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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yooe Apr 24. 2019

알아야 하는 부통령도 있다. 딕 체니가 그렇다

<바이스>를 보고



<바이스>에서 갑자기 탑처럼 쌓인 찻잔이나 펄떡이는 심장 컷이 삽입되듯 관람 동안 내 머릿속에도 어떤 이미지가 섬광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Detective’s Crazy Wall. ‘형사의 정신 나간 벽’쯤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이것은 유력 용의자와 그의 관계인들의 사진이 붙어있고, 사방팔방으로 줄들이 그어져 있는 경찰서 화이트보드를 생각하면 쉽다.      


출처 = IMDb <Vice>


나는 이 영화가 132분 동안 쏟아내는 방대한 정보를 필기하면서 이 정신 나간 벽들에 포위돼 반쯤 정신이 나가 버린 애덤 매케이 감독을 떠올렸다. 안 그래도 그는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제작 과정 당시 자신의 상태에 관해 설명했는데,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다. 20대로 돌아간 것처럼(그는 올해 우리 나이로 52세다) 담배와 정크 푸드로 스트레스를 푸는 자신을 보다 못한 전담 트레이너가 괜찮으냐고 물었을 때 그는 답했다고 한다.      


“그럼, 그럼. 난 그저 몸 상태가 좋지 않고, 지쳤으며, 여전히 담배를 피울 뿐이야.”
(Jonah Weiner, Why the Director of ‘Anchorman’ Decided to Take On Dick Cheney, 2018.11.29.)      


출처 = 씨네21 <바이스>


한 사람을 궁금하게 만드는 감독의 힘

<바이스>는 <빅쇼트>(2015)에 이어 매케이가 겪은 리서치의 고통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영화다. 2008년 금융 위기 사태를 팠던 감독의 이번 조사 대상은 사람, 딕 체니다. 그는 조지 W. 부시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있었던 2001년부터 2009년까지 부통령을 지낸 자다. 영화는 딕 체니가 술 먹고 싸움질이나 하던 20대 초반 미스터 예일 시절부터 공화당 내부의 가장 강력한 신보수주의자(네오콘)의 좌장이 되기까지 약 50년간의 인생사를 훑는다.      


문제는 내가 이 대단한 양반을 몰랐다는 점이다. 관심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두 시간 이상 극장 좌석에 앉아 듣게 한 건 당연 매케이다. 그는 ‘원스 어 폰 어 타임’하고 시작하는 고루한 전기가 아니라 다양한 애니메이션 효과를 준 프레젠테이션 형식을 써 영화에 탄력과 재미를 불어넣는다.      


출처 = IMDb <Vice>


그중 가장 눈에 띄는 효과는 영화 내에서 화자이자 프레젠터로 활약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제시 플레몬스)’다. 그는 축구 경기를 볼 때는 누구나 감독이 되듯 관객에게 직접 딕 체니의 삶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데 정작 영화는 그가 누구인지, 딕 체니와 어떻게 관계된 사람인지를 결말에 이르러서야 밝힌다. 관객은 이 남자의 베일을 벗기기 위해서라도 방대한 이야기가 집중하게 된다.      


인물 및 용어 정리는 기대만큼 친절하고 효과적이다. 보충 설명이 필요한 순간마다 핵심 정보가 담긴 짧은 컷들이 때마침 나타나 머리 아픈 관객을 돕는다. 덕분에 도널드 럼즈펠드(스티브 카렐)를 포함한 백악관 사람들, 단일 행정부론과 형평의 원칙 같은 용어들 모두 보는 동안에 그럭저럭 소화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영화는 극장을 나온 관객이 자발적으로 자유와 법치 그리고 최근 20년간의 미국에 대해 공부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바이스>는 부시 행정부에 관한 결론이 아니라 현 트럼프 행정부에 관한 서론이기도 하다.       


출처 = IMDb <Vice>


그가 전 미국 부통령을 알리는 이유  

매케이가 딕 체니 인생에서 따옴표 친 구간은 2001년 9·11 테러 직후 몇 년이다. 검은 연기를 내뿜고 있는 세계무역센터가 실시간으로 보도되고, 혼란한 관료들로 가득 찬 룸 안에서 명령을 내리는 딕 체니의 모습을 초반과 중후반부에 똑같이 배치한 건 그 때문이다. 그러나 감독은 당시 딕 체니를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시작부터 이 영화는 실화에 ‘가까운’ 이야기라고 못 박았던 그다.      


감독은 자신의 해석을 적극적으로 덧입혀 딕 체니를 소개한다. 조국의 위기가 ‘딕 체니에겐 기회’였다는 초반 내레이션으로 관객에게 악(Vice)의 조짐을 슬쩍 드러낸다. 그리고 바로 관객을 청년 딕 체니가 사는 1963년 와이오밍주에 떨어뜨린다. 딕 체니가 공화당 하원의원과 석유 대기업 핼리버턴의 사장, 아버지 부시 시절 국방부 장관을 거쳐 마침내 아들 부시 행정부의 부통령이 되는 과정을 모두 지켜본 관객이 다시 같은 신과 마주했을 때, 그들은 느낀다. ‘행정 악’의 우두머리, 딕 체니를 말이다.      


출처 = 씨네21 <바이스>


관객을 자신의 편으로 만든 매케이는 이후 본격적으로 고발한다. ‘팀 딕 체니’가 이라크를 악의 나라로 설정한 뒤 공포 정치를 통해 자행한 일과 전장에서 발생한 무고한 죽음을 실제 자료 화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여준다. 사회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의 저서 「루시퍼 이펙트」(2007)에는 그들의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행동이 명쾌하게 요약되어 있다.      


법률 자문단에 의존해 이라크에 대한 선제공격을 벌일 수 있는 합법적인 토대를 만들었고, 고문의 정의를 새로 내렸으며, 새로운 교전 수칙을 만들었고, 소위 애국법을 통해 시민의 자유를 제약했으며, 불법 도청과 감청과 감시를 허락했다.      


그러나 딕 체니는 영화 라스트 신에 해당하는 정계 은퇴 이후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당신들의 가족을 지켜낸 걸 사과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2019년. 우리 나이로 올해 79세인 딕 체니는 심장 이식 수술 끝에 여전히 살아있으며, 지난 2월 세계정상회의(World Summit) 참석차 우리나라를 방문해 ‘평화’에 대해 연설했다.


출처 = IMDb <Vice>


발표가 끝나면 흔히들 하는 말이 있다. ‘준비한 것에 반도 못했다.’ 애덤 매케이의 경우는 어떨까. 다시 한번 ‘형사의 정신 나간 벽’과 담배와 햄버거를 든 채 죽어가는 감독을 떠올려 본다. 미안해진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그가 무엇에 꽂히길 기다린다. 나는 여전히 모르는 사람과 용어가 너무 많다.       

                



[chaeyooe_cinema]     

바이스 VICE

감독 애덤 매케이 Adam McKay



웃으면서 화내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매케이가 뜯어본 ‘가장 조용한 권력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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