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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yooe Feb 22. 2019

그녀는 아이들을 위해 「메리 포핀스」를 쓰지 않았다

<세이빙 MR. 뱅크스>를 보고



제목과 오프닝 신에 관한 의문에서부터

<세이빙 MR. 뱅크스>는 시작과 동시에 두 가지 의문점을 갖게 한다. 첫째, 어째서 제목이 ‘뱅크스 씨 구하기(SAVING MR. BANKS)’일까? 따지자면 이 영화는 작가와 제작자 간의 계약 체결 및 이행 과정을 그린 작품이고, 뱅크스 씨는 그 작가도 제작자도 아니다. 두 사람이 영화화를 두고 20년째 제안과 거절을 주고받는 동화 「메리 포핀스」(1934)의 주인공도 아니다.      


자신의 「메리 포핀스」를 월트 디즈니(톰 행크스)에게 팔아넘기고 싶지 않은 P.L. 트래버스(에마 톰슨) 측면에서 보자면 이 영화의 제목은 <세이빙 메리 포핀스>가 더 적절해 보인다.      


출처 = DVD <SAVING MR. BANKS>


둘째, 이 영화는 왜 정원에 앉아있는 소녀로 시작할까? 거래하기에 소녀는 어리고 정원은 감성적이다. 그러나 눈물 바람으로 이 영화의 보고 나면 제목과 오프닝 신은 마땅했음을 깨닫게 된다. <세이빙 MR. 뱅크스>는 동화가 영화로 만들어지는 절차가 중요한 게 아니라 동화와 영화 같은 이야기가 이 세상에 왜 필요한지를 알려주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출처 = DVD <SAVING MR. BANKS>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동화 작가라면 으레 다정한 표현과 인형을 좋아할 것 같다는 말을 트래버스에게 했을 때 돌아올 대답을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미간을 찌푸린 채 그녀는 이렇게 외칠 것이다.


NO!      


트래버스에게 그 모든 건 세상의 어둠을 감추는 방편이며 사탕발림이기 때문이다. <메리 포핀스>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LA 디즈니 스튜디오를 찾은 그녀는 “해님이 마중 나왔나 봐요!”라며 인사하는 운전기사 랄프(폴 지아마티)에게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코웃음 치고, 디즈니 측이 그녀의 숙소 침대에 떡 하니 앉혀 놓은 사람만 한 미키마우스를 보고는 질색하며 끌어내린다. (심지어 그녀는 미키마우스에게 침대에 있었다는 죄를 물어 벽을 보게 하는 벌을 내린다.)      


일할 때도 마찬가지다. 트래버스는 설탕 한 숟갈이면 쓴 약이 쑥 내려간다는 코러스를 부르며 즐거워하는 디즈니에게 정직하지 못한 노래라면서 힐난한다. “아이들은 알게 돼 있어요. 필연적으로.”라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어른들이 달콤한 말과 행동 속에 숨겨놓은 현실을 발견해 버린 소녀의 그것이 있다.     


출처 = IMDb <SAVING MR. BANKS>


그녀에게는 허구의 이야기와 캐릭터가 필요했다

이제 오프닝 신에 대해 말할 차례다. 정원의 소녀는 다름 아닌 어린 트래버스다. 영화는 현재 서사를 진행시키면서 그녀가 트래버스라는 아버지(콜린 패럴)의 이름을 필명으로 쓰기 전이자 헬렌 리프였던 시절의 서사를 예고 없이 끼워 넣는다.


틈입한 과거는 여인을 지독히도 괴롭힌다. 고통의 기제는 사랑하지만 자신을 늘 불안 상태에 두었던 알코올 의존증 아버지가 아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죽어가도록 둘 수밖에 없었던, 가진 사랑을 전부 아버지에게 주느라 어머니를 소외시켰었던 자신이다.       


어쩌면 트래버스가 작가가 된 건 자가 치유를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운명처럼 그녀에게는 냉혹한 현실에서 딸만은 구하기 위해 끝없이 이야기를 지어내던 아버지의 피가 흐른다. 다 자란 딸은 아버지가 구원 받는 이야기를 쓰는 것으로 통증을 잊으려 애쓴다.      


아버지처럼 사는 것에 걱정이 많을 뿐 유능하고 다정한 뱅크스 씨와 그를 진정으로 구해 낼 마법사 메리 포핀스가 등장하는 동화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 영화의 제목이 ‘세이빙 MR. 뱅크스’인 건 그 때문이다.        



그에게도 이야기는 절실했다

영화 내내 트래버스에게 돈벌이 기계(디즈니랜드) 사장이라며 극한 불호를 받는 디즈니에게도 그만의 뱅크스 씨가 있다. 피부가 벗겨지는 혹한에도 8살짜리 아들에게 신문을 돌리게 하던, 그렇지 않으면 주먹에 허리띠를 감던 사랑하는 아버지다.      


그 기억을 들고 디즈니는 결국 계약을 파기하고 돌아간 트래버스의 집에 방문해 마지막으로 호소한다. 슬픈 과거로부터 지배받지 않는 인생을 찾고 싶지 않으냐는 그의 물음은 ‘디즈니’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대답이 된다. 디즈니 스토리가 저속한 거짓 세계가 아닌 희망의 위안처임을 공감한 트래버스는 20년간의 구애를 마침내 받아들인다.            


출처 = IMDb <SAVING MR. BANKS>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중 하나로 꼽히는 <시민 케인>(1941)의 감독 오슨 웰스는 평생 돈을 벌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의 세 번째 아내였던 파올라 모리는 그의 창작 활동을 이런 말로 지지했다.      


"오손, 만약 사람들이 세상의 모든 영화 필름을 가져와서 그걸 방에 넣고 태워버린다 해도,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어요?"

(제임스 설터가 쓴 「소설을 쓰고 싶다면」(2018)에서 발췌했다)


모리의 말이 맞다. 세상에서 이야기가 사라진다고 해서 전쟁이 나거나 재난이 발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겐 현실에서 도망칠 허구의 이야기가, 낙담 없이 기댈 허구의 인물이 필요하다. 오늘도 소설책을 펼치거나 영화를 보려는 거기 당신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chaeyooe_cinema]    

세이빙 MR. 뱅크스 SAVING MR.BANKS 

감독 존 리 행콕 John Lee Hancock



어째서 나는 자꾸만 허구의 이야기로 도망치는가.
어째서 나는 또다시 허구의 당신에게 기대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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