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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yooe May 06. 2019

정확히 토니 스타크가 좋았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보고


※ 이제껏 스포일러를 피한 귀한 당신께 알립니다. 이 글은 스포일러로 시작합니다.     


또 마블 영화를 보며 울었다. <캡틴 마블>(2019)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냅킨으로 눈가를 찍으며 속으로 나는 이게 무슨 추탠가 싶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머지않아 사라졌다.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상영간 내 훌쩍임 사운드가 전 방위로 퍼지는 것이었다. 다행이었다. (만세! 나만 우는 게 아니다!) 그리고 마침내 토니 스타크의 장례식 신이 나오자 내부는 말 그대로 침통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쿠키 영상 없이 영화가 끝나고 관객 모두는 추모객처럼 조용히 자리를 떴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커다란 스크린 밑에는 보이지 않는 국화꽃이 하나하나 쌓이고 있었다.       


출처 = IMDb <Iron Man>


나의 최애 히어로는 아이언맨이 아닌 토니 스타크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본 날 홀린 듯 <아이언맨>(2008)을 다시 봤다. 무슨 다 큰 자식의 먼지 쌓인 옛날 앨범을 찾는 부모처럼 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토니 스타크가 죽었다) 정확히 11년 전 영화 속의 그는 기억과 달리 확실한 중년 남자의 얼굴을 하고 있어 당황스러웠다. (하긴 이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이미 우리 나이로 마흔넷이었다) 그래도 확실히 지금보다는 팔팔해 보였다. (하긴 이때까지 토니 스타크는 “천재, 억만장자, 플레이보이, 박애주의자”일뿐이었다)          


이미 들통난 듯하지만 마블 영화에서 내가 가장 아끼는 캐릭터는 토니 스타크다. 신도 있고, 아메리카의 엉덩이도 있고, 조신한 과학자도 있고, 그냥 남자도 있고, 심지어 스칼릿 조핸슨도 있는데! 내 선택은 언제나 그였다. (라고 말하기엔 브리 라슨에게 상당히 흔들렸음을 고백한다)     

 

출처 = IMDb <Iron Man Three>


왜인지 이유를 말하기 전에 명확하게 하고 갈 부분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대상은 아이언맨이 아닌 토니 스타크다. 그놈이 그놈인데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내겐 중요한 문제다. 나는 아이언맨, 그러니까 토니 스타크가 슈트를 입는 순간 심드렁해진다.          


나는 아이언맨이 등장하는 마블 영화에서 아이언맨의 성능이 얼마나 업그레이드됐는지 관심 없다. 대형 액션 세트 피스에서 아이언맨이 어떤 액션을 보여줄지도 궁금하지 않다. 넓고 차가운 지하 랩실에서 홀로 뚝딱뚝딱하거나 게임 오버 후 마스크만 오픈해 피곤에 절은 얼굴을 빼꼼히 보여주는 토니 스타크를 볼 때만 나의 심장 박동은 빨라진다.     


출처 = IMDb <Iron Man Three>


그 눈과 그 상처에 어쩔 수 없이 나는

항시 촉촉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눈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비 맞은 생쥐 꼴’로 보이게끔 하는 눈이랄까) 그것은 재능과 재력을 모두 갖춘 미국 백인 성인 남성을 어쩐지 케어가 절실해 보이는 존재처럼 포장한다. 그 가련한 두 눈동자에 매번 속절없이 넘어가는 나로서는 그걸 가려버리는 변신이 달갑지 않은 것이다.                 

    

나는 토니 스타크에게 정들었다. 유달리 얼굴을 자주 본 탓이다. 그처럼 클로즈업이 많은 슈퍼히어로도 없을 것이다. 액션이 본격화되면 망치를 휘두르는 토르와 활시위를 당기는 호크아이, 절약 없이 온몸을 움직이는 블랙 위도우와 캡틴 아메리카 그리고 어디 빌딩 벽에 매달려있는 헐크의 풀숏이 이어지는 와중에 자기만의 방에 입장한 토니 스타크의 정면 얼굴이 스크린에 가득 찬다. 행동 실험자의 헬멧 위에 단 셀프 카메라처럼 그렇게 좁고 가까운 거리에서 나는 전략을 짜고 농담을 던지고 때때로 유언 같은 혼잣말을 흘리는 그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다.      


출처 = IMDb <Iron Man Three>


상처투성이인 토니 스타크의 겉모습에 연민을 느낀다. 토니 스타크는 자주, 그것도 크게 다친다. 멤버들과 한자리에 모여 있을 때 그의 부상은 확연하게 드러난다. 깨끗하고 하얀 얼굴을 가진 캡틴과 토르 사이에서 눈두덩이에 멍이 들고 얼굴 군데군데 긁힌 자국이 있는 토니 스타크의 모습은 시리즈 동안 쉽게 발견된다.      


공중전이 가능해서다. 그는 까마득한 하늘이나 고층 빌딩 머리에서 추락해 바닷속으로 덤불 속으로 내다 꽂히기 일쑤다. 바이오 하이브리드 로봇만의 번드르르함은 적들이 그를 향해 마구잡이로 탄을 발사하거나 팔다리 중 아무 데나 잡아다가 그대로 던져 버리게 하는 빌미를 준다. (물론 이 잘난 미국인인 그들에게 치즈버거같이 자극적이고 가벼운 소리를 해대 화를 자초하기도 한다)      


출처 = IMDb <Avengers: Infinity War>


마음속에 묻은 나의 영웅들

깡통 쓴 인간일 뿐인 토니 스타크는 말 그대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맞는다. 그럼에도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 믿는 이 행동가는 피딱지가 굳은 얼굴로 적들에게 돌진한다. 더는 그럴 티끌의 힘도 남지 않은 엔드 게임의 순간에도 그는 한쪽 팔을 든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아는 그 한 마디를 끝으로 토니 스타크는 스스로에게 무모한 상처 입히기를 멈춘다.      


나는 일전에 내가 울며불며 보냈던 그들, 소중한 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던 로건(<로건>, 2017)과 시저(<혹성탈출: 종의 전쟁>, 2017) 옆에 그를 조용히 눕힌다. 이제 토니 스타크를 기억할 쪽은 나 어쩌면 우리다. 지난 11년이 모래알처럼 사라지지 않도록 말이다.      


출처 = IMDb <Iron Man Three>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본 지 2주가 다 되어간다. 이제야 토니 스타크에 관해 말할 마음이 되었다. 여전히 그는 불쑥 나를 찾아와 눈물이 핑 돌게 하지만 그렇다고 질질 짜며 그를 보내주고 싶지는 않다. 토니 스타크가 <아이언맨 3>(2013)에서 자신의 슈트들을 전부 자폭시키는 쿨한 피날레를 보여주었듯 나도 그러고 싶다.


잘 가라! (훌쩍) 잘 가요. 토니 스타크.     



출처 = Amazon.com


(다 아는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앨범을 낸 가수이기도 하다. 앨범 제목은 <The Futurist>이며, 2004년에 발매되었다. 정규 앨범이라 무려 10곡이나 수록되었다. 일상생활 중에 갑자기 ‘I AM IRON MAN’하는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는 이 앨범을 찾아 들었다. 회복하는 데에 적잖은 도움이 됐다. 아직 앓는 중이라면 권한다.                







[chaeyooe_cinema]     

어벤져스: 엔드게임 Avengers: Endgame

감독 앤서니 루소, 조 루소 Anthony Russo, Joe Russo



그리고 이제 지난 11년이 모래알처럼 사라지지 않도록 기억할 쪽은 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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