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식, 조현민, 패터슨

배철현 교수의 '운명-개성-습관'에 따라 관찰하기

by Chaeyooe
"나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나의 개성이다. 나의 개성은 나의 습관이며, 습관은 나의 반복된 생각이 만든 일관된 행동들이다." - 습관(習慣), 한국일보, 2018.03.26.


서울대 종교학과 배철현 교수가 쓴 문장을 읽고 세 사람이 떠올랐다.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과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그리고 짐 자무시의 영화 <패터슨>의 주인공 패터슨이다.


PYH2018041615600001300_P4.jpg 출처 = 연합뉴스, 「검찰, '외유성 출장' 김기식 전 금감원장 피의자 조사(종합)」, 2018-06-15


앞서 배 교수가 말한 '운명-개성-습관'에 따라 세 사람을 살펴보자. 먼저 김기식 전 원장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국회의원의 개성이었다. 국회의원의 개성은 피감기관의 돈으로 해외 출장을 다녀와도 된다는 관행(습관)에서 만들어졌다. 김 전 원장은 국회의원 시절 있었던 외유성 출장 논란에 관해 '관행'이란 이름으로 스스로를 보호했다. 그는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19대 국회까지는 관행적으로 이뤄진 부분"(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2018.04.10.)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김기식 전 원장을 금융개혁의 적임자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관행을 인정하는 개혁가란 없다. 개혁은 영화 <설국열차>에서 남궁민수(송강호)가 말했던 것처럼, 오래전부터 꽁꽁 얼어있어서 벽처럼 여겼던 문을 여는 것이다. 당연한 것을 의심하는 감독원장 자리에 김기식은 어울리지 않는다.


2018050412253167759_1.jpg 출처 = 머니투데이, 「경찰, '물컵갑질' 조현민 구속영장 신청(1보)」, 2018.05.04.


조현민 전 전무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재벌의 개성이었다. 재벌의 개성은 영화 <베테랑>의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처럼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될 거라는' 생각으로 타인에게 행했던 습관적 갑질에서 기인했다. 지난 12일 조현민 당시 대한항공 전무가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이른바 '물컵 갑질'했다는 사실을 언론이 보도했다.


조 전 전무에게 비슷한 피해를 당했다는 직원들의 폭로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이를 단순한 '그날의 해프닝'으로 보기 어렵다. 조 전 전무가 사건 이후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업무에 대한 열정에 집중하다보니' 생긴 일이라고 해명한 것 또한 자기합리화일 뿐이다.


이후 조 전 전무의 개성은 가족 전체의 개성임이 드러났다. 조 전 전무의 어머니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이 자택공사를 하던 작업자들에게 욕설을 한 음성 파일과 조씨 일가가 해외에서 개인 물품을 구입한 뒤 회사 물품인 것처럼 속여 들여오는 방식으로 관세와 운송료를 내지 않았다는 의혹이 보도된 것이다. 여기에 조현아 땅콩 회항 사건(2014년)과 조원태 뺑소니(2000년)· 노인 폭행 사건(2005년)까지 생각하면 또다시 개인의 잘못이라고 웃어 넘길 수 없다.


출처 : 이미지 = 네이버 영화 <패터슨>


그렇다면 패터슨은? 패터슨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시인의 개성이었다. 영화에서 버스 운전사로 일하는 그는 여느 직장인처럼 반복되는 평일을 산다. 하지만 성냥갑 하나와 버스 승객들의 대화에서 시상을 떠올리고 매일 글을 쓰는 습관은 그를 평범한 직장인이 아닌 "평일의 예술가"(김혜리 영화평론가)로 만들었다. 영화는 그의 일주일만 보여준다. 하지만 그가 매일 시를 쓰는 이상 그에게 똑같은 하루란 없으며, 아름다운 아마추어 시인의 삶 또한 계속될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패터슨>에 관해 쓴 자신의 평론 말미에 다음과 같이 썼다.
"중요한 것은 패터슨이 시인이라는 사실 자체보다 시인이라는 존재 형식이 그의 삶에 하나의 구성 요소로서 포함되어 있는 방식이고, 그 존재 형식들의 작동이 그의 삶을 그토록 가지런히 통제해나가면서 만드는, 어떤 아름다운 패턴이다."
(인간의 형식 ㅡ <패터슨>, 혹은 시인과 시작(詩作)에 대한 하나의 성찰,
「문학동네」2018 봄 94호)


중요한 것은 김기식과 조현민이 각각 공직자이고 재벌이라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공직자는 청렴하고 국익 우선 의무를 다할 때, 재벌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기업 윤리를 지키면서 이익을 창출할 때 현재할 수 있다. '됐으니까 끝'이라는 생각으로 관행대로 행동하고, '을'에게 포악질을 부리면 공직자와 재벌에 대한 국민의 냉소는 계속된다.


패터슨을 시인으로 만든 것은 시인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을 다르게 보려고 노력하고 매일 시를 썼다. 그가 시 좀 몇 편 썼다고 시 쓰기를 게을리하고 곧이곧대로 세상을 봤다면 그를 더이상 시인으로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무수한 관행과 습관으로부터 자신을 통제할 때 아름다운 패턴을 만들 수 있다.



패터슨처럼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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