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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말록 Oct 21. 2020

존재는 깜빡이는 형광등 처럼...

존재의 깜빡임

괴롭다. 슬프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나는 너무 소심해서 감히 이 세상을 살아갈 자신이 없다. 그 녀석이 나에게 몹쓸 짓을 해서 나의 몸과 마음이 더럽혀졌다. 더 이상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우울하다. 카페에 앉아 눈물을 지으며 슬픔을 하소연하던 그녀가 내 앞에 앉아 있다.


다음 순간 날아가던 새 한 마리가 카페의 유리창에 부딪혀 떨어지고, 유리창이 쿵 소리와 함께 빠직하며 금이 갔다. 너무 놀란 우리는 일 순간 아무 말도 못 하고 금이 간 유리창을 피해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조차도 하지 못하고, 피를 흘리며 떨어져 죽은 이름 모를 새를 놀란 눈으로 바라본다. 머리가 하얗게 멈춰 버렸다.


다음 순간 물었다.

"지금 이 순간, 방금 전, 그 모든 괴로움은 어디에 있나요?"


내가 묻는 순간, 방금 전까지 없었던 그녀의 고통이 다시 살아났다. 대신 피를 흘리며 죽은 새가 그녀에게서 사라져 버렸다.


모든 것은 이렇게 나타나고 사라진다. 그것이 우리의 직접적인 경험에 대한 정확한 기술이다. 아무런 가감 없는 있는 그대로의 표현이다. 존재의 현상적 본질이다. 나머지는 모두 떠오른 생각의 내용이다. '나'라는 것이 쭈~욱 있는 것 같고 기억이란 것이 쭉~ 있는 거 같고 세상이란 게 나와는 상관없이 쭉~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모든 존재는 오래된 형광등처럼 쉴 새 없이 깜빡거린다. 그 사라진 빈 공간을 쭉~ 이어진 것으로 열심히 메우는 것이 생각이다. 진실로 보면 그대로 보인다. 생각으로 메꾸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면 보인다. 원효의 해골물이 나타난 바로 거기, 지금 당신에게 이 글이 떠오른 거기와 다르지 않다. 그때 원효의 마음이 지금 당신의 마음과 디르지 않다. 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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