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aeyooe Jul 30. 2019

한글이 탄생하는 동안 세종은 죽어갔다

<나랏말싸미>를 보고



작가 정영수의 「우리들」(2018)의 주인공 ‘나’는 글을 쓴다. 어느 날 연인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남기고 싶다며 ‘나’를 찾아온다. 그들이 불륜 관계였다는 걸 알게 된 '나’는 두 사람을 앞에 두고 생각한다.


그들은 어떤 유적도 역사도 없는 그들의 애처로울 정도로 빈약한 세계를 증언해줄 목격자를 원했고, 최후의 순간에 그들의 편에 서줄 동조자를 원했으며, 점점 커져가는 그들의 죄책감을 함께 나눌 공범을 원했다.


이런 ‘나’의 생각은 어처구니없게도 <나랏말싸미>를 본 나의 감상과 일치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나랏말싸미>


어찌합니까 어떻게 할까요

영화는 확실하게 말한다. 산스크리트어와 티베트·파스파 문자가 있었기에 한글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이리 찍고 저리 찍어 가며 주야장천 새 문자를 만든 사람은 세종(송강호)이 아닌 신미 대사(박해일)였다고. 그리고 영화는 관객에게 요구한다. 이런 주장에 대한 목격자이자 동조자이자 공범이 되어달라고.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거창하기는 하지만 나의 정체성을 부정당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 불쾌감은 극장을 나와서도 계속되었다. 덕분에 나의 마음은 반나절 가량 뒤숭숭했다.  

    

여기까지가 훈민정음 창제 과정을 압축한 영화 <나랏말싸미>에 관한 나의 소회다. 그리고 이 영화가 품은 위험한 힘에 대해 따지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다. 대신 나는 당혹스러운 탄생설에 막혀 이대로 잊힐 부분을 소개하려 한다. 이 글은 죽어가는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멜로 영화 <나랏말싸미>에 관한 글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나랏말싸미>


이유 있는 슬픔

<나랏말싸미>는 어마어마한 것이 태어나는 중인데도 전혀 기뻐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장마철의 7월처럼 음울하다. 늙고 병든 창제자 탓이다. 1443년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서 세종은 마흔일곱이다. 이 나이가 역대 조선 임금의 평균 수명인 걸 상기하면 그는 생의 한계점에 다다른 상태다.      


극 중에서 그는 어의에게 다른 한쪽 눈도 실명할 수 있다는 경고를 받고, 지팡이에 의지해 걷기도 한다. 실재한 세종 역시 그랬다. 그가 마흔다섯이던 1441년 4월의 실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됐다. ‘내가 두 눈이 흐릿하고 깔깔하며 아파서 봄부터는 음침하고 어두운 곳은 지팡이가 아니고서는 걷기에 어려웠다.’ 마흔일곱의 세종은 이후 7년을 더 살고 쉰넷에 사망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나랏말싸미>


기우제를 올리는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그는 지쳐있다. 제문을 한문으로 읽는 신하에게 “우리말로 해라”라고 명령하는 그의 목소리에서는 오래된 철문을 여닫는 쇳소리가 난다. 그가 뱉는 모든 말 주어와 서술어 사이에는 쉼표와 줄임표가 존재하며, 피로 섞인 한숨이 마침표처럼 붙는다. 그래서 내게는 망하지 않으려고 글자를 만들려는 것이라는 단언도 중국을 넘어서는 나라가 되는 게 왜 안 되느냐는 고함도 구슬프게만 들렸다.     


세종을 연기한 송강호의 얼굴 피부에는 수라상의 윤기가 돌지 않는다. 손가락으로 그의 뺨을 쓸어내리면, 타고 남은 장작의 검은 재가 묻어날 지경이다. 힘에 부칠 적마다 눈을 감은 채 호흡을 고르는 <나랏말싸미>의 세종은 <사도>(2014)의 영조보다도 노쇠해 보인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나랏말싸미>


여기에 남을 얼굴과 목소리

<나랏말싸미>에서 세종과 소헌왕후를 함께 담은 모든 장면은 아름답다. 우리말의 그것을 능가할 정도다. 욕탕에서 부부가 환담을 하는 장면은 잊지 못할 단 한 장면이다. 왕의 때밀이를 자처한 소헌왕후(전미선)는 어릴 적 두 사람의 호시절을 회상한다.      


이때 들리는 소음이라고는 아내가 바가지로 물을 퍼 남편의 등에 슬슬 뿌리는 소리뿐이다. 그것을 배경음악으로 전미선 배우의 둥그런 목소리와 송강호 배우의 풀어진 목소리가 습한 공간을 꽉 채운다. 더는 들을 수 없는 합주라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잠자코 등을 내어주던 세종은 아이처럼 소헌왕후에게 물을 튕기며 욕탕으로 들어오길 청한다. 그러자 소헌왕후는 잠시 어이없어하다가 웃는다. 그냥 웃는 남녀. 이 영화는 내게 멜로 영화로도 기억될 것이다.





[chaeyooe_cinema]     

나랏말싸미 The King's Letters

감독 조철현



탄생하는 것에 환희하기보다 죽어가는 것에 애달파한다.
[★★☆]      
매거진의 이전글 슈퍼히어로지만 열여섯인데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