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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yooe Mar 16. 2019

못 웃기는 이 코미디 영화를 지지한다

<기묘한 가족>


이런 영화를 앞에 두고 웃지 않으니 죄짓는 기분이 들었다. <기묘한 가족>은 코미디 영화로서 최선을 다했다. 사건도 대사도 슬랩스틱도 나쁘지 않았다. 연기 잘하는 배우들로만 구성된 가족의 합에도 모자람이 없었다. 다만 웃기질 못했을 뿐이다. 목표 달성에 실패한 이 영화를 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외려 고생했다며 어깨를 토닥이고 싶었다. <기묘한 가족>은 적어도 하려고 애썼으나 잘 되지  않은 것뿐이다.


출처 = 씨네21 <기묘한 가족>


<조용한 가족>과 <괴물>이 떠오르지만   

이 영화는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기묘한 가족>이라는 제목은 단번에 <조용한 가족>(1998)을 떠올리게 한다. 이윽고 배우 박인환이 두 편 모두에서 집안 어른으로 등장한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의심이 생긴다.


혹시 속편인 건가? (물론 아니다)      


극 중 준걸(정재영)네 가족은 <괴물>(2006)의 강두(송강호)네 가족을 쏙 뺐다. 차이라면 준걸네가 시골에서 주유소 가족 경영을 어떻게든 유지하느라 영악해졌다는 정도다. 평온한 시골 마을에 사건이 생긴다는 얼개 또한 신데렐라 스토리만큼 흔하다. 그런데 <기묘한 가족>은 캐릭터와 이야기를 조금씩 애써서 바꿔 살길을 도모한다.         


출처 = 씨네21 <기묘한 가족>


이 집 좀비와 막내는 다르다

이 영화의 좀비(정가람)는 쫑비라는 별칭에서 예측 할 수 있듯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좀비 특유의 흰 살갗은 섬뜩함을 주는 대신 병약한 청년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한몫한다. 여기에 쫑비는 사람 피보다 상큼한 빨간 케첩을 즐기는 식성으로 귀여움까지 획득한다. 덕분에 쫑비는 가족에게 반려동물이 받을 법한 애정을 받게 된다. 쫑비를 애초부터 살육 의지가 없는 무해한 존재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좀비는 개별적이다.


출처 = 씨네21 <기묘한 가족>


쫑비와 함께 시선을 끄는 캐릭터는 이 집 막내 해걸(이수경)이다. 해걸은 전형적인 베일에 싸인 소녀지만 극의 의뭉스러운 분위기를 더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그에게는 할아버지 만덕(박인환)을 제외한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는 없는 사연이 부여됐다. 어머니의 목숨과 맞바꿔 탄생한 아이라는 비극이다.      


순수하지만 그늘진 해걸의 품성은 자신이 오빠들에게서 엄마를 빼앗아갔다는 죄책감에부터 기인한다. 새언니 남주(엄지원)와 뱃속의 조카까지 모두 지키겠다고 좀비 떼 앞에 선 해걸의 모습은 그래서 애처롭다. 이처럼 특별한 해걸은 특별한 쫑비와 파트너를 이뤄 어른 캐릭터들의 평범함을 다소 상쇄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기묘한 가족>


좀비영화에서 좀비보다 중요한 건

식상한 이야기 역시 좀비를 활용해 돌파구를 마련한다. 돈 나올 데가 절실한 가족에게 좀비는 기가 막힌 사업 아이템이다. 전래동화 「이상한 샘물」의 영감처럼 만덕이 쫑비에게 머리를 물린 뒤 회춘하자 가족은 본격 장사에 들어간다.


젊음을 사고 싶은 시골의 남성 노인들은 돈다발을 들고 준걸네 주유소 앞으로 몰려들고, 쫑비는 눈앞에 턱턱 놓이는 케첩 바른 팔을 3초 진료하는 의사처럼 빠르게 물어 재낀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사업의 성패이고, 돈을 모아 가족이 10년 만에 주유소를 리뉴얼할 수 있느냐다. 이들에게 닥치는 위기 역시 사업의 지속 여부와 관련된 것이다. 위기를 만드는 건 전형적인 허우대만 멀쩡한 둘째 민걸(김남길)이다.


유일하게 도시물 좀 먹은 남자인 민걸은 틈만 나면 쫑비를 빼돌려 돈과 바꿔 먹으려고 시도하지만 번번이 머리채 잡혀 실패한다. 중반까지도 좀비가 된 사람들이 거리를 활개 치고 생사가 오고 가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건 그 때문이다. 좀비영화라는 정체성을 내세우지 않는 방식으로 <기묘한 가족>은 좀비영화의 진부함을 덜어낸다.          


출처 = 씨네21 <기묘한 가족>


결말이 좋으면 다 좋은 거지 뭐

보는 내내 마음속으로 이 영화가 호인지 불호인지를 외며 꽃잎을 떼던 내가 결국 호에서 손을 멈춘 건 결말 때문이다. 이 좀비영화에는 비전이 있다. 결국 폐허가 된 사회를 관망하거나 생존자의 삶을 희망 필터를 껴서 보여주며 끝내지 않는다. 백신이 있고 그걸 접종시킬 인원이 있으므로 미래도 있다고 확실히 제시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만덕이 있다. 만덕은 이용철 평론가의 설명처럼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목적과 방향성을 지닌 인물’이다. (<극한직업>의 엄청난 흥행, <뺑반> <기묘한 가족>이 택한 다른 길, 씨네21) 회춘 사업으로 모은 돈을 깡그리 훔쳐 혼자 하와이에 갔다 온 만덕은 흰 우유처럼 한껏 뽀얘진 얼굴로 가족 앞에 컴백한다. 돈에 밝은 민걸이 그런 아버지를 보고 함박웃음 짓는 건 결코 반가워서가 아니다. 아버지가 멀쩡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좀비에게 물리고도.     


최초 좀비 바이러스 감염자로서 사건의 발단을 맡을 자격이 주어졌던 만덕은 좀비 항체 보유자가 되어 결말을 책임질 의무도 주어진다. 이제는 만덕이 가족의 대박 아이템이다. 만덕은 좀비의 팔을 깨물어 그들의 몸에 항체를 주입하는 도구가 된다. 우거지상을 하고 앉아 재봉틀로 박듯 무한 작업 중인 상황에서 만덕이 의지할 수 있는 건 소주뿐이다. 만덕에서 시작해 만덕으로 끝나는 이 영화는 그래서 깔끔하다.         


출처 = 씨네21 <기묘한 가족>


지지의 변을 늘어놓았지만 그 속에 코미디 칭찬은 쏙 빠졌으니 겸연쩍다. 이 영화의 장르는 코미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웃지 못했을까. 웃기려고 애쓰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도리어 짠한 마음이 들 때가 있지 않은가. 이 영화를 보는 내가 정확히 그런 기분이었다. <기묘한 가족>은 기묘하게도 너무 애쓰는 바람에 실패했다. 그래도 괜찮다. 이 영화에 대한 꽃점의 결과는 다름 아닌 ‘호’다.         




[chaeyooe_cinema]

기묘한 가족 THE ODD FAMILY : ZOMBIE ON SALE

감독 이민재



웃음을 아쉽게 비껴가는 불철주야 애쓰는 코미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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