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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yooe Apr 03. 2019

친절해서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사바하>를 보고



출처 = imbc ,「[포토] '사바하' 이정재, 갑자기 울음 터진 장재현 감독 달래는 손길)」,  2019-02-13


그 눈물에는 이유가 있다

<사바하>가 끝난 후에 남은 잔상은 벽에 그려진 괴기한 사천왕도, 초점 없는 눈동자의 그것도 아니었다. 이 영화의 언론 배급 시사회 후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눈물을 쏟던 장재현 감독이었다. 몇 달 전 울고 있는 그가 찍힌 사진을 포털 사이트에서 스치듯 보았다.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도 우는 남자의 얼굴은 내 머릿속을 떠다녔고 질문하게 했다. 그는 왜 울었을까. <사바하>는 왜 감독을 울렸을까.      


장재현 감독에게 <사바하>의 연출 기간은 변하지 않는 고통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는 <검은 사제들>(2015)의 성공(개봉 7일 만에 손익분기점 돌파, 누적 관객 수는 약 544만 명이다.) 이후 소포모어 징크스에 시달렸고, <사바하>의 후반 작업이 길어지면서 배우들에게 완성본을 보여주지 못해 내내 죄책감 속에 살았다고 한다. (배우들은 앞서 언급한 언론 시사회에서 완성본을 처음 보았다) 그래서일까. ‘3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했다. 피를 토하고 뼈를 깎으며 만들었다’는 그의 간곡한 소회는 거짓처럼 들리지 않았다.     


출처 = 씨네21 <사바하>


걱정 말고 따라오셔 이해시켜 드릴게

그 시간을 통과해 탄생한 <사바하>는 친절했다. 요령껏 넘어가려고 했던 신흥종교가 너무나 수월히 이해되어 나 자신이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등장인물 덕분이었다. 일단 기자에 가까운 목사 박웅재(이정재)가 일타강사처럼 사천왕의 뼈대를 만들면, 그의 조력자인 고요셉(이다윗)이 똘똘한 학생처럼 관객이 궁금할 법한 부분들을 질문해 살을 붙였다. 여기에 어딘가 세속적인 느낌이 강하게 풍기는 해안 스님(진선규)의 자비로운 추가 해설까지 더해지면 나와 같은 무식자도 속속들이 파악 가능한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 초중반의 합심 설명은 장재현 감독이 관객을 배려하기 위해 내려준 동아줄처럼 보인다. 적어도 초장에 배경지식에 대한 어려움에 나가떨어지는 관객이 없도록 말이다. 이때 감독은 일장 연설이 되는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신마다 철저히 시간을 계산했다. 배우들에게 애드리브 없이 정확하고 간결한 대사 전달을 주문한 것 또한 그러한 연유에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사바하>


굳이 그렇게까지 친절할 필요는

그러나 이 방식은 후반부에서 영화의 발목을 잡는다. 친절함이 교리 설명에서 그치지 않고 미스터리에까지 손을 내뻗치기 때문이다. 영화는 끝나기 30분 전에 스스로 조각난 단서들을 짜 맞추기 시작한다. 김제석(정동환/유지태)이 경전에 심어 놓은 81줄의 숫자의 비밀은 고요셉이 직접 손과 입을 활용한 해설 과정을 거쳐 완벽하게 풀린다. 김제석이 숭상할 만한 초월자가 아닌 그저 죽음이 두려웠던 범법자였다는 사실은 경찰서에서 봉인 해제된다. 꼭 경찰서여야만 했던 이유가 있다. 그곳은 관객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증거들이 한데 모인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제 영화는 관객이 김제석의 정체를 확실히 알아차릴 수 있도록 작정하고 설명한다. 박웅재는 황 반장(정진영)에게 전화해 김제석이 정나한(박정민)을 포함한 네 명의 소년을 시켜 10년 넘게 영월 출신 99년생 여자아이들을 살인해왔다고 말한다. 이때 황 반장과 함께 그의 얘기를 듣고 있던 관객도 자연스럽게 진실을 알게 된다.     


출처 = 씨네21 <사바하>


이게 끝이 아니다. 영화는 실종 전단 속 여자아이들의 출생연도와 출생지가 모두 ‘99년생, 영월’ 임을 하나하나 클로즈업해 보여준다. 혹여나 정보를 놓쳤거나 이해 못 한 관객이 생길 가능성을 그렇게 줄이는 것이다. <사바하>는 이러한 반복 강조 방식을 택함으로써 친절한 오컬트 영화가 됐지만 동시에 긴장감을 잃은 미스터리 영화가 되었다. 곳곳에 던져진 조그만 미스터리들을 수거하는 재미를 영화에게 빼앗긴 관객은 후반부 클라이맥스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사바하>


다시 감독에게로 돌아가 보자. 그의 많은 인터뷰 기사에서 가장 강하게 느껴졌던 건 간절함이었다. 정말 <사바하>가 완벽한 영화가 되기를, 관객에게 어렵지 않은 영화가 되기를 바라는 그의 마음이 텍스트를 뚫고 내게 전달됐다. 절반의 성취를 이룬 감독을 낙관하는 건 그래서다. 세 번째 작품의 기자 간담회에선 밝게 웃는 장재현 감독을 보고 싶다.       




[chaeyooe_cinema]

사바하 SVAHA : THE SIXTH FINGER

감독 장재현



지나치게 설명적인 영화인가 아니면 반복 강조가 필요했던 영화인가.
개연성을 놓친 영화인가 아니면 개연성은 사소한 영화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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