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로즈>를 보고
음악 영화 <와일드 로즈>는 곤경 속의 주인공이 목소리 하나로 인생 역전에 성공하는 스토리의 유혹을 뿌리친 장한 영화다. 또한 인물의 희로애락을 해석하지 않고 과장된 퍼포먼스와 감미로운 멜로디로 대체하려는 ‘감성 음악 영화’의 얄팍한 버릇이 들지 않은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가 험난한 우회로를 선택해준 덕분에 관객은 주인공이 마이크를 잡는 순간만을 애타게 기다릴 필요가 없다. <와일드 로즈>는 노래가 흐르지 않을 때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다.
성실한 엄마 밑에서 자란 몽상가 딸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토박이 클럽 가수 로즈 린 할런(제시 버클리)이 가진 단 하나의 꿈은 컨트리 가수로 성공하는 것이다. 계획도 있다. 컨트리 음악의 성지라 불리는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 가는 것이다. 비록 갓 출소해 한쪽 발목에는 전자발찌를 찼지만 부츠를 신어 감추면 그만이고, 12개월 만에 만난 어린 딸 아들과는 서먹한 사이가 됐지만 해결사 같은 엄마 마리온(줄리 월터스)이 곁에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의 엄마는 친절한 할머니 역할은 하되 헌신적인 엄마 역할까지 겸할 생각이 없다. 마리온은 20대 싱글 맘이자 전과자가 되어 돌아온 딸이 스스로 수도세와 전기세를 벌 수 있도록 가정 청소부 일을 주선한다. 로즈는 내슈빌 밑천을 마련한다는 생각으로 엄마의 제안을 선선히 수락한다.
상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영화는 로즈에게 성공의 동아줄을 내려주되 단 한 번도 그를 억지로 끌어올리지 않는다. 결정의 주체는 언제나 로즈 자신이며. 성공이 아닌 다른 결과도 가능하다. 로즈가 슈퍼스타가 되지 않았음에도 <와일드 로즈>에 긍정적인 기운이 넘치는 이유는 ‘결정으로부터의 자유’가 허락되었기 때문이다.
로즈는 세 명의 귀인을 만나 그들로부터 세 번의 기회를 얻는다. 그는 호의와 투자 욕구가 넘치는 고용주 수잔나(소피 오코네도)의 지원을 받아 간절히 만나고 싶었던 BBC RADIO 2의 유명 진행자 밥 해리스(밥 해리스)와 대면한다.
거기까지다. 로즈가 밥 해리스로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곡을 써보라는 조언을 듣는 것으로 두 사람의 만남은 종료된다. 밥 해리스가 로즈의 노래를 듣고 반해 유명 프로듀서와 연결해준다거나 자신의 방송에 출연시켜 로즈가 화제의 인물이 되는 기적 따윈 일어나지 않는다. BBC로 가는 기차 안에서 가방을 도둑맞았던 로즈는 그와 헤어진 뒤 그저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간다.
영화 후반 수잔나의 생일 기념 하우스 파티 역시 판타지의 영역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수잔나가 로즈의 내슈빌 자금 모금 공연을 파티의 메인이벤트로 기획함으로써 로즈는 다시 한번 꿈으로 향하는 직통 열차 탑승권을 손에 쥔다.
그러나 로즈는 그 행운을 스스로 포기한다. 전과자란 사실이 수잔나의 남편에게 발각되고, 공연 직전까지 다친 아들의 병실에 있었던 로즈는 무대에서 첫 소절도 채 부르지 못하고 내려와 수잔나에게 자신의 신상에 대해 털어놓는다.
그리고 영화는 일전에 그랬듯 더 개입하지 않는다. 수잔나가 뛰어가는 로즈를 붙잡아 용서하고 로즈가 다시 무대에 서자 참석자들이 환호하고 이날 모인 돈으로 결국 로즈가 미국행 비행기를 타는 그림은 그려지지 않는다. 망연자실한 수잔나의 표정을 끝으로 영화는 로즈의 결단을 따른다.
거기에 아무것도 없다 할지라도 여기에는
이제 로즈에게는 한 명의 귀인과 한 번의 기회만이 남았다. 꿈을 접기로 한 로즈에게 다시 희망을 불어넣는 마지막 귀인은 뜻밖에도 엄마 마리온이다. 날 위해 살 패기가 없어 멀리 가본 적도 없다고 우선 고백한 그는 이런 나와는 다르게 살라고 딸에게 선뜻 통장을 내민다. 그길로 로즈는 내슈빌로 떠난다.
영화는 우여곡절 끝에 주인공을 궁극적인 목적지에 데려다 놓고도 요술봉 한 번 휘두르지 않는다. 드라마틱한 캐스팅도 스타와의 조우도 없다. 내슈빌에서 로즈는 어떤 가시적 성과도 얻지 못하고 며칠 만에 귀국한다. 그러나 그렇게 빨리 돌아온 로즈를 엄마도 영화도 비난하지 않는다. 따뜻하게 맞이한다. <와일드 로즈>의 감동은 다른 결정을 내린 한 사람을 존중하는 그 포옹에서 온다.
가보고 돌아오는 것과 가보지 않고 머무는 것은 같은 자리라 하더라도 같을 수 없다. 1년 후 로즈는 여전히 고향 글래스고에 있지만 예전과 달리 목소리와 이야기를 모두 가진 싱어송라이터다. 엄마와 두 아이 그리고 수잔나가 보는 앞에서 로즈는 자작곡 ‘Glasgow (No Place Like Home)’를 열창한다. No Place Like Home. 단연 여기로 돌아온 사람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다.
[chaeyooe_cinema]
와일드 로즈 WILD ROSE
감독 톰 하퍼 Tom Harper
무대 위가 아닌 길 위에서 남이 아닌 나를 위해 더 멀리 가는 용기에 대해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