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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yooe Jul 10. 2019

슈퍼히어로지만 열여섯인데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을 보고



계획이 있는 피터와 계획이 없는 스파이더맨

미국 미드타운 과학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열여섯 살 피터 벤자민 파커(톰 홀랜드)가 극 중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그래서 너의 계획은 무엇이니?”이다. 피터는 <기생충>(2019)의 기우(최우식) 못 지 않게 계획이 다 있다. 여름 방학맞이 단체 여행을 기회 삼아 짝사랑 상대 MJ(젠다야 콜먼)에게 파리 에펠탑에서 고백하는 것이 바로 그 계획이다.     


그러나 질문 당사자인 닉 퓨리(사무엘 L. 잭슨)는 피터에게 하이틴 로맨스 무비의 주인공으로서의 대답을 기대한 게 아니다. 그가 피터에게 듣고 싶은 말은 아이언맨에게 후계자 지명을 받은 스파이더맨의 거취다. 그걸 알아야 만 타노스와의 2차 대전 이후 공백이 생긴 어벤져스의 재조직화를 속히 단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닉 퓨리에게 어벤져스란 우리가 그토록 하기 싫어하는 ‘일’이다.     


그러나 피터는 주저한다. 급격한 서열 수식 상승이 남들에게는 기쁨일지 몰라도 그에게는 괴로움일 뿐이다. 자신을 ‘다음 토니 스타크’의 최적임자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부분에 관한 한 피터는 <기생충>의 기택(송강호)처럼 무계획이 계획이다.      


출처 = IMDb <Spider-Man: Far From Home>


JUST A BOY

그럴 만도 하다. 스파이더맨은 슈퍼히어로로서의 계획 같은 걸 세워야 할 위치에 근처라도 가본 적이 없다. 이제껏 팀 내에서 깍두기 역할만 해온 그다. 그런 거대하고 모호한 일은 능력 있고 경험 많은 선배 영웅들의 몫이었다. 리더가 되기에는 추구하는 영웅상도 소박하다. 스파이더맨은 대중에게 괴물급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다정한 이웃으로 불리길 원한다.      


어리기 때문이다. 피터는 보호자를 필요로 하고, 가족과 친구와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십 대다. 더군다나 그는 막 나가는 일탈형도 조숙한 애어른형도 아니다. 그런 그에게는 위험한 일을 하는 걸 알게 된 숙모가 자기를 죽이려는 상황과 자신을 스파이더맨으로 의심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지구 멸망보다 더 두렵다. 자신의 보호자들(메리 숙모, 숙부가 될지도 모르는 해피, 해링턴 선생님)에게 자신의 안전과 건강을 착실히 보고함으로써 미성년자의 의무를 다하려는 피터의 모습은 너무 순진해 보여 웃음이 난다.       


출처 = IMDb <Spider-Man: Far From Home>


그와 같은 영웅은 될 수 없을 거야

전 세계적인 영웅 추모 분위기는 피터가 더욱 입을 떼지 못하게 한다.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의 지구는 어딜 가도 네가 있다는 흔한 이별 노래 가사처럼 어디에도 토니 스타크/아이언맨이 있는 상황이다. 교내 방송에서 틀어주는 기기묘묘한 추모 비디오 클립, 스트리밍 서비스에 올라온 ‘불굴의 영웅 토니 스타크' 다큐멘터리, 도처에 있는 아이언맨 전광판과 벽화는 사람들에게 토니 스타크/아이언맨이 얼마나 대단하고 소중한 사람이었는지를 다시금 증명한다.      


피터는 그러한 ‘희생자의 자리가 공동체 안에 계속 남아 있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들’(「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과 맞닥뜨릴 때마다 의기소침해진다. 피터에게 토니 스타크/아이언맨은 더욱 범접할 수 없는 인물이 되고, 그런 그의 자리를 이어받는 것에 그는 큰 부담을 느낀다. 그리고 함께 찾아든 상실감은 자신에게 힘이 없어 토니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스멀스멀 자라나게 한다.      


그래서 피터는 내내 전전긍긍한다. 존 키팅 선생님(<죽은 시인의 사회>)과는 정 반대의 고약함으로 입장 표명을 안달하는 닉 퓨리 앞에서 그는 마치 큰 잘못을 저질러 꾸중을 듣는 학생 같다. 그가 호랑이 선생님 대신 속마음을 털어놓는 상대는 온화하고 강직한 (줄 알았던) 뉴 페이스 슈퍼히어로 미스테리오(제이크 질런홀)다. 그의 옆에 앉아 “이번 여름에도 세상을 구할 줄 몰랐어요.”라고 털어놓는 피터의 표정은 영락없는 소년의 그것이다.      


출처 = IMDb <Spider-Man: Far From Home>


제이크, 그 옷을 당장 벗어주세요

미스테리오에 대한 푸념을 덧붙인다. 제이크 질런홀이 슈퍼히어로 무비의 빌런 역할로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한 까닭은 그의 눈 때문이었다. <나이트 크롤러>(2015)에서 그의 움푹 팬 큰 눈과 시선이 마주친 적이 있는 독자라면 공감할 것이다. 눈에서도 심해 공포증을 느낄 수 있다는 걸 나는 그때 알았다. 염동력을 쓰는 엑스맨처럼 손끝 놀림 하나로 지구를 파괴하는 우아한 미스테리오를 기대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보고 나니 다 부질없었다. 요란한 코스튬을 입고 스노우볼 같은 헬멧을 쓴 제이크 질런홀의 모습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어색해서 미스테리오란 캐릭터에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붕붕 날아다니며 에너지를 쏘는 그를 보고 있자면 당장이라도 스크린 안에 들어가 발바닥이 땅이 닿도록 그의 어깨를 눌러주고 싶은 충동이 꿈틀거렸다.       


내 문제일 수도 있다. 나의 머릿속의 제이크 질런홀은 <브로크백 마운틴>(2006)의 잭과 <조디악>(2007)의 로버트 그리고 앞서 언급한 <나이트 크롤러>의 루이스를 조금씩 떼어내어 합친 모습으로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언제 빨았는지 알 수 없는 셔츠와 점퍼 차림에 언제 잤는지 알 수 없는 푸석한 얼굴을 하지 않은 그거 낯설었다. 상영관을 나오면서도 나는 속으로 그에게 못할 소리를 했다. ‘제이크 질런홀은 역시 삯이나 월급 받는 처지의 역할이 제격인데…….’







[chaeyooe_cinema]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Spider-Man: Far From Home

감독 존 왓츠 Jon Watts



지도 편달이 필요한 아이 앰 스파이더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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