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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yooe Feb 19. 2019

‘메리 포핀스 리턴즈’ 흥이 나진 않지만 눈물은 나는

<메리 포핀스 리턴즈>를 보고



포근한 동화의 한 장면처럼 하늘에서 연을 타고 내려왔다고 해서 메리 포핀스(에밀리 블런트)가 상냥할 거란 생각은 착각이다. 메리 포핀스는 <로마>(2018)의 클레오처럼 헌신과 희생으로 식사와 청소를 도맡고 아이들의 잠자리를 봐주는 가정부가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가정교사에 가깝다. 어른이 된 마이클 뱅크스(벤 위쇼)의 실언에 내가 널 그렇게 가르쳤느냐며 꼬집고, 그의 세 아이에게는 청결 상태부터 나무라는 것으로 첫인사를 대신한다.      


출처 = IMDb <The Devil Wears Prada>, <Mary Poppins Returns>


에밀리 블런트와 에밀리의 메리 포핀스

메리 포핀스 역할을 맡은 에밀리 블런트는 캐릭터 구축에 관한 자문을 자신에게 구한 것처럼 보인다. 메리 포핀스에게서 그녀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에서 맡았던 ‘에밀리’가 보이기 때문이다. 에밀리 블런트의 메리 포핀스는 디즈니 공주 (<프린세스 다이어리>, 2001) 경력이 있는 앤 해서웨이처럼 함박웃음 짓는 성격이 못 된다. 디즈니 꿈 동산 안에서 용기 있게도 그녀는 쌀쌀맞은 표정을 주로 짓는다.      


이 영화의 메리 포핀스는 쏟아지는 업무에 진저리난다는 듯 눈동자를 위로 치켜뜨면서도 완벽히 일을 처리하던 에밀리처럼 요청과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살갑지는 못해도 절대 빼지 않는다. 그녀는 로열 덜튼 뮤직홀에서 노래 한 곡 불러 달라는 점등원 잭(린-마누엘 미란다)의 요청에 당황은 잠시뿐 바로 무대 위로 올라가 퍼포먼스를 펼치고, 잭이 런던 빅벤 시계의 분침을 뒤로 돌려야만 하는 순간에도 마지막까지 그를 기다려주다 어쩔 도리가 없는 때에 이르러서야 나선다.     


출처 = IMDb  <Mary Poppins Returns>


가족 울타리 바깥의 메리 포핀스

메리 포핀스에게 뱅크스 가족은 소중하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들의 일원이 되고자 애쓰지 않는다. 아내 역할도 엄마 역할도 탐내지 않는다. 대신 그들에게서 한 발짝 떨어진 자리에 서서 아내의 몫까지 감당하려고 무리하는 남편과 엄마를 대신하려고 조숙해진 어린 남매들에게 힘 빼는 법을 지도한다.    

  

모든 건 관점에 따른 거라는 메리 포핀스의 훈육법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통한 덕분에 뱅크스 가족은 빈자리는 그대로 두어도 괜찮다는 걸 깨닫는다. 잃어버린 적이 없는 건 빼앗길 수도 없다는 그녀의 한마디는 저마다의 빈자리를 품고 살아가는 관객에게도 위안이 되어 준다.      


출처 = IMDb <Mary Poppins Returns>


흥이 나지 않는 뮤지컬 시퀀스

매력적인 캐릭터를 갖고 있음에도 <메리 포핀스 리턴즈>는 심심하다. 이 영화의 뮤지컬 시퀀스 전부를 합친 영향력이 메리 포핀스라는 한 인물의 그것보다도 작다고 느껴질 정도다. 필모그래피의 절반이 뮤지컬 영화로 채워진 롭 마샬이 연출한 만큼 볼거리는 상당한 영화지만 상영관을 나오면서 흥얼거릴 만한 들을 거리는 부족해 보인다.       


이토록 뮤지컬 시퀀스가 어정쩡해진 이유 중 하나는 영화가 뮤지컬의 주도권을 극중 외부자인 잭에게 쥐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이야기의 진행자인 뱅크스 가족은 하이라이트 대목에서 관람자 자리로 밀려난다.


1964년에 만들어진 <메리 포핀스>에서의 잭의 지분이 어느 정도인지는 보지 않아 알 수 없다. 그러나 <메리 포핀스 리턴즈>에서는 힘을 준 뮤지컬 넘버-The Royal Doulton Music Hall, Trip A Little Light Fantastic 등-를 이끄는 건 물론, 시작과 끝을 알리는 목소리까지도 잭이다.      

     

출처 = IMDb <Mary Poppins Returns>


한국에서는 낯선 얼굴이지만 브로드웨이 뮤지컬계의 스타인 린-마누엘 미란다는 실력자답게 길가의 가로등마다 불을 켜듯 관객을 자연스럽게 결말까지 인도한다. 그럼에도 그의 독무대와 다를 바 없는 장면들이 계속되면서 영화의 활력과 재미는 점차 반감된다. 어쩌면 이런 생각은 초반부에 예상치 못하게 아내를 그리는 노래 연기로 감명을 준 벤 위쇼 때문에 강해졌는지도 모른다. 그에게 노래할 기회가 좀 더 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여전히 든다.     


출처 = IMDb  <Mary Poppins Returns>


그녀는 구원자가 아니었음을

정용준 작가가 쓴 「프롬 토니오」의 주인공 시몬은 우연히 만난 생명체 토니오 덕분에 삶의 태도가 달라진다. 그는 자신의 지저분한 안경알을 토니오가 닦아줬을 때야 비로소 연인을 잃어 세상이 온통 뿌옇게 보인 게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당신이 내 안경알을 닦아줘서 날씨가 바뀌었어요.
그게 내겐 아주 큰 변화였습니다.
당연한 건데 놀라운 깨달음이었어요.


메리 포핀스 역시 토니오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녀는 결코 뱅크스 가족의 인생 전체를 구원하는 마법을 부리지 않는다. 단지 사람들은 고민이 너무 많이 해서 문제라며 뱅크스 가족이 그들에게 처한 상황을 단순하게 볼 수 있도록 돕는다.      


메리 포핀스 덕분에 관점 전환을 할 수 있었던 뱅크스 가족은 아내와 엄마의 존재를 느끼며 살아갈 힘을 얻는다. 할 일을 마친 그녀는 올 때도 마음대로 왔던 것처럼 갈 때도 예고 없이 떠난다. 화려한 퍼포먼스로 가득한 뮤지컬 시퀀스보다 여왕의 미소를 품은 메리 포핀스의 표정이 자꾸 생각나는 건 그녀가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난 탓인가 보다.          


     


[chaeyooe_cinema]    

메리 포핀스 리턴즈 Mary Poppins Returns

감독 롭 마샬 Rob Marshall



어정쩡한 뮤지컬 시퀀스까지 받쳐주는 뮤지컬 밖의 메리 포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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