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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말록 Aug 16. 2017

꿈(환)과 같다는 표현

인생이 꿈과같다는 말은 그저 은유적 표현일 뿐일까?

보통 인생이 허무하다는 의미에서 '삶이 꿈과 같다'라고 말한다. 백 년도 안되는 짧은 인생을 표현하기 위해서 꿈처럼 짧고 허무하다고 말한다. 결국 인생무상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은유적 표현 정도로 간주하는데, 마음공부에 있어서 '꿈과 같다'라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인생이 짧아서 허무하다는 것이 아니라 깨있는 생시가 그야말로 꿈과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꿈이 뭔가? 꿈은 꾸는 순간에는 생시와 전혀 구분이 되지 않는 체험이다. 이 체험은 감각기관을 이용하지 않는다. 의식만을 이용해서 시각과 청각 그리고 촉각 미각 등을 생생히 느끼고 스스로 그 감각들을 진짜라고 믿는다. 설령 꿈속에서 얼토당토않은 장면을 목격하거나 스스로 어처구니없는 행위를 한다고 해도 그것을 결코 가짜라고 여기지 못한다. 우리의 의식은 꿈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그 모든 체험을 생시로 여기는 신통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유일하게 그것이 꿈임을 확인하는 순간은 꿈에서 깨어났을 때다. 그것이 꿈을 꿈으로 만든다. 깨어나지 않는다면 꿈은 생시가 된다. 만일 우리가 평생 꿈에서 깨어나지 않고 죽는다면 우리에게는 그 꿈의 세계가 바로 생시란 말이다. 그 꿈의 세계는 허술하기 짝이 없어서 여러 가지 꿈의 증거가 난무하지만 꿈의 의식 상태에서는 그것들을 잡아낼 수가 없다. 눈앞에 보이는 증거와는 상관없이 맹목적으로 진짜로 존재하는 것들이라고 믿어버린다. 이러한 습관적이고 근거 없는 믿음을 실체적 관념이라고 한다. 이 경우에는 꿈속의 실체적 관념인 샘이다.

우리가 생시라고 부르는 삶도 마찬가지다. 진짜가 아닌 증거가 널려있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못 보도록 하는 것은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앞서 말한 꿈속의 실체적 관념과 마찬가지로 생시의 실체적 관념 때문이다. 생시의 실체적 관념은 바로 이원적 의식 체계를 말한다. 이런 이원적 관념은 실상을 바로 보지 못하도록 하는 주범이다. 그러니 우리의 감각을 이용해서 실상에 접근하려는 시도는 매번 실패로 끝난다. 왜냐하면 감각은 주간과 객관이라는 이원성 안에서 작동되는 것이니 그림자 잡기와 같다. 그것은 감각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의식의 문제다. 그래서 결국 삶이 꿈과 같다고 말하는 이유는 우리가 생시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삶이 바로 이와 같은 실체적 관념에 덥혀 있음을 뜻한다. 마치 꿈속의 실체적 관념으로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것과 똑같다.

꿈은 짧고 생시는 결코 깨어나 본 적이 없으니 그것을 근거로 구분을 하려 하지만 그것 또한 허무하다. 꿈이 길다 짧다는 의미가 없다. 100년 있다가 깨어나도 꿈인 것이고 하룻밤만에 깨어나는 것도 꿈이다. 길다 짧다는 상대적 개념일 뿐 실재와 허상을 구분하는 기준은 되지 못한다. 우주의 시간을 놓고 보면 인간의 삶이나 하룻밤 꿈이나 길고 짧음을 논하기는 민망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꿈은 마음공부를 하는데 많은 힌트를 제공한다. 깨닫기 전에 깨달음의 상태는 짐작조차 하기 어렵지만 우리는 꿈을 통해서 그러한 전환을 조심스럽게 상상해 볼 수 있다. 철석같이 믿었던 꿈속의 세상이 깨고 나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리듯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이 생시도 깨고 나면 순간에 날아가 버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경험일까 미리 짐작해 볼 수 있다.

또한 이런 것도 꿈을 통해 간접적인 의문을 던져 볼 수도 있다.  
꿈속 세상의 모든 것은 분명 내가 만들었다. 건물이나 사건, 등장인물까지 모두 내가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꿈속의 나는 여전히 '나'만 컨트롤할 수 있고 '나'의 감각만을 느낄 수 있다. 만일 꿈속 등장인물들을 나의 의식이 만들었다면 다른 사람의 시각이나 감각 혹은 생각 등도 꿈을 꾸는 내가 느낄 수 있어야 자연스럽지 않은가? 그런데 나는 주인공인 나의 감각만 느낄 수 있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꿈속에서는 모든 것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한다. 오히려 나의 의도와는 반대로 우려하고 걱정하는 방향으로 꿈은 흘러가 버리기 일쑤다. 정말 이상하다. 분명 나의 의식이 투영시킨 꿈이 건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만들어지고 진행되는 걸까? 깨달음에서 말하는 이 모든 것이 진여의 현현이고 참나가 나투어냈다는 의미를 가늠해 볼 수도 있다.

꿈은 깨어남 자체와는 상관이 없지만 이렇게 이원적인 세상에서 그 이원성 밖의 모습을 살짝 엿볼 수 있는 재미있는 의식활동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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