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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yooe Jan 15. 2019

완벽히 안전한 일터가 불안한 이유

<인 디 아일>을 보고


진정한 나는 언제나 직장 밖에 있다고 말한다. 퇴사 후에 진짜 나를 발견했다는 사람들의 에세이가, 진짜 나를 찾으러 여행을 떠나라는 항공사 프로모션이, 퇴근 후 운동복으로 갈아입었을 때 진짜 내가 된다는 지인의 두 손 모은 고백이 그렇다.      


그렇다면 매번 동일한 곳으로 출근해 같은 사람과 말을 섞고 비슷한 일을 반복하는 나는 누구인 걸까. 좋든 싫든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이는 곳에서 나는 만들어진다. 독일에서 건너온 영화 <인 디 아일>(2018)은 나라는 존재는 특별한 너머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여기에 있다는 걸 보여준다.     


출처 = IMDB <In den Gängen>


일터와 노동자

영화의 주 무대는 이케아 스토어를 연상케 하는 대형 창고형 슈퍼마켓이다. 그곳의 직원들은 기계적으로 상품을 채우는 것처럼 보여도 각자의 리듬에 맞춰 일하는 프로페셔널들이다. 지게차를 몰며 매장 안을 유유히 누비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텅 빈 지구에서 폐기물을 수거하던 월-E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중 브루노(피터 쿠스)는 잔뼈 굵은 베테랑이지만 독불장군 유형은 아니다. 되레 공동체 의식이 강한 그는 담당하는 음료 파트에 수습사원으로 들어온 크리스티안(프란츠 로고스키)에게 작업 방식뿐만 아니라 마켓 생활 노하우까지 슬쩍 알려준다. 이를테면 요령껏 휴식 시간을 갖는다거나 폐기하는 음식을 먹는 건 사칙 위반이라 말한 다음 버리는 소시지를 냉큼 입에 넣는 식이다.   


출처 = IMDB  <In den Gängen>


영화의 보호로 지켜지는 세계

그런데 나는 동화같이 다정한 이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더 무서워졌다. 영화 속 슈퍼마켓에는 노동자들의 삶의 리듬을 깰 만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다. 임금 삭감이나 부당 해고와 같은 노사 갈등도 동영상 촬영을 부르는 상사나 손님의 몰지각한 행동도 없다.      


동료 간의 관계는 더없이 원만하다. 사소한 말다툼도 하지 않으며 크리스마스 주간에는 파티를 열고 술을 나눠 마신다. 결말 부에 브루노와 관련된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마켓 내에서 사건이라고 부를 만한 건 신참 크리스티안이 유부녀인 동료 마리온(산드러 휠러)을 마음에 둔다는 것 정도다.


물론 꼭 무슨 일이 벌어져야만 영화가 될 수 있다는 건 아니다. 다만 이런 평화가 유지될 수 있는 건 바깥에 위치한 영화가 노동자들의 세계를 보호해주기 때문이라는 의심이 들었다.   


출처 = 씨네21 <소공녀>


그리고 이 생각은 한국영화 <소공녀>(2017)로 이어졌다. 주인공 미소(이솜)는 더는 집세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의 값을 모두 감당할 수 없게 되자 후자를 택한다. 영화는 미소가 선택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녀를 돕는다. 집주인에게 줄 달걀 한 판을 든 채 떠도는 미소가 위험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는 영화의 보이지 않는 보호 덕택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만약 영화가 마켓 노동자들과 미소의 세계를 향한 보호를 철회한다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이들은 <인 디 아일>에서의 안전 교육 동영상 속 남자가 겪었던 것처럼 지게차에 허리나 손목이 절단돼 피가 솟구치는 상황을 겪을지도 모른다.


출처 = (순서대로) IMDB <In den Gängen>, 네이버 영화 <패터슨>


<인 디 아일>과 <패터슨>

<인 디 아일>에는 크리스티안이 업무 시작 전 반복하는 행위가 여러 번 등장한다. 그가 작업용 점퍼를 입고 올라간 소매 끝을 바짝 내리는 모습을 보다 보면 그와 비슷한 유니폼을 입고 아내가 싸놓은 도시락을 든 채 출근하는 <패터슨>(2016)의 패터슨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실제로 두 작품은 닮은꼴 영화로 언급되는데 일상의 반복과 차이를 오가며 리듬을 만든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포개지는 구석이 있다.      


그러나 두 영화의 주인공이 반복하는 행위는 결과적으로 두 영화를 갈라놓는다. 각자의 사정에 맞춰 <인 디 아일>은 노동에 관한 영화로 <패터슨>은 예술에 관한 영화로 마감된다. 무리 중의 한 사람(One of Them)인 크리스티안의 작업은 숭고하지만 꼭 그가 아니어도 되는 일이다. 후반부에 브루노가 하던 일을 무리 없이 그가 맡게 된 것처럼 말이다.      


반면 단독자인 패터슨이 시를 짓는 행위는 온전히 그만의 것이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그 행위를 반복하면 할수록 패터슨은 오롯한 패터슨이 된다. 설사 그의 시 노트가 반려견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져 망가져도 그가 시인이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인 디 아일>을 보고 공허함을 <패터슨>을 보고 충만함을 느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작가 편혜영의 단편 「동일한 점심」의 주인공 ‘그’는 대학교 복사실에서 일하는데 작가는 그의 삶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정리한다.      


‘그게 다다. 그런 일들이 하루에 수십 번 복사된다.’     


<인 디 아일>의 노동자들은 앞으로 별일이 없다면 ‘그’와 같은 직장 생활을 이어나갈 것이다. 커피를 뽑아 마시고 짧은 휴식 시간을 갖고 몰래 폐기품을 먹어 허기를 달래고 지게차가 내는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살 거라고 믿고 넘겨도 괜찮은 걸까. 어째서인지 나는 안전 교육 동영상 속 피 흘리는 남자의 참혹한 표정이 여전히 잊히지 않는다.




[chaeyooe_cinema]     

인 디 아일 In the Aisles

감독  토머스 스터버 Thomas Stuber




삶이 늘 시적이지는 않을지라도 최소한 운율은 있다. (앨리스 메이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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