나가라고 소리친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잭슨이 앨리에게 남긴 것은 사랑의 언어다. 앨리를 위해 잭슨이 쓴 곡 <I'll never love again>이 바로 그것이다. 죽음으로 인해 다시 앨리의 세계에서 멀어진 잭슨은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은 사랑할 수 없다는 가사를 통해 앨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를 그녀 스스로 깨닫게 한다. 


출처 = 씨네21 <스타 이즈 본>


혼자가 아닌 나

<스타 이즈 본>은 연대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잭슨이 함께한다는 느낌은 앨리가 무대에 설 수 있게 만드는 강력한 동력이다. 이는 앨리의 첫 무대와 마지막 무대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앨리의 첫 무대는 잭슨의 투어 공연에서 펼쳐진다. 여기서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잭슨이 앨리의 자작곡을 편곡한 <Shallow>다. 먼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잭슨은 앨리가 무대에 오르기를 기다린다. 아는 사람과 아는 노래가 기다려준 덕분에 마침내 앨리는 행동한다. 


마지막 무대는 잭슨의 추모 공연이다. 여기서 앨리가 부른 곡은 잭슨이 그녀를 위해 만든 <I'll never love again>이다. 상실감으로 한동안 가수 활동을 하지 못하던 앨리는 잭슨의 부름 의해 무대에 처음 섰던 그때처럼 이 곡으로 다시 무대에 선다. 앨리는 잭슨을 느끼며 슬프고도 아름다운 공연을 이어나간다. 이처럼 그녀의 무대에는 언제나 잭슨이 존재한다. 


잭슨과 행복했던 순간들이 삽입되며 절절하게 진행되던 앨리의 공연은 갑자기 방송 사고가 난 것처럼 다른 컷으로 점프한다. 영화는 과거 잭슨이 이 곡을 피아노로 치며 앨리에게 들려주던 때로 순간이동 한다. 그리고 마치 바통 터치하듯 잭슨은 앨리가 부른 바로 다음 소절을 이어 부른다. 피아노에 몸을 기댄 앨리는 그런 잭슨을 바라보며 여러 번 감격한다. 


과거 시퀀스가 끝나자마자 영화는 다시 무대에 서 있는 앨리에게로 돌아온다. 카메라는 클로즈업으로 앨리의 얼굴을 잡는다. 위를 올려다보던 앨리는 이윽고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이때 앨리의 표정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가가의 결연함이 느껴진다. 관객과 눈을 맞추며 앨리는 마지막으로 말한다. 스타 이즈 리본(A Star Is Reborn)이 시작한다고.




[chaeyooe_cimema] 

스타 이즈 본 A Star Is Born

감독 브래들리 쿠퍼 Bradley Cooper



폭력의 언어에 갇혀 있던 이야기를 구출해 노랫말로 만드는 과정 전체가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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