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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yooe Jan 30. 2019

코미디라는 단일 메뉴로 승부 본다

<극한직업>을 보고


단순히 영화에 음식이 나와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떠오른 건 아니다. 이 프로그램에서 백종원 씨가 종종 하는 말이 있다.      


메뉴 수를 줄여라.
사장님이 가장 잘하고
손님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만 남겨라.

그래야 안 망한다.      


출처 = 씨네21 <극한직업>


Simple is Best

분야는 다르지만 그의 일침이 한국영화에도 통한다고 생각했다. 2014년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 이후부터 한국영화계는 본격 범죄액션코믹멜로물 혹은 눈물콧물가족역사극을 지향하는 작품을 재생산하고 있다. <군도: 민란의 시대>, <명량>, <해적: 산으로 간 해적>이 연달아 흥행하는 기적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이후 이 영광은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와 같은 점도로 한국영화산업에 들러붙어 이른바 빅4 시즌이라고 일컫는 설, 여름, 추석, 크리스마스 때 더 활개 친다. 덕분에 나는 적어도 일 년에 네 번, 한국영화에 실망한다.      


그런데 <극한직업>은 좀 별종이다. 이 영화의 장르는 오직 하나. 코미디뿐이다. 안전제일주의 한국영화시장에 그것도 설 시즌을 앞두고 입성한 이 단일 장르 영화의 배짱이 나는 궁금해졌다.       


출처 = 씨네21 <극한직업>


코미디가 전부다

이병헌 감독은 애초부터 이 영화를 영화인이 아닌 예능인의 마음가짐으로 만들었으며 참고한 영화도 없다고 그간의 인터뷰에서 밝혀왔다. 감독이 과거의 영화 대신 촉수를 세운 건 요즘 것들이다. 그는 3개월 동안 시나리오를 수정하면서 한국인이 즐기는 유머와 소비하는 트렌드를 영화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데 집중했다. 알아듣는 재미가 쏠쏠한 영화가 탄생할 수 있었던 건 그 수고 덕분이다. 극중에서 배달의 민족, 호식이두마리치킨, 피자나라 치킨공주가 언급될 때 어쩔 수 없이 피식거리게 된다.     


휘발성 유머뿐만 아니라 단어의 물귀신 작전도 유머 성공률을 높인다. 영화는 웃길 만한 무언가가 있는 단어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반장’이 그렇다. 고 반장(류승룡)은 큰 건을 잡지 못해 만년 반장 신센데 그런 남편의 처지에 아내(김지영)는 속이 탄다.      


부엌에서 분노의 파 썰기를 하며 반장 소리 듣기 싫어 두반장 쓰는 중국집에 안 가고, 드라마 <수사반장> 재방송도 보지 않는다며 한탄하는 아내 뒤에서 고 반장은 숨죽인 채 쪼그라들어 있다. 그때 딸(최정은)이 소리치며 살벌한 집 안으로 들어온다.


“나 반장 됐어!”      


곳곳에 배치한 유머를 회수하는 방식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구찌 쇼핑백이 여기에 해당한다. 영화 초반 고 반장은 입었던 옷과 속옷을 하필이면 구찌 쇼핑백에 담아 아내를 두 배로 분노케 하는데 영화는 그가 맛집 사장이 된 이후 이 쇼핑백을 다시 소환한다.      


이때 쇼핑백은 반전의 아이템으로 사용된다. 또 빨랫감이겠거니 하고 심드렁하게 쇼핑백을 건네받은 아내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안에 든 것이 명품 가방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예상치 못한 유머의 연쇄를 통해 영화는 코미디 상태를 유지해나간다.                 


출처 = 씨네21 <극한직업>


코미디가 멈추면 영화도 멈춘다

단점 역시 멀리 갈 필요 없이 코미디 안에서 발견된다. <극한직업>은 순전히 마약반 팀원들이 만들어내는 코미디를 동력으로 움직이는 영화다 보니 이들이 나오지 않으면 영화의 시동은 꺼져버린다. 이무배(신하균)와 테드 창(오정세)이 이끄는 중후반부의 서사가 말장난과 슬랩스틱 코미디로 버무려졌음에도 영 지루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뒤늦게 마약반이 이무배 일당의 음모를 알아채고 비공식 수사를 진행하면서부터 영화는 다시 활기를 띤다.  


유머의 신선도가 높다는 점과 마치 탁구 경기의 랠리 같은 빠른 대화 신들은 노년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만들 여지가 있다. 실제로 영화를 함께 관람한 엄마는 박장대소를 하면서도 때때로 맥도날드에서 처음 키오스크를 보던 그때처럼 멀뚱멀뚱하게 스크린을 쳐다봤다. 배달의 민족을 이용하지 않고 좀비를 잘 모르며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특정 연령층에 이 영화의 어떤 웃음 포인트는 그저 지나갈 수도 있다.


출처 = 씨네21 <극한직업>


마지막에 쓰려고 남겨둔 백종원 대표의 팁이 있다. 그는 기름에 돈가스를 한꺼번에 많이 넣고 튀기지 말라고 조언한 적이 있다. 그러면 기름의 끓는점이 낮아져 겉은 타고 속은 익지 않아 실패한다는 것이다.    

 

<극한직업>은 적어도 그런 실수는 하지 않는 영화다. 명절 영화라고 감동을, 형사영화라고 스릴러를, 한국영화라고 로맨스를 함께 넣지 않는다. 관객에 입맛에 맞든 맞지 않던 이 영화가 자신의 튀김기 안에 퐁당 투하하는 건 코미디 하나뿐이다.      


깨끗한 기름 속에서 단독으로 튀겨진 튼실한 코미디 한 덩이는 그래서 바삭하며 누린내가 나지 않는다. 여기에 새콤달콤한 양념 소스와도 같은 입소문이 발라지면서 <극한직업>은 오늘도 흥행 중이다.      


(개봉 8일째인 오늘(1/30일) 이 영화의 누적 관객 수는 약 389만 명이다.)   



[chaeyooe_cinema]    

극한직업 Extreme Job  

감독 이병헌


장단점이 모두 한 장르에서만 나온다는 점만큼은 요즘 한국영화와 다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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