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셰이프 오브 워터’를 말하다

-기예르모 델 토로 GV 형식으로

by Chaeyooe


한국 팬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영화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입니다. 이렇게 한국에서 제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The Shape of Water)’ 이야기를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시다시피 이 영화는 제게 올해 아카데미에서 감독상과 작품상을 안겨 주었습니다. 놀라운 일이죠. 저는 멕시코 출신 이민자이고 이 영화는 다름을 가진 존재들의 이야기니까요! 트럼프의 나라에서 저는 불가능한 명예를 얻었습니다.


여러분의 나라는 어떻습니까. 저는 존경하는 나의 친구 박찬욱, 봉준호 감독을 통해 한국 소식을 오래전부터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제게 한국은 전자제품을 잘 만들고 방탄소년단을 키운 나라가 아닙니다. 제가 그동안 듣고 공부한 한국은 글자 그대로 다양한 ‘셰이프 오브 워터’를 가진 나라였습니다.


가장 먼저 ‘바다’ 형태의 물이 떠오릅니다. 2014년이었던가요. 세월이라는 배가 어느 바다에서 침몰했었죠. 이전 정부의 무능한 대처로 골든타임을 놓치는 바람에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기사를 찾아보니 아직도 진상 조사 중이더군요. 빨리빨리 문화가 한국의 특징이 아니었습니까? 참사 이후 한국 국민이 집단적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글도 읽었습니다. 슬픔은 고여 있으면 우울이 됩니다. 그것은 삶을 파괴합니다. 진심으로 조속히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3644933_170.jpg 출처 : 이미지 = KBS 뉴스 <검찰, 조현민 구속영장 기각…이유는?' (180504)>


‘종이컵’에 담긴 액체도 생각납니다. 정확히 말하면 음료수겠네요. 몇 달 전 저는 뉴욕타임즈 아시아태평양 지역 섹션에 실린 조 에밀리 리 갑질 사건을 읽었습니다. 한국 이름은 조현민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매우 유익한 기사였습니다. 덕분에 저는 재벌(Cahebol)에 이어 갑질(gapgil)이라는 한국어 단어를 배웠으니까요. 당시 신문은 갑질을 봉건 영주처럼 행동하는 기업 임원이 부하나 하청업자를 학대하는 행위라고 설명했습니다.


부당한 행동이 하나의 단어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직원의 설움과 고통이 있었을까요. 저로서는 이 단어를 발음하는 것조차 고통스럽습니다.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고 이곳에 온 제가 갑자기 부끄러워집니다. 그래도 이 사건이 불씨가 되어 항공사 직원들이 총수 일가 퇴진 시위를 벌였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이 문제가 조금이나마 개선되었나요? 저는 더 이상 이런 비극적인 단어를 배우고 싶지 않습니다.


201230930_1280.jpg 출처 : 이미지 = SBS <[뉴스pick] 백두산 천지 물 뜨는 김정숙 여사 옷깃 잡아준 리설주 여사 '훈훈'> (180920)


너무 불행한 ‘물’ 이야기만 한 것 같아 행복했던 사례를 마지막으로 들겠습니다. 바로 얼마 전 있었던 정상회담에서 합쳐진 한국과 북한의 물입니다. 많은 분이 고개를 끄덕이시는 걸 보니 눈치채셨겠죠. 저는 한국의 퍼스트레이디가 한국의 물이 담긴 생수병에 북한 백두산 천지의 물을 담는 모습에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한 컷에서의 <셰이프 오브 워터>는 평화였습니다.


제 영화에는 비 오는 날 버스 창에 맺힌 두 개의 물방울이 마침내 하나로 합쳐지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물방울이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건 버스가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평화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과 북한이 계속해서 평화를 향해 걷다 보면 다음번에는 물이 아니라 두 나라가 하나가 될 거라고 믿습니다. 물론 트럼프의 나라도 힘써야겠죠. 그래서 5000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다는 이산가족들이 하루빨리 만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의 나라에 평화를 빕니다. 이제 질문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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