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캅스>를 보고
캐릭터가 아까운 작법
<걸캅스>의 여자들은 좀 더 근사한 서사에 올라탔어야 했다. 전직 형사 박미영(라미란)과 현직 형사 조지혜(이성경)는 한국 상업 영화 최초 ‘여성 형사 콤비’라는 진일보한 수식어를 달았지만 정작 그들이 걷는 ‘스토리텔링 레드카펫’은 구태의연하다.
충분히 알려졌다. 능력과 열정은 있지만 주류에서 멀어진 꼴통 형사가 중요하지만 등한시되는 사건에 무모하게 뛰어들면서 정의사회 구현과 일선 복귀를 동시에 해낸다는 이야기. 이것을 뼈대로 하는 영화는 대체로 제복 차림을 한 주인공이 표창장을 받은 뒤 객석을 향해 거수경례하는 라스트 신에 도달하기 위해 개연성은 접어둔다.
주인공은 컴퓨터 바이러스처럼 어디든 뚫고 들어가며, 구원자는 연속극 속 택시처럼 딱딱 맞춰 등장한다. 듬성듬성한 서사를 메꾸기 위한 도구로 쓰이는 건 역시나 웃음이다. 영화는 화장실 유머와 욕설 그리고 슬랩스틱을 서울 지하철 1호선 노선처럼 짧고 연속적으로 배치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웃음은 가벼워 지속력이 떨어진다. 보고 나면 남는 게 없는 것 같은 찝찝함은 거기에서 온다. 이 모든 사항을 동그라미 치는 <걸캅스>의 서사는 그래서 무기력하다.
집 밖의 여자들
그러나 나는 이제껏 떠든 게 겸연쩍을 정도로 <걸캅스>가 흥미로웠다. 한국영화로부터 ‘여성 캐릭터’라는 원죄를 부여받지 않은 드물고 귀한 두 여자, 박미영과 조지혜 때문이었다. 영화는 아내이자 엄마인 박미영과 젊은 여자 조지혜가 직장에서 일만 하게 둔다. 바쁜 여자 둘이서 집안일을 나눠서 하는 촌극이 벌어지지 않도록 신경 쓴다.
두 여자는 공간적인 차원에서 여성에게 안을, 남성에게 밖을 할당한다는 성리학적 세계관이 우습다는 듯 줄곧 집 밖에 있다. 가부장 주의에 내재한 ‘집구석에 처박혀 있지 않고, 싸돌아다니는 여자에 대한 혐오 담론(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이 이 영화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일해서 미안한 아내도 엄마도 아닌 여자 박미영
레슬링 선수 출신 형사로서 사건 현장을 휘어잡던 박미영은 많은 여성이 그러하듯 결혼과 임신 그리고 출산을 겪은 뒤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직업을 구한다. 민원봉사실 주무관이란 새로운 직함을 단 현재의 박미영은 사법고시가 폐지된다는 소식을 남 일처럼 전하는 장수 고시생 남편 조지철(윤상현)과 시누이이자 미래의 수사 파트너 조지혜 그리고 유치원생 아들 찬웅(김준)과 한 지붕 생활을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걸캅스>는 박미영이라는 개인을 아내나 엄마로 추상화하지 않는다. ‘차이가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때, 공통된 것 앞에서 차이가 부차화될 때 사회는 동질화된다(「나와 타자들」, 2019)’는 철학자 이졸데 카림의 말에 힌트를 얻은 듯 영화는 이 대단한 여자만의 특징을 무시하지 않고 끝까지 ‘일하는 박미영’을 지킨다.
현재의 박미영을 소개하는 첫 시퀀스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시퀀스에서 그는 민원실로 출근하기 위해 걷고 있다. 분주한 밥상 차리기와 아이와의 전쟁으로 시작하는 집안 풍경을 첫 시퀀스로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영화는 박미영이 형사에서 주무관이 된 것이지 형사에서 워킹맘이 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전설의 박미영은 후배 경찰들로부터 깍듯한 아침 인사를 받는 동시에 집에 있는 조지철에게 전화로 전날과 오늘 아침 상황을 보고 받는다. 이때 박미영은 조지철에게 남편과 아들을 챙기지 못했다며 용서를 구하지도 쩔쩔매지도 않는다. ‘무엇이든 간에 미안하다고 말하는 건 여자들의 망할 버릇이라고, 그렇게 사과할 필요 없다고’ 말하던 <부탁 하나만 들어줘>(2018)의 에밀리(블레이크 라이블리)가 친구 하자고 마티니 한 잔 건넬 법한 장면이다.
박미영은 가족을 염려하지만 가족에게 헌신하지 않는다. 그래서 <걸캅스>에는 집에서 청소와 빨래를 하거나 공부하는 남편에게 과일 접시를 내미는 그의 모습이 담기지 않았다. 뾰족한 시선을 받을 수 있는 아들 양육 문제도 거뜬히 넘어간다. 찬웅이 엄마의 지극정성 없이도 어른의 보호를 받으며 잘 자라고 있음이 극 진행 동안 확인된다.
조지혜는 조지혜다
<걸캅스>는 젊은 여자 조지혜를 열정 넘치는 형사 조지혜로만 그린다. 이는 드물다. 드라마가 있는 영상 콘텐츠에서 젊은 여자는 ‘연애 중’이 아니면 불완전한 존재로 취급받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솔로’라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끼며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젊은 여자 캐릭터를 미세먼지 주의보만큼이나 숱하게 보아온 건 분명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조지혜와 그 주변의 젊은 남자들을 로맨스로 엮지 않는 <걸캅스>는 여성 안심 구역 콘텐츠다. 극 중 조지혜는 그들 중 누구에게도 연애 감정을 느끼지 않으며 그들 역시 마찬가지다. 조지혜에게 자신이 속한 강력3팀의 막내 형사(조병규)는 동료일 뿐이고, 신종 마약인 매직 퍼퓸을 사용해 여성을 강간하고 촬영한 뒤 그것을 유통한 우준(위하준) 또한 반드시 잡아야 할 강력 범죄자일 뿐이다. 애초에 조지혜의 연애사에 관해 구구절절하지 않았다는 점 또한 개운하다.
<걸캅스>는 박미영에게 그랬듯 조지혜에게도 특정 역할을 강요하지 않는다. 바쁜 올케언니를 대신해 오빠와 조카 먹일 찌개를 끓이고 청소기를 돌리는 시누이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조지혜 형사가 집안 남자들 걱정하기에 집 밖은 너무 위험하다.
이제는 마리사 토메이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알려진 25년 전 영화 <온리 유>(1994)에는 그들의 20대 시절 외모만큼이나 인상적인 대사가 있다. 페이스(마리사 토메이)의 집에 놀러 온 케이트(보니 헌트)는 남편으로부터 빨리 와서 먹을 것을 준비하라는 전화를 받자 토해내듯 외친다.
“나는 메뉴판이 아니에요! 나는 여자예요!”
<걸캅스>는 형사 박미영과 조지혜가 메뉴판이 되지 않도록 그들을 끝까지 집안으로 돌려보내지 않는다. 누구의 무엇도 아닌 그저 집 밖에서 일만 하는 여자들. 그 모습이 좋아서 나는 <걸캅스 2>를 희망한다.
[chaeyooe_cinema]
걸캅스 Miss & Mrs. Cops
감독 정다원
실컷 보는 일하는 여자들. 어디서 본 듯한 무기력한 에피소드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