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를 보고
2019년 8월 29일. 개봉 당일에 <벌새>를 봤지만 나는 즉시 이 영화에 관해 쓸 수 없었다. 다른 이에게도 그랬듯 <벌새>는 내 ‘가슴에 들어와 138분 동안 날갯짓을 그치지 않(김혜리 평론가)’았고, 그것이 날아간 뒤 내 마음은 쑥대밭이 됐기 때문이다. 그곳을 ‘거의 복구’하기까지 두 달 넘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야 쓰는 이유
영화를 볼 무렵 나는 일시 정지 버튼이 눌린 상태였다.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집단이 실은 내가 가장 혐오하는 일을 하는 집단이었다는 걸 확인한 뒤부터였다. 그러나 나를 아득하게 한 건 그 추함이 아니었다. 진실을 알게 되고도 슬프지 않다는 것. ‘뭐 대단히 신나거나 설레거나 후련한 기분도 아니었다. 실은 다 지겨웠다.’(박상영, 「늦은 우기의 바캉스」)는 것.
아닌 척 해왔던 그 ‘다 지겨웠던 마음’을 스스로에게 들킨 나는 낙오자처럼 2019년 하반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은희(박지후)가 한문 선생님 영지 (김새벽)에게 보낼 편지에 써 내려갔던 그 문장. ‘선생님, 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는 내가 간절히 묻고 싶었던 질문이기도 했다.
<벌새>에 관해 쓰지 못하는 기간 동안 나는 영지 선생님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는 내가 절실하게 찾던 자기를 좋아할 수는 없어도 싫어하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준 어른이었다.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아도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다는 영지의 목소리를 매일 아침 밥숟가락 위에 얹어 꼭꼭 씹어 먹고 집을 나섰다. 자신이 싫어지는 감정이 올라올 때면 그냥 그 마음을 들여다보라는 영지의 지침을 따랐다. 관성처럼 또 참으려고 할 때마다 어떻게든 같이 맞서서 싸우라고, 절대로 가만히 있지 말라 했던 영지의 단언을 기억하며 생각을 고쳐먹었다. 나는 이제 영지 선생님이 보았던 ‘참 신비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쓴다.
즐거운 나의 집이란 거짓말
<벌새>는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즐거운 나의 집>)’라는 가사에 코웃음을 치는 영화다. 열네 살 은희에게 다섯 식구가 함께 사는 집은 결코 ‘쉴 곳’이 아니다. 오빠에게 구타를 당하는 방안, 아버지의 호통뿐인 가족 식사가 이뤄지는 부엌, 부모의 싸움이 벌어지는 거실 중 은희가 안심하고 있을 만한 곳은 없어 보인다. 시름없는 표정을 한 은희를 볼 수 있는 곳은 뜻밖에도 병원이다. 아줌마들의 다정한 안부와 인심이 오갔던 큰 병원 6인실에서 지내는 동안 은희는 사랑받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
김보라 감독은 팟캐스트 ‘이게 뭐라고’에 출연해 가족이란 혈연과 상관없이 안전한 느낌을 주는 관계라고 답한 적 있다. 무서운 아빠(정인기), 불러도 대답 없는 엄마(이승연), 속을 알 수 없는 언니(박수연), 고막이 터질 정도로 때리는 오빠(손상연) 모두 은희에게 그런 느낌을 주지 못한다. 은희는 이들과 한 지붕 밑에 살면서도 누구와도 연결되지 못한 채 겉돈다. 엄마가 아빠에게 전등갓을 던진 그날 밤 언니가 은희에게 했던 말이 어쩌면 답일지도 모른다. “우리 가족은 다 따로 살아야 해.”
오, 나의 안전한 선생님
영지 선생님과 함께 있을 때야 은희는 찻잔에 띄운 잎처럼 평온해 보인다. 은희가 영지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성남에 살며 대학은 휴학 중이고 나이가 적지 않은 흡연자라는 사실이 전부이지만 은희는 영지에게 강한 애착과 연결감을 느낀다.
얼굴을 아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하지만,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되겠는가. 이런 뜻을 가진 명심보감의 한 구절 ‘相識滿天下 知心能幾人(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을 칠판에 적은 영지는 은희와 지숙에게 묻는다. “여러분 아는 사람들 중, 속마음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그때의 은희는 대답하지 못하고 영지를 멍한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지만 지금의 은희는 자신의 속마음을 알아준 누군가를 떠올릴 것이다. 싸운 학생들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고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말을 기억하고 스케치북을 선물해준 유일한 한 사람. 영지 선생님을 만난 은희가 부러운 관객은 필시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모든 게 그대로일지라도 은희만큼은
<벌새>에는 한국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기적의 가족 밥상 장면이 없다. <벌새>의 다섯 식구는 서로에게 얼마나 상처를 입혔든 간에 둘러앉아 삼겹살을 굽거나 찌개를 나눠 먹기만 하면 화해 모드에 들어서는 기적을 체험하지 않는다. 가족이란 원래 지지고 볶고 사는 거라는 무딘 말로 가정 내 폭력과 불안을 흐지부지하게 넘길 생각을 이 영화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학여행을 간 은희는 1994년에 있었던 모든 일을 기억한 채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아파트 1002호. 그곳은 여전히 은희에게 온전한 쉴 곳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은희는 그 안에서 잘 살아낼 것이다.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한다는 것’을 누군가가 은희에게 귀띔해 주었기 때문이다.
[chaeyooe_cinema]
벌새 House of Hummingbird
감독 김보라
즐거운 나의 집과 우리 학교의 창문을 깨부수고 들어온 이 무르고도 단단한 영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