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미완성
그리다 마는 그림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그려야 해
오래전에 가수 이진관이라는 가수가 불러서 유행했던 노래의 가사입니다. 인생은 그렇게 뭔가 완성을 시키지 못하고 끝나죠. 돈을 많이 버는 듯하다가 인생이 끝나죠. 성공을 하려는 듯하다가 실패하기도 하고요. 이제 좀 살만 하면 병에 걸립니다.
이런 우리의 삶에 과연 완성이란 게 존재하기는 할까요? 쉽게 답이 찾아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우리는 아름답게 그리려고 노력은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노래는 끝을 내죠.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도대체 왜요? 결론이 좀 찜찜합니다.
인생은 미완성이라고 말하는 기저에는 '완성'이라는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정작 그 완성이 무엇인지 아무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어쨌든 그냥 열심히 살라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좋은 일도 있으니 그러라고 합니다. 여기서 현명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찾고 찾고 찾는데도 안 찾아지는 건 애초부터 그런 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의심해 보는 겁니다. 없는 건 찾을 수 없어요. 없는걸 무슨 수로 찾을 수 있을까요. 없는데 뭘 찾겠다고 하면 또 다른 개념을 만들어 버리게 됩니다. '나'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물어도 딱히 찾아지지 않죠. 그래서 알아차림이라던가 참나라던가 진아라던가 아무튼 '나'로 부여잡을만한 껀덕지가 있으면 얼른 개념으로 붙들어 버립니다. '나'에 대한, 자아에 대한 미련이 그렇게 많습니다. 그런 거 없습니다. 부여잡을 수 있는 거라면 그건 개념입니다. 그렇게 제한적이고 축소된 '나'라면 그저 이 몸과 마음을 동일시하는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인생이 있지도 않은 '완성'을 추구하는 동안은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습니다. 완성이란 허구성을 꿰뚫어 보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미완성으로 남아요. 그러니까 지금 내가 무슨 상태인지, 혹은 어떤 상황인지는 삶의 완성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 허구적 완성이란 개념을 상정하지 않으면 모든 순간이 그대로 완성이 됩니다. 그저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이 언제나 미완성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완성이라는 푯말을 항상 저 멀리 앞에 꽂아두기 때문입니다. 그걸 누가 꽂았나요? 스스로 꽂았습니다. 그것을 스스로 꽂았다는 말은 다시 뽑을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 그것을 알면 인생은 이미 완벽한 완성입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떼는 순간 이미 완성이고, 바람을 맞아도 이미 완성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깃발은 항상 자신의 발 밑을 따라다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꾸 축약해서 글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이 몸이 게을러서 글도 이 모양이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이 역시 제 글의 완성입니다. 완성이 아닐 방법이 없습니다.