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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yooe Mar 01. 2019

애 키우기 힘들다고 느낄 때, 예술가는

<미래의 미라이>를 보고



기록영화의 창시자인 감독 로버트 플라어티의 말이 이 글의 길을 터 주었다.      

모든 이야기는 해당 장소에 대한 주제인 것이다.     


이 문장을 부모가 된 예술가의 입장에서 살짝 바꿔봤다.      

모든 이야기는 아이에 대한 주제인 것이다.      


출처 = DVD <미래의 미라이>


그렇게 영화의 소재가 된다

이별로 슬픈 순간에도 이 감정을 기억해서 나중에 연기에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한 자신에게 고개를 저었다는 어느 배우의 후일담처럼, 영화감독 역시 자신이 부모가 되고 아이를 키운다는 불안과 흥분은 곧 영화의 소재가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조 라이트가 그랬다.    

  

아버지가 되었다는 사실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에겐 바뀐 아이를 모티브로 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를, 조 라이트에겐 피터 팬을 소재로 한 <팬>(2015)을 만들게 했다.


그리고 2018년 부로 호소다 마모루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작은애를 처음 보고 신기해하던 큰애의 표정에서 시작된 감독의 신작 <미래의 미라이>에는 생초보 아빠였던 시절의 그가 있다.       


출처 = DVD <미래의 미라이>


부모, 당신들을 돌보러 왔어요

호소다 마모루는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스포트라이트>, 2015)는 말도 부족하다고 느낀 것 같다. <미래의 미라이>의 젊은 부모는 가능하다면 온 마을 아니라 온 우주의 도움을 받고 싶은 심정이다.


그들은 네 살짜리 아들 쿤과 이제 막 집에 입성한 갓난아이 딸 미라이와 한집에서 살아가야 하는 임무를 막 부여받은 상황이다. 미운 네 살의 전설과 <툴리>(2018)를 듣고 본 나는 조금 안다. 그것이 결코 커가는 기쁨이라는 말로 뭉뚱그릴 수 없는, 아주 구체적이고 정확한 공포임을.     


그래서 호소다 마모루는 한다. 온 우주에 빌어 과거와 미래까지 끌어와 영화의 시간을 확장한다. 그 혜택을 받는 건 부모가 아니라 아들이다. 어차피 부모에게 시간을 더 주어봤자 휴식이 아닌 육아에 쓰일 거라는 걸 올해 겨우 초등학생 학부모가 된 감독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감독은 미래에서 온 중학생 미라이를 쿤 앞에 데려다 놓기도 하고, 직접 쿤을 과거로 가게 해 꼬마 시절 엄마와 청년 시절 증조할아버지를 만나게 한다. 쿤에게 오빠다움과 아이다움이 무엇인지 가르치기 위해서다.      


출처 = 씨네21 <미래의 미라이>


마모루 식 압축 성장을 거친 쿤은 달라진다. 자던 동생의 얼굴을 잡아당기는 걸로 엄마를 빼앗아 간 복수를 하던 첫째는 혼자 오도카니 앉아 있는 동생에게 먼저 다가가 먹을 것과 웃음거리를 제공하는 오빠가 된다.


쉬이 설득되는 변화는 아니다. 적어도 한 번쯤은 나다운 게 뭐냐고 외치는 한국 드라마 속 성인 남녀가 무색할 정도로 자기 정체성을 금방 찾아버리는 네 살의 시간 여행이 떠름하지만 잠시나마 숨을 돌릴 부모를 상상하면 됐다 싶다. 아마 감독이 바란 것도 그런 걸 거다.       


출처 = 씨네21 <미래의 미라이>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극 초반 지나가는 밥상머리 얘기쯤으로 생각했던 쿤의 외증조부모의 에피소드는 후반에 진지한 가족 운명론으로까지 깊어진다. 외증조할아버지가 외증조할머니와의 달리기에서 이겨서 청혼에 성공했다는 풍문인데, 그게 사실임을 밝혀내는 건 그때 그 시합 장소로 함께 돌아간 미래의 미라이와 쿤이다.      


전쟁 중 부상으로 한쪽 다리를 절게 된 할아버지가 그럼에도 전속력으로 달리지 않았더라면, 그런 할아버지를 위해 할머니가 천천히 달리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우리는 없었을 거란 미라이의 말은 단순히 로맨틱한 경기를 보고 난 뒤에 남기는 감상 젖은 소감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쉽게 만난 게 아님으로 쉽게 헤어지지도 말아야 한다는 그 메시지가 내 귀에는 가훈처럼 고리탑탑하게 들려 짐스러웠다. 그러나 그 말이 어디선가 지금, 이별의 문손잡이를 쥐었다 놓았다 하는 가족 중 누군가의 마음을 돌려세울지도 모른다. 거창하고 뻔한 말은 때때로 그런 힘을 발휘하곤 한다.       


출처 = 씨네21 <미래의 미라이>


올해 이상문학상 대상작인 윤이형 작가의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에는 결혼식 주례사에 써도 손색없는 명문장이 있다.      


결혼이 남미의 오지로 떠나는 위험한 여행이라면,
아이의 양육자가 되는 일은 우주선에 탑승해 미지의 행성에 정착하기 위해 떠나는 것과 같다.     


<미래의 미라이>는 감독이 철저히 부모의 편에 선 영화다. 수긍한다. 그는 이미 험난한 우주선 생활 중이다.     




[chaeyooe_cinema]

미래의 미라이 未来のミライ

감독 호소다 마모루 細田守


누구보다 창작자 본인에게 위안이 되어줄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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