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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yooe Jan 31. 2020

'남산의 부장들' 그 남자의 스트레스가

<남산의 부장들>을 보고


미간은 정말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남산의 부장들>을 보며 느꼈다. 극 중 남산에 있어 남산으로 불리는 중앙정보부의 부장들이나 청와대의 높으신 분들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을 때만 나온다는 진실의 미간을 보여준다. 18년째 이어진 장기 집권이 이제는 정말 끝날 것 같다는 예감과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그렇다면 그다음은 누구냐’는 질문에 내포된 흥분은 관련자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남산의 부장들>


예상 밖의 관심

역대 중앙정보부장 열 명을 정리한 논픽션 「남산의 부장들」(1992, 김충식)을 영화화하겠다고 결심한 우민호 감독이 선택한 실존 인물은 8대 김재규다. 감독은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자로 잘 알려진 그를 모델로 해 주인공 캐릭터 김규평(이병헌)을 만들었으면서도 10·26 사건과는 거리를 둔다.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시피 감독의 관심은 애초부터 ‘인간 내면의 감정’(<남산의 부장들> 우민호 감독 - 베일에 싸인 인물의 감정을 파헤치고 싶었다)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의 총성 장면으로 시작해서 후반부에 다시 그 장면으로 돌아오는 영화의 시간적 구성은 관객이 김규평의 심리를 추적하기에 적합하다. 그는 어쩌다가 방아쇠를 당기게 됐는가. 영화는 관객에게 생각거리를 던지고 디데이 40일 전으로 재빨리 이동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남산의 부장들>


김규평은 왜 그들을 쏘았나

박통(이성민)에게 충성하는 현직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은 40일 동안 그 충성심에 퓨즈가 끊기는 경험을 여러 번 한다. 퓨즈를 끊는 건 열에 아홉 경호실장 곽상천(이희준)이다. 김규평은 자신보다 능력도 없으면서 아부와 큰소리로 높은 자리를 꿰차고 박통의 총애를 받는 그에게 굴욕감을 느낀다. 박통이 담배를 물자마자 자신보다 빠르게 라이터를 갖다 대고 회의에서 탱크로 밀어버리자는 말을 대책이라고 내놓는 곽상천을 볼 때 김규평은 평소대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데 실패한다. 결국 거사 당일 김규평은 박통이 아닌 곽상천에게 먼저 총을 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남산의 부장들>


곽상천 같은 사람을 경쟁 상대로 둔 것으로도 모자라 번번이 그를 선택하는 박통에게도 김규평은 조용한 분노를 느낀다. 박통은 곽상천은 초대한 행사와 궁정동 안가 약속에 김규평은 부르지 않는다. 다 같이 헬리콥터를 타러 가서는 곽상천만 동승시킨다. 부산과 마산(부마항쟁)을 진압할 방법으로 곽상천이 주장한 강경 대응 의견을 받아들여 계엄령을 선포한다.


그러나 김규평이 치명상을 입는 사건은 삼각관계 밖에서 발생한다. 김규평은 친구이자 전직 정보부장인 박용각(곽도원)이 워싱턴에서 박통을 대대적으로 고발하는 일을 벌이자 우정 대신 충성을 택한다. 각하 곁을 지켰지만 김규평이 어느 날 도청기 너머 듣는 박통의 속마음은 매정하다. “지 친구도 죽인 놈.” 그 한 마디를 박통은 최후의 날 김규평 앞에서 직접 내뱉음으로써 죽음을 자초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남산의 부장들>


속이 보이는 포커페이스를 연기하다

배우 이병헌은 관객들이 난해한 인물의 감정만큼은 파악할 수 있게끔 깨끗하게 연기한다. 대통령 집무실 도청 사건으로 곽상천과 몸싸움을 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격분한 김규평을, 도청기 너머 박통의 노래를 듣는 장면에서는 정말 비애를 느끼는 김규평을 표현한다. 그의 이마에 선 핏줄과 흘러내린 앞머리 한 가닥, 대찬 걸음걸이에서는 김규평 몸속에 흐르는 고압 전류 같은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김규평은 대체로 무표정한 얼굴인데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그 무표정함이 조금씩 다르다. 곽상천 앞에서는 경멸을, 박용각 앞에서는 여유를, 박통 앞에서는 경직을 얹은 무표정을 짓는다. 모두 배우의 능란한 연기 테크닉을 확인할 수 있는 풍경이다. 이병헌은 ‘배우란 무표정으로 있어도 진짜 속내를 관객에게 들켜야 하는 직업(『씨네21』, <남산의 부장들> 이병헌 - 극한의 감정, 극한의 연기)’이라고 정의를 내린 바 있다. <남산의 부장들>에서 그는 생각대로 실행한다.




[chaeyooe_cinema]

남산의 부장들 The Man Standing Next

감독 우민호


역사적 시간은 흘러가게 두고 한계점에 다다른 인물들의 스트레스로 긴장감을 높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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