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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yooe Jun 20. 2019

‘맨인블랙: 인터내셔널’ 설명 들으려고 본 게 아닌데요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을 보고



출처 = 네이버 영화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


말만 많은 액션 영화는 곤란하다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을 보고 퍼뜩 떠오른 사람들은 세 명의 감독, 우디 앨런과 리처드 링클레이터 그리고 홍상수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의 영화 속에서 상징처럼 등장하는 ‘대화하며 걷는 남녀 주인공’이었다.  

    

<맨해튼 살인사건>(1993)의 래리(우디 앨런)와 캐롤(다이앤 키튼)처럼, ‘비포’ 시리즈의 제시(이선 호크)와 셀린느(줄리 델피)처럼, <우리 선희>(2013)의 선희(정유미)와 재학(정재영)처럼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의 에이전트 H(크리스 헴스워스)와 에이전트 M(테사 톰슨)도 끊임없이 말한다. 그래서 당황했다. 이 영화는 무려 SF 액션 블록버스터이기 때문이다. 포스터에는 ‘이번에 우주적 스케일로 돌아온다!’라고 박고, ‘인터내셔널’이라는 부제까지 달았기 때문이다.     


반전처럼 이 액션 영화는 지구를 위협하는 외계 생명체도, 내부 스파이도, 강력한 신무기도, 끈끈한 동료애도 모두 말로 설명한다. 이미지를 버린 대가는 혹독하다. 서사 진행은 번번이 중단되고 영화의 리듬감은 떨어진다. 볼거리를 제공할 귀엽고 신기한 것들은 곁에 두고도 활용하지 않는다. 그것 대신 카메라가 잡는 건 실없는 농담이나 연애에 관한 장광설을 늘어놓는 인간들의 얼굴이다.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모로코 마라케시, 이탈리아 이스키아섬까지 장소 전환 카드를 써도 스펙터클이 형성되지 않는 이유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


그들과 그들이 사는 세상이 궁금하다

액션 첩보 영화에는 특수 조직의 내부와 특이 업종 종사자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있다. <007> 시리즈의 MI6,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IMF, <본> 시리즈의 CIA는 “그냥 회사 다녀요”의 그 회사와 다르고, 제임스 본드와 에단 헌트 그리고 제이슨 본처럼 일하는 직장인을 길에서라도 마주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장르의 영화를 볼 때마다 사무실은 얼마나 획기적으로 꾸며놨는지, 사용하는 시스템과 장비는 얼마나 최첨단인지 유심히 살핀다. 내적 감탄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눈앞의 가상 조직과 인물이 현실적으로 느껴질수록 영화에 대한 만족감도 높아진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


오리지널과 달랐어야 했다

그러나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의 MIB와 에이전트 콤비에게는 다름의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이 조직만의 특색은 무엇인지, 구성원 각각은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영화가 확실하게 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일하게도 영화는 오리지널 <맨 인 블랙> 시리즈에 자신의 정체성을 맡기는 전략을 편다. 7년 만에 찾아온 스핀오프 영화임에도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가 고루한 이유다.


초장에 주어진 기회라도 잡았어야 했다. 몰리 라이트(테사 톰슨)가 MIB의 신입 요원 ‘에이전트 M’으로 선발되는 과정이 바로 그 기회였다. 캐릭터는 돋보일 수 있었다. 몰리는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를 읽던 꼬마 시절, 우연히 MIB 요원을 목격한 뒤부터 MIB 요원만을 꿈꿔온 준비된 인재다. 그런 그가 20년 만에 신출귀몰한 MIB 본부를 발견해 국장 에이전트 O(에마 톰슨)와 대면하지만 그에게 매력 발산 타임은 주어지지 않는다. 몰리의 능력은 몇 마디의 대사로 정리된다. 국장은 반려동물도 애인도 없으며, 오직 우주의 섭리만을 알고 싶다는 그의 포부를 듣고 단박에 채용한다.


MIB는 참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과정은 게으르게 진행된다. 카메라는 총을 들어보고 블랙 앤 화이트 슈트를 입어보고 선글라스를 써보는 몰리를 느긋하게 담는다. 이 장면에서 제공되는 정보는 이미 오리지널 시리즈를 통해 널리 알려진 그것과 별다를 것이 없다. 테스트는 어떠한 좌충우돌의 재미도 시각적 개성도 없이 대화 몇 마디와 기존 정보의 재확인으로 마무리된다. 몰리를 포함한 주요 등장인물들과 MIB는 영화에서 끝까지 모호한 상태로 남는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


「트립 투 이탈리아」(2014)에서 중년의 스티브 쿠건은 셀피 찍기에 애쓰는 또래의 여행 동반자 롭 브라이든에게 못마땅한 눈초리로 묻는다. "사진을 왜 찍어?" 그러자 브라이든은 청년 IT 사업가처럼 대답한다. "사진 한 장이 글자 천 자거든."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은 사진 한 장 대신 글자 천 자를 선택한다. 보여주지 않고 말만 늘어놓는 영화를 앞에 두고 나는 허벅지 꼬집기라는 고전적인 방법을 써가며 졸지 않으려 애썼다. 그리고 마침내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내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물론 그것은 감동의 눈물이 아니었다.          





[chaeyooe_cinema]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 MEN IN BLACK: INTERNATIONAL

감독 F. 게리 그레이 F. Gary Gray



귀엽고 신기한 것들을 쌓아만 두고 알맹이 없는 말만 늘어놓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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