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트, 지금 와 줘서 다행이야

<콜레트>를 보고

by Chaeyooe



여자들은 더는 가만있지 않는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영화 <콜레트>는 특출난 구석이 없는 평작이지만 시대가 이 영화를 필요로 한다. 지금은 행동하는 여성들의 태동기이기 때문이다. 2017년 할리우드 여성 배우들이 영화 제작의 권력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행과 성폭력 사실을 폭로하면서 미투는 ‘운동’이 되었다. 다음 해 1월 할리우드의 여성 노동자들의 주도로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한 단체 ‘타임즈 업(TIME’S UP)‘이 결성되었다.


끝이 아니다. 두 달 뒤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프란시스 맥도먼드는 ‘인클루전 라이더(inclusion rider)-영화 제작 과정에 유색 인종과 성적 소수자와 장애인 그리고 여성을 배제하지 말고 포함해야 한다는 계약 조항’이라는 용어를 또박또박 말하는 것으로 수상 소감을 마쳤다.


변화의 바람이 미국에서만 분 건 아니었다. 동 시간대에 한국에서도 여성들이 움직였다. 작년 1월 서지현 검사의 폭로는 국내 각계의 미투 운동의 불씨가 되었다. 바로 두 달 뒤 3월 김지은 충남도 정무비서의 그것으로 대한민국은 자격 없는 대선 후보를 가질 뻔한 상황을 일찌감치 막을 수 있었다. 올해 3월에는 여성영화인모임이 운영하는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이 개소 1주년을 맞았다. 이 모든 시간이 켜켜이 쌓인 이제야말로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가 소개되기에 적기다.



출처 = IMDb <Colette>


앞날의 예견하는 오프닝 시퀀스

전쟁 없는 안정의 시기(벨 에포크)였던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태어난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Sidonie-Gabrielle Colette)는 ‘다직업 보유자’였다. 문화예술 전반에 재능이 있었던 그는 일생 소설과 서간집을 꾸준히 펴낸 작가였고, 활발히 활동한 뮤직홀 댄서이자 팬터마임 배우였다. 워시 웨스트모어랜드 감독은 약 80년간의 다채로운 개인의 역사에서 대략 14·5년을 발라냈다. 이는 곧 콜레트의 20대 초반부터 30대 중반까지의 기간인데 그의 결혼 생활과 이혼 직후까지의 그것과 같다.


감독의 취사선택한 시간에서 이미 드러나듯 <콜레트>는 여성의 해방 서사를 골자로 한다. 콜레트의 뒷모습을 담은 오프닝과 엔딩 시퀀스가 이미지로써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먼저 오프닝 시퀀스를 보자. 1892년 열아홉의 콜레트(키라 나이틀리)가 카메라를 등진 채 침대에서 모로 누워 자고 있다. 그를 깨운 건 엄마 시도(피오나 쇼)지만 그를 결국 자리에서 일으키는 건 열네 살 연상의 연인 윌리(도미닉 웨스트)가 곧 집에 도착한다는 소식이다.


누군가의 방문으로 영화를 시작하는 건 분명 평범한 배치지만 이후 전개를 고려하면 이 시퀀스는 의미심장하다. 일 년 후 클로딘과 윌리의 결혼 생활이 이것의 반복과도 같기 때문이다. 클로딘의 행동은 윌리에 의해 결정된다. 그는 사교계 유명 인사의 아내로서 지루한 살롱에 동석하고, 남편의 유령작가가 되어 임금도 주지 않는 글 공장에서 매일 4시간씩 꼼짝 않고 잘 팔릴 만한 소설을 생산한다.


출처 = 씨네21 <콜레트>


혼자이기에 완전한 엔딩 시퀀스

엔딩 시퀀스로 넘어가 보자. 이때의 콜레트는 하얀 잠옷을 입고 머리를 곱게 땋은 시골 아가씨가 아니다. 부양자이자 대표자였던 윌리에게 종속된 존재도 더는 아니다. 풍성히 컬을 넣은 단발에 스모키 화장을 짙게 한 서른 중반의 콜레트에게서 현대 샤넬의 향수 모델인 키라 나이틀리의 모습이 선명하다. 고혹적이고 아름답다. 그런 그가 공연을 앞두고 홀로 뚜벅뚜벅 백스테이지를 걷는다. 누구의 지시나 도움 따위 그는 받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콜레트가 무대에 올라선다. 관객들은 열렬히 콜레트의 이름을 연호한다. 그들을 향해 걷던 그가 멈춰 서더니 공작새가 날개를 펴듯 두 손을 아래로 쫙 펼친다. 그 뒷모습을 카메라가 비추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그 순간은 이혼을 요구하는 콜레트에게 “당신은 내 옆에 있을 때 가장 빛나. 당신도 알잖아.”라고 말하던 윌리의 애원이 같잖을 만큼 찬란하다.


출처 = IMDb <Colette>


성긴 시나리오가 해방의 카타르시스를 최대로 끌어올리지는 못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갈망했던 여성 관객에게 <콜레트>는 충분히 가닿을 만한 영화다. 특히 콜레트뿐만 아니라 다른 여성 인물들이 결혼과 자유에 관해 말하는 대사는 화룡점정이다. 그것은 금지와 검열과 억압의 세계에 사는 여성들에게 쪽지에 써서 전달해주고 싶을 만큼 저릿저릿하다.


마지막으로 <콜레트>로부터 받은 에너지를 좋은 문장을 소개하는 데에 써야겠다. 콜레트의 대모 격으로 느껴지는 16세기 이탈리아 여성 작가 모데라타 폰테(MODERATA FONTE)의 저서 「여성의 진가」(2018)에는 이런 당당한 문장이 있다.


이 골칫덩어리 남자들을 그냥 우리 삶에서 쫓아내고, 그들의 비난과 조롱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인가요?
그들 없이 살 수는 없는 걸까요?
그들의 도움 없이도 생계를 꾸려 가고 우리 자신의 일을 할 수는 없는 걸까요?
자, 다들 정신 차리고, 오랫동안 그들이 빼앗아 온 우리의 자유와 명예와 품위를 되찾읍시다.




[chaeyooe_cinema]

콜레트 COLLETTE

감독 워시 웨스트모어랜드 Wash Westmoreland



시대의 부름을 받고 스크린으로 뛰어들어온 나, 콜레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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