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 아스트라>를 보고
※<애드 아스트라>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애드 아스트라>의 로이 맥브라이드를 보면서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2013)의 다자키 쓰쿠루와 「단순한 진심」(2019)의 나나가 떠올랐다. 과거의 그들은 모두 ‘무언가를 반드시 해결하지 않고서는 삶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는 사람들의 모임’이 열린다면 단연 초대 대상 1순위란 점에서 닮았다.
닮은 세 사람 - 다자키 쓰쿠루, 나나, 로이
다자키 쓰쿠루는 이유도 모른 채 갑자기 우정 공동체에서 퇴출당한 뒤 죽음만을 생각하며 산다. 책에서 그는 당시 자신의 인생을 ‘실질적으로 발걸음을 멈춰버린 것 같다고’ 간추린다. 무색한 시간을 통과하던 다자키 쓰쿠루는 틀어진 관계의 전말을 알게 된 뒤에야 비로소 색채를 갖는다.
나나에게 해결해야 하는 그 무언가는 생모다. 어릴 적 프랑스로 입양된 그는 생모와 살던 시절의 기억을 무의식적으로 ‘까만 봉지 같은 것에 봉합’해 버렸다. 나나는 자신을 버린 생모를 이해하게 될까 봐 그러면서 이제껏 자신을 버티게 한 그를 미워하는 힘마저 잃을까 봐 봉지의 매듭에 손대는 것조차 꺼린다.
태아가 배 속에 자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든 사라질 것처럼 위태해 보이던 나나는 한국에 들어와 자신의 근원을 찾기 시작하면서부터 누구보다 현현한 인간이 된다.
마지막으로 로이 맥브라이드(브래드 피트)는 아버지 클리포드 맥브라이드(토미 리 존스)의 모든 것을 정리해야만 한다. 로이는 이를테면 오로지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원망으로 빚어진 인간이다. 그는 전설의 우주 비행사인 아버지를 따라 우주 비행사가 되었지만 영웅의 자식으로서 치러야만 하는 애정 결핍과 상실감에 시달린 탓에 자기 파괴적인 성향을 갖게 된 중년 남성처럼 보인다.
30년 전 프로젝트를 수행하다 실종된 아버지가 죽었다고 믿었기에 미제로 남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풀 수 없어 지금껏 죽은 사람처럼 살아온 로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아버지는 사망자가 아닌 생존자였다. 로이는 산 사람이 되기 위해 아버지가 있는 해왕성으로 지체 없이 떠난다.
반드시 우주여야 할 필요 없다
<애드 아스트라>는 우주 공간 구현에 상당히 공을 들인 SF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그 점을 어필하려 들지 않는다. 우주는 이 정도면 됐다는 표정을 짓는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얼굴이 거푸 떠오른 이유도 그 때문이다.
<애드 아스트라>는 우주가 아닌 가족에 방점이 찍힌 영화다. 이 영화의 주체는 가족 서사여야만 한다. 그것은 이 영화가 가진 고정되고 불변하는 원칙이다. 그러므로 우주는 완성형일지라도 절대 주체 자리를 차지할 수 없으며, 배경 이상의 기능을 하는 것 역시 차단된다.
내가 사막판이나 한국판 <애드 아스트라>를 상상하는 건 그래서 무리가 아니다. 수수께끼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아들의 여정이라는 이야기의 뼈대를 유지하고, 장르 상관없이 고급 양탄자의 촉감이 느껴지는 우아한 영화를 만들어내는 제임스 그레이가 연출한다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된다면 우주가 배경이 아니더라도 제2, 제3의 <애드 아스트라>는 가능할 것이다.
브래드 피트의 내레이션은 필요했다
<애드 아스트라>의 무게 중심을 우주가 아닌 가족에 두고 본다면 이 영화가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이유 또한 납득이 간다. 이야기를 따라가기 위해서 부자의 관한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 관객에게 마치 음성 일기처럼 들리는 로이의 내레이션은 튼튼한 동아줄 역할을 한다.
이때 특유의 코웃음과 장난기를 쏜 뺀 브래드 피트의 목소리는 우주만큼이나 황홀해 애쓰지 않아도 집중하게 된다. 관객은 그가 영화 전반에 걸쳐 흘리는 로이의 심리 상태와 맥브라이드 부자의 기억 등을 하나씩 주워 담아 로이를 이해하는 데에 사용한다.
로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배우 덕분에 나는 이 느릿한 영화를 하품 한 번 하지 않고 보는 데에 성공했으나 로이 맥브라이드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나는 지금도 아버지를 너무나 쉽게 용서한 로이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느냐고 묻고 싶다.
30년 만에 만난 장성한 아들에게 단 한 번도 집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단언하고, 운명을 따르고자 아내를 과부로 만들고 아들을 고아로 만든 것에 대해 사과할 생각이 추호도 없음을 밝힌 아버지다. 어쩌면 그가 정말 심각한 정신 질환을 앓고 있어서 진심 아닌 소리를 허투루 내뱉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할지라도 가족이니까 그럴 수 있다 혹은 그래야 한다는 말로 로이의 행동을 눙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다만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부자 관계가 끈끈했거나 아니면 로이가 그저 성자였길 바랄 뿐이다.
나의 이해 여부와 상관없이 아버지와의 관계를 정리한 로이는 비로소 산 사람이 된다. 그는 내레이션을 통해 자신이 삶에 대한 의욕과 관심이 생긴 사람으로 달라졌음을 밝힌다. 관객은 스스로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아내와 거리를 두던 로이가 편안한 표정으로 아내를 기다리는 모습을 본 뒤 그가 정말 산 사람이 되었음을 확인한다.
현재의 로이는 현재의 다자키 쓰쿠루와 나나와 함께 더는 ‘무언가를 반드시 해결하지 않고서는 삶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는 사람들의 모임’에 초대받지 않는다. 그는 지금 다음 단계에 와 있다.
[chaeyooe_cinema]
애드 아스트라 AD ASTRA
감독 제임스 그레이 James Gray
이기적으로 고독하게 써 내려간 자기 탐사 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